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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책 주요활동/차별고민대화모임 '아하'

'아무 말', 그리고 지금

‘아무 말’, 그리고 지금

 

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 양선화

 

땡땡책에는 차별고민대화모임 ‘아하(아무 말이나 하지 마요)’가 있습니다. 지난 4월 26일(목)에는 아하가 마련한 간담회 <조직 내 차별과 폭력 그 ‘이후’에 관하여>에 다녀왔습니다. 아하가 조합의 공식 위원회라는데 아직 낯선 조합원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그래서 간담회 후기를 겸해, 아하의 탄생 배경에 대해 조금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말하자면, ‘아무 말이나 하지 마요’의 그 ‘아무 말’이 조합에 불러온 격동에 대해서입니다.

2013년 조합을 창립하기 전부터 함께 준비해왔고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지금까지 이사회 지박령(?)으로 남아 있는 저에게 땡땡책협동조합은 이 ‘아무 말’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그리고 ‘아하’가 결성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조합원으로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인’ 욕? ‘평소 같은’ 분위기?

2016년을 맞이하기 바로 전날, 조합원 여러분은 무얼 하고 계셨나요? 기억 못하시는 분이 많겠지만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땡땡책 ‘친구출판사(출판사 조합원)’ 공식 단체카톡방에서 당시 조합원이었던 한 남성이 이런 새해 덕담을 던졌습니다.

“새해에는 욕 실컷 하겠네요. 병신년 안 보는 병신년 되길 바랍니다.”

기억하시죠? 박근혜를 염두에 둔 여성혐오+장애인혐오 욕설이 진보적 농담처럼 퍼지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저 말은 정말로 ‘아무 말’, 톡방의 누구도 직접 겨냥하지 않은 ‘일반적인 욕’처럼 공중에 뿌려졌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욕이란 게 있을까요? 아니, ‘일반’은 누구일까요? 그곳은 ‘공중’이 아니었고, 그 욕설이 날아와 꽂힌 곳은 ‘일반’이 아니라 그 방에 있던 한 조합원의 마음 한가운데였습니다. 고통을 느낀 그 조합원은 가장 활발한 조합 소통 공간인 페이스북 그룹에 톡방 캡처를 올려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달린 댓글은 ‘왜 실명을 그대로 두고 캡처를 올렸느냐’며 문제제기 방식부터 문제 삼는 2차가해성 발언이었습니다.


“문제제기자는 지독하게 ‘객관성’과 싸우는 사람입니다.”

(간담회 이야기손님 혜만님 말씀 중에서)


그 2차가해성 발언의 발화자는 저입니다. 2년도 더 전에 일어난 ‘아무 말’과 ‘아하’의 존재가 저에게 더욱 특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시 저는 그 ‘아무 말’이 특정인에 대한 가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제 발언이 2차가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제가 가진 지위 권력에 대해서도 내심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저 내가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몰리는 듯한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문제제기자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아무 말’을 던진 자는 억울해하며 조합을 탈퇴해버리고, 당시 조합의 유일한 공식기구였던 이사회는 처음 겪는 이 사건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조합은 ‘평소처럼’ 돌아가기 시작했고 저 또한 조합 총회에 나가서 ‘평소처럼’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문제제기자는 활발히 활동했던 예전과 다르게 계속해서 소외감과 단절을 경험했습니다. 익숙한 구도지요? 문제제기자의 고통과 소외를 방치한 채 조직의 ‘평소 상태’는 이렇게 유지되곤 합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간담회 참석자 말씀 중에서)


26일 간담회에는 조합원보다 비조합원분들이 많았는데요. 이것은 다시 말해 ‘다른 조직’에서 비슷한 문제제기와 소외를 경험한 분들이 고민을 나누고자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중 한 분은 쓸쓸한 얼굴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사회적인 신념 또는 가치를 공유해왔고, 그런 만큼 믿고 있던 조직이잖아요. 그런데 한순간의 문제제기로 인해서 그 ‘이후’ 크고 작은 배제, 고립, 상실, 우울 등을 경험합니다. 그럼 그 조직을 떠나면 그만일까요? 떠나서 어디로 가야 하죠? 다른 조직은 그렇지 않을까요?

 

남아서, 함께 ‘역사’가 되자

‘어디로 가야 하죠?’라는 뼈아픈 물음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다들 이미 경험하신 듯했습니다. 저에게도 물론 답이 없습니다. 저는 다만 제가 겪은 하나의 사례, 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사건 ‘이후’ 문제제기자와 직접 만나고, 눈을 맞추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상대의 심경을 듣고, 나도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아하 초동 모임원들과 지금 공동대표로 있는 김민희 이사님 등과 함께 모여 이 문제에 대해 또다시 이야기하고, 답이 나오지 않아도 몇 번이든 다시 만나 계속 이야기하자고 이야기하고, 눈감고 도망치지 말자고 스스로 되뇐 시간들에 대해서요. 분명히 처음에는 억울하기만 했는데, 2년 반 동안 제 생각은 그렇게 서서히 달라져왔습니다.


“문제제기한다는 것=애정!”

“내가 기댈 수 있는/나를 기다려주는 한 명의 사람(들)이 있는 조직인가?

그런 가능성을 조직에 심어보는 것!”(혜만)


그래서 저는 다른 곳, 아마 존재하지도 않을 어떤 곳으로 떠나지 않았고, 아직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문제제기자를 포함한 아하 모임원들과 저보다 성숙한 조합원들이 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걸어주었기 때문에, 저도 제 자신을 성찰하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실질적 운영단위인 이사회가 이 문제에 충분히 공명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주로 좌절됐지만, 적어도 이제는 아하가 조합 공식기구가 되었고, 아하 모임원이 이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이번처럼 이 주제로 간담회 등 행사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언가가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초의 문제제기가 벽에 부딪히고 난 이후 이 정도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데만 해도 2년 반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조직에 문제를 제기한 한 조합원의 고통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함께 이야기해서 서로의 힘이 되어가는 전체 과정은 이보다 더 길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오랜 과정을 감수할 수 있는 애정이 있다면, 남아서, 함께 ‘조합의 역사’가 되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구성원들의 이해와 공감에 기반한 공동체 내 규칙 만들기의 과정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가장 모범적인’ 규칙보다는

‘우리 조합(원)의 특성이 잘 반영된’ 규칙이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주기적으로 모여 대화를 나누고, 이 내용을 조합에 공유하고 아카이빙하며,

왜 이런 규칙들이 나오게 되었는가가

‘기록, 조합의 역사’로 남을 수 있도록 하면 좋을 듯합니다.”

(아하 모임 발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