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땡땡책협동조합 백한번째독서모임 연말정산 시간이었습니다. 일단 올해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면서 어떤 책들을 읽어왔는지 되짚어봤어요.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은 모임답게 여러 장르와 스타일이 뒤섞여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꼭 신간만 읽지는 않았고 그때그때 추천을 받아 정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떤 모임원의 인생책이 섞여 있기도 하고, 어떤 모임원이 직접 쓴 책이 있기도 하네요.
- 1월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2월 이문영, <웅크린 말들>
- 3월 정미경, <가수는 입을 다무네>
- 4월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
- 5월 옥타비아 버틀러, <킨>
- 6월 노명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 7월 정세랑, <피프티 피플>
- 8월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 9월 강변구, <그 섬이 들려준 평화 이야기>
- 10월 쉼
- 11월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이 중에 완독률이 몇 프로일지는 상상에 맡깁니다.ㅋㅋ 빡세게 공부하는 모임이 아닌 것은 분명하고, 그러나 ‘책’이 빠진다면 우리가 이렇게 계속 만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저도 아직 정확히 정체를 모르는 느슨하고도 촘촘한 독서공동체를, 아무튼 계속해보겠습니다.
어제는 이 책들, 그리고 각자 다른 곳에서 읽은 책들 포함해 자신에게 최고였던 책들을 꼽아봤는데요. 여러분이 꼽은 책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서 공유드립니다. 당신의 올해의 책은 무엇이었는지도 나눠 주세요!
탤탤의 선택 -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올해 독서 관심사가 많이 변했는데, 그 흐름에서 알맞게 만난 책. 페미니즘으로 시작해서 점점 ‘몸’으로 좁혀가고 있었는데, 거기서 장애까지 가 닿은 것 같다. 여성과, 여성의 몸과, 우리 사회에서 비정상성을 띠는 몸에 천착하게 되고, 지금까지 기준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페미니즘 관련 책들로 많이 깼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론과 내 몸에 괴리가 존재했는데, 그 괴리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게 요즘 상태다. 그 기로에서 이 책이 중요한 작용을 했다.
이 모임에서도 읽었지만, 회사에서도 내가 이야기하자고 제안해서 어쩔 수 없이(?) 또 읽었다. 회사 사람들에게 막 흥분해 소개하면서 스스로 울컥할 정도로 좋았다. 워낙 이런 글 구조 자체를 좋아하기도 한다. 서론부터 결론까지 ‘와꾸’가 딱 짜여져 있는.
비슷한 흐름에서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도 좋았다.
[선화] 김원영 책이 김현경 책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인용도 하고 있고, 추천사도 받았고. 맥락상 이어지는 결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명은 변호사로서, 한 명은 문화인류학자로서 자기 방식으로 설득하고 있다.
수진의 선택 - 이문영 <웅크린 말들>
제목도 좋고, 내용도 아껴서 맛있게 먹을 만한. 하지만 친근감은 없다.
노명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그와 달리 나랑 여러 결이 비슷해서 좋았다. 비혼의 삶도 생각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사회학 책인데도 수필 같고, 편안한 베개 같다. 나는 사회학을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념어가 아니라 일상어를 활용해서. 이를테면 화장실 가는 것조차 사회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다. 용어가 일상일 뿐이지 시선은 지극히 사회학적이다. 아카데믹하다기보다 자기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 그걸 공유하는 게 노명우의 사회학인 것 같다.
반면 <웅크린 말들>은 글쓰기 사전 같고, 진하다 못해 먹기 불편한 사골 같기도 하고, 챕터마다 저자의 발자국과 시선이 너무 선명하다. 기자 또는 글쓰는 이의 어떤 ‘극’을 보는 것 같다. 등산으로 말하면, 에베레스트 등반한 사람?
어디 가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웅크린 말들>로 할 것 같다. 나랑 비슷한 걸 떠나 여러 사람의 삶, 현장 진행형, 몰랐던 삶, 현존하는, 부딪힐 수 없지만 알아야 하는 삶 같은 것들이기 때문에.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읽혀지는 한계는 있을 것 같다. 읽는 사람마다 흡수율이 많이 다르지 않을까.
[혜란] 나도 <웅크린 말들> 놀랄 정도로 좋았다. 난쏘공 감성으로 르뽀를 쓴 셈인데. 막장에서 시작해서 안산단원고로 이어지는... 어느 한 구절이 뭉클한 게 아니라, 전체 흐름이 가슴 미어진다.
[수진] 난쏘공 같은 책은 계속 선물해서 내 것이 안 되는 것처럼, 이 책도 그런 느낌이다.
[탤탤] 다른 많은 글들에서 계속 단원고 얘기를 하긴 하지만, 특히 이 책에 수록된 글을 읽을 때 너무 못 참겠는 기분. 오열했다. 건조한데도. 왼쪽 면에는 실제 대화를 그대로 싣고, 오른쪽 면에는 사회적 해석으로 구성한 것도.
혜란의 선택 - 장수진 <사랑은 우르르 꿀꿀>
좋았던 책이 많다. <웅크린 말들> 좋았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도, 공부를 끊은 이후로 오랜만에 신선했고, 소설은 <피프티 피플>이 정말 좋았다. 오늘은 다른 분들이 안 가져올 것 같아서 시집을 골라왔는데, <사랑은 우르르 꿀꿀>. 다락방의 미친 언니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숨 막히게 시를 읽었는데, 올해 나온, 그리고 올해 읽은 여성시들이 유난히 다 좋았다. 강성은 <Lo-fi>, 정한아 <울프노트>, 김소형 <ㅅㅜㅍ> 등.
<사랑은 우르르 꿀꿀>은 작년에 나온 책. 문학 전공자 아니고 연극하던 분인데, 그 특징이 시에 많이 살아 있다. 여성 시인들이 주로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여성시의 특징일 수도 있고, 깨치고 나가야 되는 부분일 수도 있다, 어느 시점에서는. 이 시인은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 연극을 하면서 나 아닌 인물의 언어를 발화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내용도 재미있고 자기 감정에 빠져서 쓰지 않는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 늘 골목에서 시작된다 / 사랑은 / 아무도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 / 골목길에서 / 불 켜진 내 방 창문을 / 바라보는 것 / 밤의 망치를 / 줍는 것”
여기서 마지막에 ‘밤의 망치를 줍는 것’이라는 구절을 안 썼으면 그냥 대중 감성시로 인기를 끌었을 수도 있지만, 거기서 끝내지 않고 암전이나 반전처럼 이미지를 겹치는 식. 이탤릭체 등으로 화자가 다른 것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게 여성의 현실 경험하고도 무관하지 않고.
변구의 선택 - 장애여성공감 <어쩌면 이상한 몸>
처음에 이 책을 사게 된 계기는 회사에서 장애 부모 관련 기획을 하다가, 검색에 잡혀서. 나는 이 책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보다 훨씬 좋았다. 사실 <실격>을 보면서는, 이 얘기를 하는 데 꼭 현학적인 논의가 필요했을까 생각했다. 기존 사회학 논의에서 많이 가져오기도 했고. <어쩌면 이상한 몸>은 정체성 수용 문제에 있어서 더 단순하고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시작하는 느낌이다. ‘내가 왜 존중받아야 하지’를 고민하거나 계속 강조해서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자기 부정적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거, 쓸모 있음과 없음에 대한 고민들을 이야기할 때 가장 깊이 들어간, 래디컬한 책이 아닐까 싶다.
요새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들을 <개인적 취향>부터 시작해 쭉 보고 있는데, 그도 장애 자녀를 둔 경험에 대해 계속 얘기한다. 받아들이면서 자유로워지는.
이런 주제들이 다 맞닿아 있는 가운데, 그중 <어쩌면 이상한 몸>은 ‘쓸모와 자기 수용’ 면에서 거의 완결을 짓는 느낌, 일종의 ‘끝판왕’ 같은 책이다. 이분들 이상으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어지는.
[선화] 아직 책은 못 읽었지만 장애여성공감 북콘서트에 가서, 비슷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 자체로 책이고, 첨단이고, 끝이면서 시작인 걸 보고 있는 감동.
[변구] 어떤 존재든지 존엄하단 얘기를 가장 설득력 있게 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선화] 근데 이런 책 진짜 안 팔려 ㅠㅠ
[혜란] 이런 책 내는 거 자체를 활동이자 운동으로 하시는 것 같다.
선화의 선택 - 수전 브라운밀러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이 책이 제일 좋았다는 건 아니고,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꼭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었다. (사실 제일 좋았던 건 <사람, 장소, 환대>다. 경전 같았다. 사람이 뭔지, 사는 게 뭔지, 교본 삼아서 그대로 살고 싶은 책.)
‘강간’에는 당연하게 ‘범죄’가 붙는데, 물론 강간은 범죄이지만 거기서 범죄를 떼고 ‘문화’를 붙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강간범죄에서 강간문화로 인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나아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프로파간다, 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는데, 이 책이 진짜 잘 쓰여진 강력한 프로파간다라고 생각한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강간문화)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 통계는 팩트인 것 같지만 언제 어디에 갖다 쓰느냐에 따라 역시 직조되는 것이니까.
[혜란] 그 전까지 읽어온 페미니즘 책들과는 확 결이 다른 책이 맞다. 이 책 전후로 해서, ‘몸’으로 논의의 중심이 이동한 느낌. 바닥을 깊게 긁어내서 물갈이하듯이. 그런 면에서 분명히 올해의 중요한 책이지만, 얼마나 많은 공감하는 독자들을 만났을지는 의문이다.
[선화] 내가 찾아본 바로는 처음 화제성에 비하면 생각보다 많이 이야기를 안 하는 것 같았다.
[수진] 궁금한 게, 이런 책을 스스로 페미니즘과 관계없다고 여기는 주변 여성에게 권했을 때 어떨까? 공감할 수 있을까?
[선화] 안 돼요. 그러시면. 표지에 ‘강간’이라고 쓰여 있는 책인데.
[혜란] 오히려 몸의 경험에서 공감할 수도 있다. ‘우리’끼리만 읽어서 해결될 문제들은 아니다. 여성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 <배틀 그라운드>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다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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