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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책 주요활동/길잡이 독서회

배틀그라운드 첫 시간 정리 by 탤탤


지난 12/7(금) 저녁,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여는 <배틀그라운드>(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상산의 정치) 길잡이독서회 첫 번째 시간의 기록입니다. 첫 번 째 시간에는 이 책 세 번째 글인 <낙태와 헌법 논쟁>을 쓰신 최현정 선생님께서 오셔서 함께 이야기 나눠주셨습니다. 
기록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깊은 결들의 내용이 있었지만, (제 듣는 귀가 짧아) 이해한 내용을 중심으로 기록해볼게요. 참여하신 분 중에 분 중에 빠진 내용을 발견하시면 덧붙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길잡이 독서회 첫 시간에 주로 이야기 나눈 것은, 
2010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낙태죄(형법) 위헌 심판 청구 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2012년)에 대한 해석, 재생산(권)의 용어 유래 및 정치적/사회적 의미 분석,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 등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우선 이 책 <낙태와 헌법 논쟁>을 읽어보면, 2012년 헌재의 결정에 따른 낙태죄 합헌의 이유가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내용인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합헌 이유 뿐 아니라 4명의 재판관이 남긴 위헌의견 또한 논리상 부족하다는 부분 또한 함께 지적되고 있구요. 중요한 것은 2012년의 합헌 결정 이유 및 논리가 현재 자기낙태죄와 업무상동의낙태죄에 대해 재차 진행 중인 헌법소원심판(2017헌바127)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논리의 허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이 무척 필요한 일이라는 점이죠. 최현정 선생님께선, 이 후 헌재가 형법상 낙태죄의 조항들을 위헌으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여러 가능성, 즉 단순 위헌, 헌법 불합치, 한정 위헌 결정에 대해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언급해주셨습니다. 법적인 내용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반박의 논리가 사실 우리의 삶과 생각을 반영하는 내용이기에 한없이 어렵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또한 저자가 반박의 논리로 인용하는 것 중에 한국 및 다른 국가의 통계자료가 언급되어 있어 더 설득력 있게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헌재의 결정이 이후 낙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형법, 모자보건법의 개정이나 새로운 법의 제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반복해서 읽고 읽고 또 읽고...) 또한 토론 중에 낙태죄의 폐지가 중요한 운동의 목적이 될 수 있지 않지만, 반드시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낙태죄에 얽혀있는 수많은 기본권을 읽어내는 것 또한 너무 중요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남겨주셨어요. 이것을 텍스트로만 읽었을 때는 어렵게 느껴졌는데, 직접 설명해주신 내용을 듣고, 참여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재생산(권)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영어 ‘reproduce’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낳다, 생식하다, 번식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게 되면 생물학적 의미만으로 이해될 수 있기에 이것을 ‘낳거나 낳지 않을 권리’의 의미로 확대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재생산(권)’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사실 재생산이라는 단어가 경제학적 용어에 익숙해진 저 역시, 이것을 여성의 권리로 이해하는 것은 조금 난해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토론에서 계속 언급된 부분은, ‘재생산(권)’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이유가, 이 권리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음은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문제이지만, 그간 재생산권을 이용하고, 강제하고, 제한하는 것은 국가의 기획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어떤 시기엔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며 낙태를 종용하기도 했지만, 또 어떤 시기에는 사문화된 낙태죄를 부활시켜 낳지 않으려는 여성을 처벌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정상성’이라는 기준으로 신체를 구분하고 강제하려는 폭력까지 행사하는 것이 이러한 종잡을 수 없는 국가라는 권력이었습니다. 국가가 정책 기조를 바꿀 때마다 죽고 다치고 죄의식에 괴로워하는 것은 오직 여성들이었구요. 그렇기 때문에 ‘낙태죄’가 단지 여성의 임신중단이라는 행위만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죄를 통해 정상과 비정상성을 규정하는 폭력을 자행하면서, 차별과 위계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온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프롤로그 <낙태죄 폐지가 시대의 상식이 되기까지>, 백영경)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낙태죄 폐지와 재생산권을 논할 때, 그 책임의 주체를 국가에 두고, 그것을 향해 싸움을 전개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명백한 일일 것입니다.


‘자기결정권’에 대한 부분도 오래 이야기 나눴는데요. 현재의 모자보건법의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은 배우자가 낙태 수술에 ‘동의’했는지 여부에 의존하는 점입니다. 법적인 해석의 차이가 있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현실적으로 병원이 낙태수술을 받으려는 모든 여성에게 관행적으로 남성 파트너의 동의서를 요구한다(낙태죄 위헌 심리 공개변론(2018/05/24)에서 고경심 산부인과 전문의 진술 中)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녀나 장애여성의 임신에 관해서는 가족과 같은 보호자의 의중에 의해 그 권리가 강제되고 있었습니다. 국가, 배우자, 가족이라는 보호자에 의해 한 여성의 기본권이 침해당하고,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강제당하는 것. 위계라는 폭력적 수단을 통해 여성의 몸은 통제되고 결정되어 집니다. 우리가 지금 낙태죄 폐지를 이야기 하고 싸우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그 법의 폐지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둘러싼 사회의 동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이 여성이 몸의 주체로서 외치는 것으로 출발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권리를 강제하려는 폭력과 싸워야 함에 있습니다. 앞서 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이 자기결정권에 대해 법적으로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 많은 고민이 담긴 의견들도 나눠 주셨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적다보니 무언가 숭덩숭덩 빠진 느낌이 드는 건, 왜 때문일까요... ㅠㅠ 독서회 시간은 예상보다 30분을 넘어 끝이 났는데요, 여전히 뭔가 할 말이 남은 듯한 느낌은 아마 저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저자 선생님의 차분한 법과 낙태죄 폐지 운동을 둘러싼 설명과 편집자님의 책 관련된 깨알 정보 및 매끄러운 진행, 참여하신 분들의 경험과 다양한 의견들, 이렇게 밤새 이야기해도 시간가는 줄 모르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뒤늦게 이 운동의 의미를 알게 된 사람에겐 정말 꿀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첫 시간에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 아쉬운 마음은 다음 주 두 번째 길잡이 독서회 시간(12월 13일 목요일 저녁 7:30)에 채워봐야겠습니다.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만들어주신 여러분들에게 가슴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덧. 첫 번째 시간에 계속 언급되었던 영상자료들입니다. 참고삼아 보시면 좋을 것 같아 남겨드립니다.

  • KBS 거리의 만찬 2회 [천 개의 낙태] 

  • 파도 위의 여성들(2014. 다큐멘터리, 미국)

  • 자, 이제 댄스타임(2013, 다큐멘터리,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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