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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의 일상/땡땡이 인터뷰

김하운 조합원 : “아랍어 공부 같이 해보지 않으실래요?”

안녕하세요? 땡땡이 인터뷰를 맡은 조합원 미선입니다. “블로그 소식지 땡글땡글의 번영(?)을 위해서라면!”이라며 거창하게 인터뷰-er를 자청했지만, 실은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사는 이야기도 듣고,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던 조합원들과 말 한마디 더 나누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흑심 내지는 사심^^). 다양한 현장에 몸담고 있는 분들을 만나면서, ‘나는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도 찾아 가고 싶고요. 다들 어떻게들 사시는지 궁금합니다. *_*

에 아무튼 각설하고, 앞으로 땡땡이 인터뷰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불러만 주시면 어디든 갑니다! 010-땡땡땡-땡땡땡땡!)


* * *


지난 10월 20일, 망원동에 위치한 평화도서관 ‘나무’에서 땡땡 뉴페이스 김하운 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이날 인터뷰는 망원시장에서 공수해 온 빈대떡과 족발, 소주와 맥주 등을 맛깔나게 흡입하며,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어요(두 사람 다 어디서 피죽도 얻어먹지 못했는지, 하운 님은 족발을 뼈째 드실 듯한 기세였고, 저는 거의 초면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빈대떡을 찢어 가며 먹었더랬습니다. 어익후;;;)

실은 9월 조합원의 날에 처음 하운 님을 만났습니다. 짧은 첫 만남이었지만, 그 인상은 오래 가더라고요. ‘죽음’을 주제로 책과 삶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는데, 요르단 암만에 1년 넘게 거주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차분하게 말씀해 주셨지요(아마 그 자리에 오셨던 많은 분들도 기억하실 거예요).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가게 되었는지, 귀국한 이후에 땡땡책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건지 궁금한 게 산더미였습니다. 맛만 보자(?)며 사 간 소주와 맥주 한 병을 비우고, 또 한 병씩 사와 다 비울 때까지, 얼큰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돌아왔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을 간단히 듣고 싶어요.

평화도서관 나무 사서를 하고 있고요, 화요일, 수요일, 토요일에는 학원 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랍 문학 번역을 목표로 10년 정도 아랍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친구들과 일주일에 두 번 아랍어 스터디(초급반, 중급반)도 하고 있어요. 친구와 함께 아랍 관련해서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훗’ 출판사를 준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땡땡책과 공동체은행 빙고 조합원이에요. 두 곳 모두 가입한 지 오래 되지는 않았고, 알아가는 중입니다.


혹시 아랍 관련 전공이신가요?

그렇진 않아요. 종교학이 전공이에요. 좀더 구체적으로 밝히자면, ‘불교를 좋아하고 불교에 더 가까운 가톨릭 신자’(?)입니다.^^


지난번 ‘조합원의 날’ 때 팔레스타인에 가본 적도 있고, 요르단 암만에도 1년 정도 거주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나요. 아랍에 관심을 갖고, 반전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부터였어요. 그때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의 논리에 화딱지가 나서 이라크에 직접 가야겠다 마음먹었죠. ‘한국이라크 반전평화팀’이란 곳을 무작정 찾아갔죠. 지금 평화도서관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염창근(염)이 당시 그곳의 사무국장이었어요. 이라크에 가겠다고 하니 다들 말렸어요. 위험한 것도 있었지만, 가서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지 않다는 것도 큰 이유였어요. 당시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음을 접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떠났어요.

그런데 막상 가 보니, 당시에는 인간방패만 이라크 내로 들어갈 수 있더라고요. 이라크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쫓겨나 요르단에 머물렀고, 이라크에는 종전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어요. 한 5~6개월 있었죠. 당시에 한국에서도 많은 단체들이 한국이라크 반전평화팀을 통해 이라크 지원을 위해 들어갔어요(한국이라크 반전평화팀은 운동단체, 정치권, 시민단체들이 모여 구성된 코디네이터 단위예요). 아마 그때가 최고로 안전했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의약품 지원을 하는 단체도 있었고, 공부방을 운영하거나 보건소를 운영하는 곳도 있었죠.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귀국을 했는데(저는 보고서를 쓰던 일이 있어서 그 작업을 마무리 짓느라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는 조금 늦게 귀국했고요), 철수하고 나서 급속도로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마지막 비공식 인원이 남아 있었을 때에 UN본부가 거주하던 호텔에서 폭발도 있었고, 이후에는 시아-수니 간에 자살테러가 본격 시작되었어요.


집에서 반대는 심하지 않았었나요?

처음엔 몽골에 간다고 하고 나왔죠. 그러다가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라크에 있다는 사실이 집에 알려질 뻔하여, 제가 직접 알렸어요.


요르단 암만에는 어떻게 1년 동안 머물게 된 거였죠?

이라크 다녀온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는데,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에 시달렸던 것 같아요. 전장에 친구들을 남기고 온 것이니, 처음에는 테러나 공습 관련한 뉴스만 나와도 친구들이 무사한지 확인을 해야만 했어요.

뭔가 하고 싶은데, 내가 활동하고 싶은 단체를 찾지 못한 채로 몇 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간간이 이라크에서 같이 지냈던 사람들을 만났고요. 그러던 중에 활동가 친구들이 ‘평화바닥’이라는 단체를 만든다고 해서 거기에 참여했어요(2004년). 2006년에는 소설가이기도 한 오수연 언니를 주축으로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일명 ‘팔다리’)가 만들어져서 거기에도 참여했었어요. ‘팔다리’ 활동하면서 한 번 팔레스타인에 짧게 방문했었고, 그후에 한 번 더 방문을 했어요. 비자 연장하러 잠깐 나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쫓겨났죠. 그래서 요르단 암만에 1년간 거주하게 되었던 거예요.


땡땡책 협동조합에는 어떻게 가입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에요. 예전엔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 행사에 가서도 말 한마디 안 하고 있었죠. 사람들에 관심도 별로 없었고요. 그런데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암만에 거주하다가 귀국하면서 제가 좀 많이 달라졌어요. 달라져야겠다 마음을 먹었던 것도 있고요.

그간 공동체를 꾸리고 무언가 만들어 가는 데에 구경꾼에 머물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구경꾼이 아닌 당사자로서 무언가 ‘진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굉장히 자본주의 시스템에 많이 길들여진 사람이고, 그게 참 편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나 스스로 그걸 깨 보고 싶었어요.

요즘은 사람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아마 예전 같았다면 지금 이렇게 인터뷰에 선뜻 응하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사실은 사람, 감정보다는 논리에만 반응하던 사람이었거든요. 처음 이라크에 가야겠다 마음먹었을 때에도 감정적인 동요에서였다기보다 미국의 전쟁 논리를 이해할 수 없고 거기에 화가 나서였죠.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그 안의 사람들은 배경처럼 인식되고 머릿속에는 온통 논리만 가득 찼었어요. 그러다 이라크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꼬마 소녀가 제 볼에 뽀뽀를 하며 인사를 해주었는데, 그제야 사람들이 보이고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다녀온 이후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했었는데, 이라크 안팎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어요. 바로 연락해서 내 친구들이 무사한지 확인을 해보곤 했는데, 조금 지나서는 ‘내 친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가족이나 친구는 죽은 것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언젠가는 이런 경험들을 리포트로 써서 발표하다가 수업 중에 오열을 한 적도 있어요.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다녀오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하면서 ‘내 일’이라고 할 만한 범위가 확 넓어진 느낌이에요. 세계가 넓어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과정들을 거쳐 나름 내적으로 성숙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은 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장 가까운 친구들만 해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얘기를 하지 않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주변 사람들 중에는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관련해서 무언가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거나,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이들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그동안 쌓아 왔던 것들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지금부터라도 그 역량을 쌓아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땡땡책에 참여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 연장선상에 있고요. 아는 사람 소개를 받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페이스북에서 보고 제 발로 찾아온 것이에요.^^


                     ▲ 평화도서관 ‘나무’에서 하운 님과 만나다. 사진 찍는 것은 여전히 수줍다고 한다.


아까 자기 소개하면서 ‘훗’ 출판사란 곳에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곳인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간단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랍 문화나 문학 관련해서 전문적으로 책을 내는 출판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금이 넉넉지 않으니 처음엔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을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도 했었죠. 그런데 사람을 모으고 하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이상적이기는 한데, 처음에는 아랍어도 공부하고, 아랍어 번역가 풀도 만들어서, 문화나 문학 관련한 출판도 하는 모델로 생각을 했어요.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랍 문화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다기보다, 기술적으로 언어를 습득해서 기업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지금 저도 그렇고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은 사실 어린이 도서나 신문 기사 정도는 번역할 수준이 돼요. 그런데 꽤 수준 높은 문학을 번역할 수 있으려면 4~50년 정도 멀리 내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꼭 직역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필요하다면 영어나 유럽어권에 소개된 책들을 중역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아, 그런데 아직 책은 한 권도 나오지 않았어요.^^ 사무실도 따로 없고요.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생존 비용’으로 쓰고 싶지는 않아서요. 그 원칙은 비단 출판사 사무실뿐 아니라, 저 개인의 생존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왜 아랍 문화나 아랍 문학을 번역해서 출판하고 싶은 건가요?

운동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곳 사람들의 삶, 철학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쉬운 경로가 문화, 문학이란 생각이 들어요. 문화적 공감대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더 많은, 더 깊은 이야기가 가능할 것 같아요. 공감대가 없는 상태에서 ‘당위’적인 이야기들에 매달리게 되면 소진되는 경우도 종종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 관심이라는 축들은 서로 맞물려 가는 고리 같아요.


혹시 땡땡책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아무래도 제 관심사인 아랍 문화 관련해서 같이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난번에 <성스러운 도시> 상영회를 했던 것처럼, 영화를 같이 보아도 좋을 것 같고요.

이스라엘을 싫어하다 보니, 이스라엘 자본이 들어간 영화가 ‘브랜드 이스라엘’을 세탁하는 수단으로 엮이는 종류의 일이나 행사는 꺼려요. 그런데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잘 담겨 있어서, 언젠가 한번 주변 사람들과 꼭 같이 보고 싶었던 이스라엘 감독의 영화가 있어요. <Defamation>(‘명예 훼손’)이란 영화인데, 이스라엘 내에서 ‘반유대주의’가 미치는 영향, 그리고 ‘반유대주의’에 대한 인식(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약자처럼 인식하게 하는)이 고양되는 메커니즘을 추적하고 있는 영화예요. 실제 이스라엘에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반유대주의’에 대해 학교와 가정에서 주입받고, 자유주의적인 지적 풍토하에 이 주제와 관련한 토론을 하죠. 무서울 정도로요.

자막 작업을 하다가 한 번 날려서 잠시 멈춘 상태인데, 자막 작업을 마치면 땡땡책에서 상영회를 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Defamation>(요아브 샤미르, 2009)


땡땡책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매주 수요일, 평화도서관 ‘나무’가 야간 개장을 해요. 와서 책도 보고, 밤늦도록 술도 마시고, 편하게 있다 가시면 좋겠어요. 요즘 바깥 날씨가 너무 춥잖아요. 많이들 놀러 오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