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솔직히 빵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라난 곳이 충청도 오지여서 그런가 어렸을 때 빵을 먹을 기회가 워낙 드물기도 했고 어머니께서 간식거리라고 만들어 주시는 빵이라는 것이 그닥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뭔가 간식거리처럼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삼남매를 위해서 흔히 개떡이라고 하는 것, 밀가루반죽을 그냥 넓게 펴서 익혀주는 그 말도 안되는 개떡을 주로 만들어 주시곤 했었다. 물론 가끔 담배잎 따다가 지쳐서 헐떡거리면 그 개떡에 귀한 흑설탕을 넣어서 쪄 주셨는데, 이게 맛은 호떡이랑 비슷한데 모양은 두꺼운 또띠아처럼 생긴 여튼 그런 커다란 개떡을 주로 해 주셨다.
그런 나에게 서양식 제빵을 맛본다는 건 그야말로 횡재의 순간, 아니 신세계가 열린 날이었다. 그것도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행운이 닥친 그런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담배 수매를 마치고 오시면서 거나하게 약주 드시고는 슈퍼 같은 데서 파는 카스테라 빵을 사오셨는데 그 부드러운 맛이란 얼마나 맛있던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이제까지 먹던 어머니의 개떡은 진짜로 개떡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튼 그 날은 야금야금 카스테라 빵을 먹으면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매일매일 장에 가셔서 약주를 거나하게 드시고 오시길....
하지만 늘 문제는 어머니셨는데 가난한 살림살이에 그런 헛된 씀씀이를 매우 싫어하셔서 그 날도 어김없이 아버지와 대판 싸우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카스테라만 먹을 수 있으면 맨날 집안이 싸움판이어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슈퍼용 카스테라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어느 날인가, 여튼 그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이 일의 시작은 한 마디로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오기때문이었다.
원래 우리집은 담배농사를 지으면서도 따로 건조실이 없어서 언제나 아버지 친구분 건조실을 이용하곤 했는데 아버지 친구분 건조실에 담배 넣는 시기와 우리집 담배넣는 시기가 언제나 조금씩 겹쳐서 발을 동동거리시곤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온 가족이 하루종일 따 놓은 담배를 제때에 담배건조실에 넣지를 못해서 결국 버린 적이 있었다. 며칠을 술만 잔뜩 드시며 괴로워하시던 아버지께서 결국 우리 집도 건조실을 짓겠다고 선언하시고는 어디서 황토흙을 잔뜩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온 가족이 며칠을 흙을 나르고 흙벽돌을 만들고 건조실 기초를 닦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다.
난 솔직히 이게 뭔 짓인가 싶기는 했다. 온 가족이 다 동원되었다고 해도 결국 아버지 어머니와 누나랑 나, 4명이었는데 언제나 누나는 조금만 하면 지쳐서 방에 들어가 동생놈 돌보기로 빠지고 기껏 초딩이었던 나만 맨날 이 고된 노동에 하루종일 매여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게 말이 돼?’ 이건 미친짓이라고 아무리 부모님께 떼를 써도 매일매일 일하거나 혼나거나 둘 중에 하나인 일상이었던 거다.
그렇게 벽이 거의 완성되어 갈 때쯤 운명의 그 날이 왔다.
아버지께서 벽이 완성된 후 지붕에 얹을 통나무들을 올리고 소위 맞배지붕처럼 얹히고 있었는데,밑에 있던 나에게 톱을 줄에 묶어 올리라고 하셨다.
당연히 나는 매우 꼼꼼이 묶어서 톱을 올렸는데 아버지께서 왜 이렇게 꽉 묶었냐고 화를 내시면서 매듭을 풀다가 순간 톱을 떨어뜨렸다.
그 톱이 밑으로 떨어지면서 내 얼굴을 살짝 스쳤는데 순간 내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서 난리가 난거다. 사실 크게 다친 게 아니라 쓸리면서 피만 많이 난 건데 난 당연히 대성통곡하면서 고래고래 아버지 어머니 욕하고 생 난리를 쳤다. 이 순간을 잘 이용하면 이 저주같은 중노동에서 해방될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머릿속에 스치면서 진짜로 죽을 것처럼 고래고래 고함을 쳤드랬다.
그런데 그 순간 어머니가 말씀해주셨다.
“영길아 카스테라 사줄게..”
순간 신기하게도 울음도 멎고, 아프지도 않고, 입에는 함박 웃음이....
지난 두 달동안의 고통이 죄다 사라지는 그 순간이란.....
여튼 난 그때까지도 엄청 순진했었다.
난 당연히 그 슈퍼용 카스테라...그 부드러운 카스테라...장 날 아버지가 술드시고 사온 그 카스테라를 먹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우리 어머니는 사악했다.
그렇게 아픔을 참고 이제나 저제나 나의 카스테라..누나와 동생놈에게는 절대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기다리는 카스테라가 밤이 되도록 오지 않는 거다.
그래서 어머니께 넌지시 “엄마, 카스테라..?”
어머니 왈 “ 아...카스테라...우리 영길이 카스테라 줘야지..”하시면서 계란 한 판을 내오시는 거다.
그러더니 계란 흰자와 노른자를 구분하시더니 흰자만 모아놓은 걸 떡하니 내 앞에..
“영길아 이거 거품날때까지 저어라.”
“....?....에이..이런 게 어딨어...”
“저으라면 저어...카스테라 먹고 싶으면...”
“싫어...카스테라 사준다며...싫어 엄마가 해주는건 싫어..ㅠㅠ”
“이노무자식이..저으라면 저어..빨리.”
그랬던 거다.
나는 눈물 콧물 빼면서 서럽게 울면서도 거의 4-50분을 팔이 떨어져라 저었다.
그렇게 계란 흰자가 크림처럼 되도록 만들어서는 뭔가 밥솥에 집어넣고 뜸들이고는 밥솥 채 나에게 던져준 어머니표 카스테라.
그 날 이후로 난 한 동안 일 끝나고 밤마다 계란 흰자를 저어야 했고..그런 날은 어김없이 누나와 동생놈은 엄청 좋아라했지만 나는 점차로 카스테라가, 아니 빵이란 걸 싫어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때 시내에서 자취를 하면서도 널린 게 빵집이었는데 빵을 사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물론 지금도 카스테라는 별로다. 레시피를 알고 있지만 하지 않는 음식이다.
고딩 때 뭔가 특별한 걸 만들어 먹고 싶어서 무의식적으로 딱 한 번 계란으로 카스테라를 해서 먹으면서 불현듯 “나 미쳤나봐...이걸 내가 왜 한거야..ㅠㅠ..앞으론 절대 안햇.”이라고 결심했다. 마치 내 옆에 어머니가 앉아 계실 것 같은 생각에.
카스테라는 역시 돈주고 사먹어야 하는 게 원칙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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