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제법 쌀쌀한 가을엔 어쨌든 따끈한 우동이 제격이다.
후루룩 면과 국물은 흡입하면 금세 몸이 훈훈한 열기로 가득차는 느낌에 ‘역시 우동이야’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한때는 ‘라면 요리왕’이나 ‘맛의 달인’, ‘초밥왕’ 같은 일본 요리만화를 섭렵한 후 뭔가 나도 근사한 요리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무한한 요리의 세계에 갓 입문한 초짜가 성실하게 맛의 본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초야의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요리의 대가로 성장하는 걸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길을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뭐 누구나 이런 만화를 보면 다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하지만 보통 이런 건 생각만 하지 직접 실행에 옮기진 않는 것 같은데 나는 별 고민 없이 덥석 이런 짓을 실제로 하고 만다는 게 문제다.
그때가 그러니까 지역단체에서 10년 이상을 일하고 많이 지쳐있을 때쯤이니까 30대 중반 쯤이었을거다. 같은 시기에 일하던 사회단체를 잠시 쉬게 된 친구 녀석 한 명과 지역 선배 한 명이 함께 실내포차 같은 것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고, 평소에도 요리를 하고 싶어 했던 나는 당연히 주방 담당을 자청하며 뭔가 좋은 아이템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같이 고민하던 친구놈의 ‘이럴 때는 당연히 지역에서 아이템을 찾기보다 한국의 트렌드를 이끌어간다는 서울 홍대거리를 가보면 좋지 않겠냐’는 제안에 따라 우리는 같이 서울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아무 준비없이 촌놈처럼 올라가면 안될 것 같아서 나름 사전조사를 했는데,‘다 이렇게 사전조사 철저히 해야 서울사람들이 지역사람이라고 깔보는 짓 따위를 하지 않는다’면서 친구놈에게 큰소리 빵빵 치고 며칠을 끙끙대며 사전조사를 한 뒤, 나름 흐뭇한 결론을 내렸다. 그게 오뎅바. 그때 한참 오뎅바가 유행이라는 이런저런 뉴스를 보면서 ‘그래! 우리도 실내 오뎅바를 하자!!’는 결정을 했었다.
자! 이제 아이템도 정했으니 서울 홍대라는 곳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오뎅바를 열기 위한 요리를 전수받아 보자고 친구 놈과 둘이 길을 나섰다. 당연히 촌놈들과 다르게 주도면밀한 우리는 아침 일찍 홍대 근처에 여인숙도 잡아놓고 느긋하게 점심때부터 홍대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홍대 거리에 있던 그 많은 오뎅바라는 오뎅바는 죄다 들러서 오뎅 먹고 오뎅국물 마시며 나름 맛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대체 몇 곳을 들른 건지 가물가물해질 정도로 오뎅만 먹다보니 밤 10시쯤 되어서는 거의 토하기 직전이라 이쯤에서 첫 날 일정 마무리.
몸은 괴로웠지만 ‘아! 참 오늘은 보람찬 하루였다’는 흐뭇한 마음으로 여인숙에서 잠을 잤다.
둘째 날은 당연히 첫 날 우리가 평가한 괜찮은 가게를 들러서 요리를 전수 받으면 끝.
우리는 당당하게 주방에 찾아가 초야의 요리고수에게 무릎 꿇고 ‘요리를 전수해 주십시오, 스승님’ 하면 되고, 스승님은 촌놈들의 열의를 보고 ‘이런 기특한 젊은이들을 보았나. 내가 가르쳐주겠네.’ 하면 끝. 흐흐흐.
근데 막상 둘째 날 오뎅바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자마자 날벼락처럼 ‘어 왜 이렇지?’ 싶은 상황들이 이어졌다. 처음 들어간 곳은 이서방 오뎅바. 오뎅바에 가자마자 주방에 들어가서 한창 장사준비를 하고 있는 주방 아저씨에게 “오뎅 국물 비법을 전수해 주십시오.” 라며 무릎까지 꿇었는데 돌아온 첫 마디는 “이런 미친놈!!”
그리고 우리는 끌려 나왔다.
두 번째 오뎅바에서도 마찬가지. “이런 미친놈들. 대낮부터 재수 없게..” 이런 욕만 잔뜩 먹고 끌려나오고 말았는데, 그렇게 대여섯군데를 다니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일본 요리만화는 허무맹랑한 개구라 완전 사기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런 제길.
나 같은 순진한 놈을 현혹해서 바보로 만든 아주 아주 나쁜 퇴출해야 할 불량만화들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갖은 수모를 당하고 길거리 벤치에 앉아서 한참을 일본 만화 욕을 하고 있었는데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 건 나의 이런 행동을 쭈욱 지켜보던 친구놈의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야..! 박영길, 니가 말한 방법이 이거냐? 너 미쳤어..?”
“...아...그러니까..이게 원래 이렇게 이야기하면 좀 가르쳐주고 그러는 게 보통인데...그러니까 요즘 서울사람들이 워낙 싸가지가 없어서...다들 ..그러니까...”
“시끄러 새꺄,. 너 지금 애니메이션 찍어?...이런 미친 놈.....얼른 일어나 집에 가게...아! 창피해서 살 수가 없어. 넌 도대체 그 나이 처먹도록 뭐하고 산거야..?”
“...음...그러니까...이게 다 그...그....ㅠㅠ..”
친구라는 놈이 도와주진 않고 저리 닦달만 하니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속으로 꿍시렁 꿍시렁 거리고 있는데, 이러고 있는 우리 곁을 지나가던 중년의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가르쳐 줄까?’ 하시는 것이었다.
오호..! 이거 무슨 만화적 상황..? 역시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 건가?
우리는 당연히 아저씨께 몇 번씩 감사 인사를 드리고 쫄래쫄래 아저씨를 따라 나섰다.
아저씨가 데리고 간 곳은 우리를 야멸차게 쫓아냈던 어느 오뎅바 주방이었는데 아저씨가 그 가게 주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우리에게 와서는 이야기가 잘 되었다고 하시는 거였다. 당연히 나는 의기양양해서 친구놈에게 “거봐 자식아..다 이렇게 요리를 배우는 거라니까...흐흐흐..아무것도 모르면서 지랄이야...히히히”
여튼 그렇게 아저씨께 오뎅 국물 내는 법과 오뎅회, 오뎅콩나물찜 등등을 배웠다.
3일 동안인가를 몇몇 홍대 오뎅바들을 돌아 댕기면서 하루에 서너시간씩 요리를 배웠드랬는데 그 기간 동안 역시 일본 요리만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훌륭한 문학작품이라는 걸 친구놈에게 누누이 강조하면서 기고만장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4일인가를 가르치시던 아저씨, 내가 초야의 전설적인 요리사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 이 훌륭하신 아저씨께서 우리 둘을 데리고 커피숍에 들어가시더니 무슨 서류를 꺼내 드시는 것이었다.
“원래 정식으로는 한 2주일동안 매일 출근해서 배워야 하지만 젊은이들이 뭔가 급해 보여서 좀 야매처럼 가르치게 되었네. 어차피 집에 가서 좀 더 연습하면 출근하면서 배우는 거랑 크게 차이나지 않으니까 요리 실습은 이 정도로 하지.”
“아유...저희야 이 정도로 가르쳐 주신 것만으로도 엄청 고맙습니다. 집에 내려가서 열심히 연습하고 요리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니네. 뭐 그렇게까지. 자!! 우리 더 늦기 전에 싸인이나 하지!”
“..네..?...싸인요 ?”
“응. 이건 우리 OO오뎅을 납품받겠다는 계약서야. 장사 막 시작했으니까 우선 납품부터 받고 돈은 처음엔 후불로 해주어도 된다네. 대신 두 번째 거래부터는 선불 입금해야 납품을 할 거야. 그리고 최소 1년 이상은 우리 것을 써야하고...자자, 싸인들 하라고.”
“......”
“....”
그날 우리는 OO오뎅에서 치즈오뎅, 청양고추오뎅 등등의 제품들을 1년간 구매한다는 계약서에 싸인하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차안에서 난 내 친구 놈에게 바보 멍충이 소리를 아마 수십 번은 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속으로 잊지 않은 말이 ‘일본 요리만화. 이 개구라 만화같은 것들..!’이었던 것 같다.
여튼 그렇게 나의 오뎅바 주방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물론 3개월의 짧은 주방장 생활이었지만 말이다. 그 아저씨는 OO오뎅 영업사원이었는데 뭐 나름 괜찮은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아시는 요리법과 영업방식, 그리고 다양한 비법들.. 가령 한국 백화수복을 가지고 일본 사케로 속여 파는 법이나 손님이 먹다가 남긴 사케를 새 것처럼 팔아먹는 방법, 만취한 손님에게 바가지 씌우는 방법 등등 나름 알찬 정보랄까, 홍대거리의 오뎅바들의 비리 같은 다양한 뒷담화를 알려주셔서 재미있었던 것 같다.
다만 내가 좀 서운했었던 건 세상엔 아름다운 요리이야기 따윈 없었고, 만화는 절대 너무 깊게 믿으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는 게 좀 서운했달까?
여튼 오뎅이나 우동이나 국물이 문제다.
특히 오뎅은 맛을 내는 비법들은 매우 다양해서 어떻게 하든 다양한 맛을 내는 거야 각자의 취향대로 하면 되지만 실내에서 장사할 때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결국 냄새에 있다.
길거리 오뎅이야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서 문제가 안되지만 실내에서는 뭔가 비릿하고 퀘퀘한 냄새가 실내에 남아서 처음 가게에 들어올 때 매우 불쾌한 냄새들을 풍기기 때문에 어떻게 맛은 유지하면서 냄새를 죽이느냐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
우동도 마찬가지다.
오뎅국물 내는 것과 거의 유사한데 우동도 실내에서 요리할 때 어떻게 냄새를 죽이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우동은 오뎅처럼 자체의 맛을 내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우동의 중요한 비법은 결국 간장에 있다.
한국에서 보통 우동국물에 쓰이는 건 몽고간장이라는 흔하지만 진한 맛의 양조간장을 주로 쓰는데 이것도 우동집마다 무슨 비법처럼 전해오는 황금비율이 있기는 하지만 뭐 그닥 어렵지도 않더라.
보통 따끈한 우동에서는 16대 1 정도의 비율을 베이스로 하면서 약간씩 조절하면 되고 냉모밀처럼 차게 먹을 때는 8대1에서 10대 1 사이를 선택하면 된다. 이런 걸 무슨 대단한 영업 비밀처럼 돈 받고 거래되는 게 요즘 현실인 걸 보면 세상의 요리들은 어쨌든 돈이 되는 건 죄다 팔아서 돈으로 만드는 것 같다.
여튼 따끈한 우동국물은 물 16에 간장 1의 비율로 물을 만들고 무, 대파뿌리, 멸치, 양파, 다시마를 우려서 만들면 된다. 여기서 음식점에서는 가정식과 좀 다른 게 역시나 잡내를 어떻게 제거하느냐가 문제인데 이건 조금씩들 다르다.
궁금하면 500원...? 히히힛
난 보통 누구나 하듯이 멸치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쓰고 다시마는 5분을 넘기 전에 건져낸다. 멸치는 껍질에서 비린내가 많이 나고 다시마는 오래 끌이면 쓴맛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뭐 이런 건 누구나 다 아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래도 나의 비법 같이 하는 것은 무와 대파뿌리와 양파를 살짝 불에 구워서 탄 부분은 털어내고 쓰면 잡내가 없어지는 정도가 어디선가 배운 나름 요리비법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오뎅을 맛있게 끓이는 건 그냥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식대로 각각의 개인 취향대로 하시면 된다. 뭐 오뎅이라는 게 자체의 맛이 워낙 강해서 그냥 오뎅 파는 사람들이 시키는대로 하면 대충 맛은 나니까 말이다. 뭐 고추씨를 넣어서 육수를 내면 좀 더 시원하면서 잡내를 잡아준다는 것과 청량고추를 넣으면 시원해진다는 것 정도야 다 아실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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