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살이] 2편.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땡글땡글 블로그에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홍시가 중성화수술 혹은 불임수술을 받았던 날 썼던 글이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중성화'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할 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오늘 올리는 글은 그 생각을 정리한 글은 아니구요. 수술을 시키면서/받으면서 홍시와 나누었던 '어떤 것'에 대해 기록했던 글입니다.
[홍시살이] 2편은, 그날의 기록으로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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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첫 날
(묘하게도 저는 그날 에이프릴 카터의 <직접행동>을 읽고 있었군요.)
고양이를 집에 들이기로 결정하기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었다. 고양이 때문에 안락함과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을 견딜 수 있을지,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을지, 키우다 귀찮아지는 건 아닌지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에서부터, 고양이 자체보다 애묘인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어서는 아닌지, 사진을 찍어 자랑질을 하고 내 인터넷 생활의 컨텐츠를 풍성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은 아닌지 등의 내밀한 욕망의 문제까지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말하자면, 장고의 끝에 내렸던 결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전혀 고려하지 못했거나 혹은 안했던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내게 '가족'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애완이냐 반려냐의 용어 사용을 놓고 벌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신경전에서 늘 '반려'에 손을 들어주었으나, 그건 말하자면 '인간 사고의 한 진보'라는 의미에서 휴머니즘을 넘어선 (척하는) '겸손한 언어 사용'에 대한 인정이었다. 더불어 수많은 애묘인 친구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같은 것이기도 했고. 여튼 반려묘든 애완묘든 뭐가 생긴다고 해도 '고양이 한 마리를 돈과 정성을 들여 키운다' 정도가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이렇게 가족이 되어가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둘째 날, 분노의 그루밍
(과 함께 노트북 작업을 방해 중.)
중성화 수술을 위해 병원에 가는 길부터 냐옹냐옹 울었던 홍시는, 마취 주사를 맞고 내 품으로 넘어오자 가만히 안겨서는 나를 쳐다보다 '앙' 하고 내 볼을 물었다. “이런 곳에 데리고 왔다고 화를 내는 거네요.” 의사의 한 마디에 기분이 묘해졌다. 홍시가 나한테 화가난 것이다. 화라니? 화라는 것은 내 행동에 대해 모종의 책임을 묻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종종 홍시가 나한테 짜증을 내긴하지만, 내 행동에 책임을 물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내 '뭐, 그게 내가 여길 데리고 왔다고 그러는 거겠어. 마취약때문에 기분이 이상해 그러겠지'라고 생각하며 곧 잊었다. 수술은 대략 30여 분이 걸렸고, 나는 의외로 의연하게 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취에서 깨어나는 걸 보고 수액을 맞추는 4시간 동안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시간이 흘러 홍시를 데리러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을 때, 케이지 안의 홍시는 하악질 작렬 중이었다. 간호사가 어처구니 없어 하면서 "이제까지 얌전히 있었는데, 엄마가 오니까 하악질을 하네요?"라 말한다. 심하게 하악질을 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케이지 문을 열었는데, 문을 열자 하악질을 하면서도 내가 뻗은 팔로 이내 안겨왔다. 홍시를 안아서 이동장 안에 넣으며, 다시 또 기분이 묘해졌다. 왜 나한테 화가 났을까. 내가 온 건 어떻게 알았을까. 나한테 화가 났다는 표현은 어떻게 할 줄 아는 걸까. ... 괜찮애, 언니가 왔어, 언니가 잘못했어, 이런데 데려오는게 아닌데, 그지?
수술 셋째 날,
병원에 드레싱 하러 가는 길
집으로 돌아와 캔을 하나 따주었더니 옴싹 옴싹 잘도 먹는다. 어두운 곳으로 숨어 들어갈 것이라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옆에 딱 붙어 앉아있다. 그런데도 뽀뽀를 하려고 하면 똥발로 내 얼굴을 밀며 고개를 돌린다. 아직, 싫다는 거다. 만지면 스윽 도망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 옆에 눕는다. 여전히, 화가 났다는 거다.
나한테 화를 내는 것이 하나도 밉지가 않다. 나에게 생명의 어떤 부분을 맡기고 있는 이 녀석이, 자신이 당한 어떤 고통에 대해 나의 책임을 묻는 것이, 가슴이 아프면서도 이상하게 뭉클하다.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 큰 수술을 했고, 이제 같이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에, 우리가 점점 '가족'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처음엔 애완동물과 주인으로 만났지만, 아주 천천히 가족이 되어가는 것이다.
치료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의 어느날 아침.
오늘 하루는 덕분에 공쳤고, 내일도 하루종일 집에 있다가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 논문 때문에 입술이 바짝 바짝 마르는데, 예전 같으면 뭐를 집어 던져도 집어 던졌을 심리 상태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일보다 중요한 것이, 생겼다.
2013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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