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땡땡책협동조합의 하루를 기록으로 남겨볼까 해요. 날마다,는 자신없지만 하루하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통해, 공간을 통해 전과는 다른 세상을 마주하면서 드는 잔상 나부랭이와 땡땡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쌓으면 좋겠다, 싶네요. 어느새 땡땡이 만들어진 지도 1년이 훌쩍 지났고, 고사이 새로 알게 된 분들만 190명을 넘기고 있어요. 이 소중한 일상,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일단 드문드문이나마 기록해 놓은 것부터 옮겨놓고 이어가볼게요.(이야기에 앞서 지난 기록들을 퍼다나르고 있는데, 생각보다 여러 편이어서 본의 아니게 도배를 하고 있지만, 곧 끝나요^^ 우리들의 소중한 기록들이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용^^;;)
복기. 땡땡의 민낯. 함께 깃발을 든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_땡땡책 롸이프_140206
땡땡은 지난 일 년 간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혼자 책을 읽고 혼자 사유하고 혼자 혁명을 꿈꾸다 혼자 회의에 빠져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식어버리는, 그런 냉소적인 책 읽기 말고, 함께 모여 책을 읽고, 내 삶과 네 삶을 부대끼며, 저마다 바라는 대로 살기 위한 삶의 조건들을 모색하고,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사람들과 무엇이라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랬다. 이를 통해 자본의 폭력에 여지없이 무너져가는 세상에 작은 균열이라도 낼 수 있다면.. 아니, 있기를 소망했다.
함께 모여 책을 읽는 게 좋았고, 서로의 삶과 생각을 나누고 공론의 장을 만들어가면서 때로는 공동 행동에 나서기도 하고, 공공의 장을 스스로 넓히며 참여할 수 있는, 협동운동으로서의 사회적 책읽기 조합을 꿈꿨다. 그리고 유신말기 1년 반 동안 운영되다 정권에 의해 사라진 양서협동조합에서 그 뿌리를 찾았다.
7개월 남짓 준비모임을 거치면서 우리가 바라는 조합에 대해 나눴고, 서른한 명의 사람들이 함께 깃발을 들겠다고 나섰다. 모여든 사람들은 긴 시간을 들여 조합의 목적을 설명해낼 낱말들을 논했고,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시켰다.
“우리는 함께 책 읽기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이웃과 연대하며 자율과 자치를 추구하는 독서 공동체로, 건강한 노동으로 책을 만들고 합당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간다.”
지금은 명함에도, 리플릿에도, 소식지에도 담긴 이 한 문장을 만드는 데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세 차례나 모임을 가졌다. 시간이 곧 돈인 세상에, 효율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는 시대에 이 비효율적이고도 무모한 시도는 생각 밖으로 지지를 받았다. 내가 속한 사회는 민주적이기를 원해도, 내가 살아내는 삶은 그렇지 못한 현실. 그것이 늘 서글프지만 세상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거라는 체념을 몸으로 익혀오며 빚어낸 회한 같기도 했다. 민주주의를 글로만 배워온 사람들, 삶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땡땡책을 통해 바닥에서부터 실험해보려고 했던 욕구들. 내가 읽은 책 속의 날 선 지식을 내 삶으로 그대로 옮겨보려는 실험들.. 이런 게 가능한 게 땡땡책이었다.
그러다보니, 정치참여를 금하고 있는 데다 똑같은 정관과 운영구조를 요구하는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조합을 만들 것인지도 중요한 논의거리가 되었다. 일상에서의 민주주의, 생활정치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에겐 국가에 반하면 언제든 해산시킬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면서까지 협동조합의 틀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의사결정구조 또한 조합을 대표할 이사를 뽑는 순간, 모두에게 열려 있던 논의가 축소되고 몇몇 개인에게 집중될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그래서 제안된 게 31인 위원회. 준비모임부터 이어진 논의 틀을 유지하면서 6개월간 실험기간을 거치기로 했다.
그 가운데도 사업을 지속시키려면 집중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사무국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모임이 사무국을 지원하는 구조로 창립과 함께 바로 가동시키기로 했다. 나머지는 모두 열어두었다. 정관 역시, 조합의 목표, 사업계획, 출자금이나 조합비 납입에 관한 논의가 마무리되어서 다음 총회로 넘겼다. 의사결정기구가 없으니, 임원이 없고, 임원이 없으니 대표도 없었다. 조합비를 모으려면 그릇이 필요했고, 사무국에서 출판등록과 함께 사업자등록을 했다.
땡땡책협동조합 이름으로 낸 사업자등록은 반려되었다. 세무서에서는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협동조합” 명칭을 쓸 수 없다고 했다. 협동을 이야기하면서 명칭부터 배타적 사용권을 주장하는 법에 대해 조합원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시작부터 진을 뺄 수는 없으니 “땡땡책”으로 이름을 바꾸어 사업자등록을 마치되, 땡땡책협동조합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한편, 기회가 닿는 대로 이 문제를 공론화시켜내기로 했다. 그래서 땡땡책협동조합은 정부로부터 인가받은, 달리 표현하면 정부가 원하면 언제든 해산시킬 수 있는 법인격의 협동조합이 아니다. 법적인 형태는 “땡땡책”이라는 이름의 일반과세자인 회사이고, 내용적으로는 직접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운영한다. 주요 소통 기구는 페이스북 그룹과 카페, 독서회와 31인 위원회를 통해 상시적으로 모아낸다.
10월 창립총회 이후, 가장 먼저 친구출판사 모임을 꾸렸다. 땡땡책 사업 모델의 하나인 도서 직거래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도서 직거래는 책의 소비 주체인 독서모임과 생산 주체인 친구출판사를 연결하여 기존의 대형화되어 있는 유통구조 속에서 작은 출판사들이 경험하는 자본의 ‘갑질’ 문제에 대해 작은 균열을 내는 시도이기도 했다. 친구출판사가 정한 공급률을 지키면서, 책이 언제 나왔다 사라지는지도 모르게 3주로 줄어든 책의 생애주기를 연장시키면서, 다양성에 기초한 책의 생태계를 복원시키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자본화된 시장에서 점점 설 곳을 잃어가는 작은 출판사들이 조직된 소비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일은 책을 매개로 만난 우리에게도 소중한 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땡땡책의 친구출판사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에 대해 논의했다. 처음에 모인 친구출판사 8곳은 1인 출판사를 비롯하여 소규모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고, 준비모임에서부터 뜻을 같이해 왔다. 이분들이 중심이 되어 논의했고, 친구출판사의 조건은 만들어냈다. “건강한 노동으로 책을 만들고 합당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간다.”는 땡땡책의 목적을 바탕으로, 땡땡책협동조합이 내세운 정관 목표에 동의하고, 소규모 독립 출판, 민주적인 운영 구조, 합리적인 배분 구조를 가진 출판사를 대상으로 한다는 3가지 조건을 마련했다. 협약서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1) 친구출판사와 독서모임의 관계는 책을 사고파는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과 사귐의 관계다. 양자는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디딤돌이 되는 관계를 맺는다. 땡땡책협동조합에서의 교환은 함께 책읽기를 통한 상호교류를 목적으로 삼는다. 2) 친구출판사는 독서모임의 욕구와 기획을 존중하고 건강한 노동으로 책을 만드는 문화를 확산시킨다. 독서모임은 친구출판사에서 기획되고 출간된 책을 함께 읽고 나누며 독서 공동체를 확산시킨다. 3) 친구출판사의 책은 적정가격으로 독서모임에 공급되고, 독서모임은 친구출판사의 활동에 기여한다. 4) 이런 목적을 위해 친구출판사와 독서모임은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두텁게 한다.
11월엔 31인 위원회를 전체회의라 부르며 자리를 만들었고 조합 사정을 공유했다. 12월엔 회의라는 형식이 너무 딱딱하기도 하고, 새로 들어온 조합원에게 조합 돌아가는 사정, 특히 다른 조합원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방식을 좀 가벼이 하여 조합원의날로 바꾸었다. 그렇게 2월까지, 세 차례 조합원의날을 치렀다.
4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조합원은 117명으로 늘었다. 여기저기 부족한 게 생겨났다. 하나는 조합 운영에 필요한 최소 경비가 부족했고, 때마다 제안되는 사업들을 논의하고 결정하고 집행할 운영 구조가 필요했다. 조합원의날은 서로를 알고 땡땡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공유하는 장이었지만 조합원이 늘면서 운영 구조로서의 역할을 다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무국에 전적으로 위임된 것도 아니고, 결정 구조를 명확히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재정 문제는 월조합비를 1만원 이상 CMS로 받기로 한 만큼, 수익사업에 대한 부담을 덜 가져도 되었다. CMS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면 수수료를 많이 내야 해서, 사무실을 나눠준 교육공동체 벗의 지부로 등록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조합비는 땡땡책협동조합의 이름이 아니라 ‘교육공동체 벗’의 이름으로 인출된다.
창립 당시 사무국 운영안을 고민하며 최소 경비를 산출해보니 이에 필요한 적정수의 조합원은 6개월간 300명 정도. 그만큼만 모이면 땡땡책은 지속가능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창립총회에서는 사무국의 성긴 운영안과 예산안이 모두 통과되었다.
예상보다 조합원은 빨리 늘지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4개월에 접어들면서는 200명 가까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출자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달마다 조합원의 날에 공유해왔고, 적정수의 조합원을 확보하기 위해 사무국에서는 조합에 대해 잘 알릴 수 있는 리플릿과 소식지를 내놓았다. 조합원을 확보할 방법들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데, 출발을 같이한 조합원의 참여가 눈에 띄게 줄고, 새로 들어온 조합원들이 이 상황에 바로 놓이면서 땡땡은 왜 협동조합으로 등록하지 않았는지, 왜 운영구조가 없는지, 재정 상황이 열악한데 돈을 버는 사업에 더 집중해야 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로 초기화되었다. 땡땡책의 지금을 돌아보게 하는 시의적절한 물음이었지만 당혹스러웠고, 불편한 자리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사무국을 맡고 있는 나를 보니, 땡땡책이라는 회사의 자영업자가 되어 있고, 재정이 부족해지면서 조합의 지출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활동비를 고민하게 되었다. 땡땡책을 지속시키려고 사무국이 필요했는데, 사무국을 운영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운영 구조 또한 애매모호한 상태에 놓였다. 조합원이 늘면서 조합원의날도 대표성을 지니기 어려워졌다. 누구와 어떻게 책임 있는 논의를 해야 할까.
재정 상황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려면 지출을 줄이거나 수입을 늘려야 하는데, 적정수의 조합원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깃발은 든 사람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겼는데 창립 이후 대부분 관망세로 돌아섰다. 도서 직거래를 통한 수입은 아직 미비한 수준, 땡땡책에 전업으로 참여하기로 한 판단이 잘못된 건 아닌지 돌아봤다.
그러다보니 조합원들이 땡땡책을 정말 지속시키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런 생각 자체가 현 상황에서 도망가기 위한 자기합리화인지 냉혹한 현실에 대한 인식인지 헷갈리지만 조합원 모두에게 되물어야겠다. 땡땡책을 정말 지속시켜야 할까. 그럼 왜 지속시킬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들지 않는지. 먼저 깃발을 들었던 사람들이 한두 명만 늘려도 땡땡책의 재정은 쉽게 안정화된다.
돌이켜보면, 땡땡책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필요하면 소식지를 만들고, 배가 고프면 다른이도 배고플 테니 모임엔 먹거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땡땡의 노래 「책과 사람 사이」는 그래서인지 조합원들의 마음속에 쑥, 들어와 듣는이의 가슴을 움직였고, 먼저 고민한 사람들이 독서 모임을 꾸리고, 함께 할 행동들을 제안해왔다. 그 속에서 사무국은 제안되고 실행되는 일들에 윤활유를 바르고 지원하기만 하면 됐다. 해보려 했던 일들을 머리로 재단하기 전에 할 수 있는 만큼 몸으로 부딪치며 경험을 축적하는 시간, 창립 후 6개월은 이 실험을 가능케 하는 기간이었다.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해내는 것, 보이지 않는 우리들을 다시 불러내는 데서 출발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땡땡책을 돌아봤다. 땡땡책을 정말 지속시켜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깃발을 들겠다고 나선 사람들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면 한다. 내가 내린 깃발은 누군가가 짊어져야 하니까. 짊어지고 짊어지다 지치면 깃발은 사라질 것이다. 또한 깃발을 들 기회를 놓친 분들은 깃발 아래로 모여 같이 나눠 들면 좋겠다. 깃발은 기수만 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기수도 어깨는 아프니까. 옆사람이 나눠 들면 기수의 어깨가 가벼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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