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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책 주요활동/길잡이 독서회

기본소득 독서회를 소개합니다

책보다 삶, 사람

-강수진

 


블로그에 올리는 독서회에 대한 첫 글로 어떤 내용이 어울릴까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깜냥은 언제쯤 생기는 걸까? 여하튼, 기본소득 독서모임을 하게 된 계기가 뭘까 생각해봐도 똑 부러진 이유는 없다. 굳이 찾자면 상황적으로는 삶의 또 다른 전환점에서 어떤 물에서 물들어 갈 것이냐의 질문이 놓여 있었고, 때마침 땡땡책의 창립소식을 접하게 된 타이밍이 있었다. 탈핵, 노동운동, 국가폭력 등 다양한 주제의 읽기모임들 중에서도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하고 접근하기 어렵지 않은 기본소득이란 주제를 선택하게 된 거 같긴 하다.

 

사실 독서회를 찾아다닐 만큼 책을 많이 보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이해력이 높지도 않다. 심지어 그렇게 소화도 못시키는 것을 내 것인 냥 내뱉는 짓조차 자주 하는데,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런 허세는 마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저런 모습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나를 물들이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거다. 독서회이니까 읽을 책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정작 맘과 시간을 내게 하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인거 같다. 개인적으론 배움이란 책보다 사람이란 생각이다.

 

그렇다면 굳이 독서회가 아니어도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지 않아? 상관없다. 단지 나에게 있어 독서회란 것이 다른 공간과 달리 사랑스러운 이유가 있다. 우선 책속에 누워만 있던 민주주의니 평등 같은 글자들이 꿈틀거리며 스멀스멀 움직인다. 그것들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같은 책을 다르게 읽는다는 것에 대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들, 그것을 각자의 삶에서 나름대로 소화하는 방법과 다시 나누는 각양각색의 과정들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직업, 나이, 학력, 경험, 어수룩함이나 명민함, 논리, 효율, 합리, 경제성, 느림과 빠름의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이 그대로 의미가 되어 다가오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공간이 된다.

 

이런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책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기능이라기보다는 책을 통해 그렇게 함께 빚어가는 사람들의 동력이 아닐까 싶은데 애정을 갖게 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에게 함께 읽기, 사회적 독서회란 지식과 간접경험의 공유뿐 아니라 살기 힘든 팍팍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숨 쉴 공기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인큐베이터 같은 역할을 하는 거 같다. 물론 그 역할을 항상 무조건적으로 담보하고 있진 않다. 독서회 역시 현실적인 사람들 간의 관계의 실타래이니까.

 


이맘 즈음에 띄엄띄엄 포도 농사를 짓는 친구네에 간다. 주업인 포도 일에 이어 감을 따서 곶감 작업도 하는데 나에겐 이 일이 더 재미있다. 기온이 좀 찬 곳의 감은 떫은 감이 많아 대부분 곶감용이 되는데 감을 동그랗게 깎아 고리가 달린 긴 줄에 주렁주렁 매단다. 그렇게 한 알 한 알 정성을 다해 매단 수 백 개의 주황빛 구술 줄들은 설치 예술작품 같아 더 그럴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잠시 머물렀다 가는 나 같은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혹하지만, 농사꾼 친구는 나무의 뿌리와 거름을 걱정 하고 유기농이지만 집중농작 같은 자본주의적인 생산과 소비를 하며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땅을 닮아서인지 그런 시선은 관계하는 외부의 삶으로 자연스레 확장되기도 하는데 밀양이나 삼평리의 어르신들에게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삶에서 앎을 체화하는 것은 참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그럼에도 앎을 삶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장식품으로 코나 귀에 걸고 있는 내 모습을 수시로 마주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창피 하고 자존감도 훅훅 떨어진다. 뭐 별 수 있나.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앎을 삶으로 빚어가는 땡땡이들을 줄기차게 만나는 수밖에. 서당 개도 언젠가는 풍월을 읊는다는데... 그렇게 물들어지지 않을까?

 

주저리 떠든 것에 끝은 그래서 독서회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