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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책 주요활동/영화보고땡땡땡

버드박스-공동체의안과밖, 그 문을 열어줄 단 한 사람



2019년 첫 모임은 손희정조합원님의 제안으로 '버드박스'를 함께 보았습니다. 기존 영화관을 대관하거나 공동체상영을 하는 방식과는 아주 다른 무려 '넷플릭스' 상영판. 혼자 보는 것에 익숙해진 지금, 이 영화를 공동체와 함께 보면 어떻게 다를까가 궁금했다는 손쌤의 이야기와 함께 시청 시작.

결론만 말하면...'누가 안무섭다고 하셨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마자, 여기저기서 '아이고' 소리가 나왔습니다. 2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던 몸이 풀렸기 때문이죠. 사실 함께 짜증내고, 함께 웃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산드라블록언니)이 임신한 상태에서,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어떤 환영(?)을 보고 미치거나 자살을 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한 집으로 숨어들고,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생활하며, 부득이하게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에는 눈가리개를 하고 나갑니다. 그렇게 5년을 생존했던 주인공이 아이 둘을 데리고 '안전가옥'이 있다는 곳을 향해 급류가 흐르는 강을 통과하는 내용과 교차하며 영화가 진행됩니다.

영화를 본 후에 참가자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선, 우리 모두가 '보는 것', 혹은 '보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있는 건 아닐까, 잘 보는 것이 자랑인 시대에 '잘 듣는 것'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는 소감이 있었어요.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왜 하필 주인공이 임산부였을까, 그리고 왜 세상의 마지막에는 꼭 아이들이 등장해서 그 아이들을 지켜냄으로써 멸망 이후에 희망을 그리는 걸까. 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영화 초반, 사람들과의 관계를 달가워하지 않고, 자신이 임신한 아이도 반기지 않던 주인공이 특별한 상황에 놓이고, 그것을 헤쳐나간 이후에, '진정한 엄마'가 되는 것 같은 느낌도 달갑지 않다는 의견도 다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블로그검색을 해보면 이 영화를 '모성애' 혹은 '엄마가되어가는이야기'등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더군요.아닌데...)

원작소설을 읽고 자리해주신 신지민조합원님 덕분에 더욱 풍성한 얘길 나눌 수 있었는데요. 원작에서는 모두 백인으로 등장했던 사람들이 흑인, 소수자, 노인 여성 등으로 적절히 배분되어 그려진 점, 돌봄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아이들이 원작에서는 주인공을 돕는 존재라는 점, 그래서 주인공이 엄청 의지가 강하고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들의 작은 연대와 도움이 모아저서 구조되는 이야기라는 점 등이 많이 달랐고, 특히 헐리우드의 인클루전 라이더(포함조항/inclusion rider)가 실시되면서 인종배분에는 매우 충실한듯 보이지만 사실 서사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백인 여성인 주인공과 매우 트럼프식 인물인 백인 남성이라는 점에서 결국 형식적이 되어버린, 그래서 오히려 후퇴해버리는 느낌이라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왜 멸망이후의 서사에 주목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요. 사실 가끔 이미 멸망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좀비들과 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더이상 대안이 없다고 생각되는 세상에서, 다음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냥 세상은 망한 것 같다고 얘기하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나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킬 것인지라는 질문에 손쌤이 책 한권을 소개해주셨어요.

'자본주의 리얼리즘' 첫 장의 제목인 '자본주의종말보다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라는 말이 우리의 파국을 가장 잘 얘기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체제 밖을 상상할 수 없게 하는 장치들로 인해 어쩌면 우리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한 참가자는 멸망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멸망을 상상하지 못하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소중한 것들이 여전히 멸망 이후에도 소중하게 그려지는 전형적인 멸망 서사들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라는 얘길 해주셨어요.

그 밖에도 영화 이후 문제가 되고 있는 '버드박스챌린지(눈을가리고어떤활동을하는 것을 자랑하는)'라든가 정신질환이나 장애, 젠더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이 얘기되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후기에 다 담을 수 없는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꼭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손쌤의 마지막 이야기였습니다.

"위험할 것을 알고 오염될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 문제가 생길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타인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구원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드라블럭보다 더 강인하고 용기있는 현실 속의 누군가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 즐거웠습니다!

덧. 마지막으로 기쁜 소식은
19년도 손희정조합원님이 한달에 한번 정도 함께 영화보고땡땡땡을 하면 좋겠다고 얘기해주셨다는 겁니다.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제안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덧. 먹을거리대환영 메시지에 너무 많은 먹을거리를 가지고 오신, 이런 분들하고라면 좀 갇혀있어도 안두려울 것 같았습니다.



기록: 박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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