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발암물질 관련 일을 하게 되었나?
첫 번째 이야기.
파주 단추공장 노동자들이 준 질문
요즘 저는 발암물질 관련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을 얘기해 드리려구요. 근데,
좀 길어요. 몇 번에 나눠서 말씀드려 볼게요.
전, 녹색병원에서 일하니까 원래는 보건의료노조 소속 조합원이었어요. 그런데, 서울지역일반노동조합을 만나고 나서는 조합을 옮겼답니다. 처음엔 상담을 해주다가 점차 사람들이 좋아져서 그냥 조합원까지 하게 된 거죠.
서울지역일반노조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을 만들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조합입니다. 그러니, 건설 일용직 노동자, 택시 기사, 마트 계산원, 마을버스 운전사, 화학물질 창고 노동자, 제화노동자, 그리고 단추공장 노동자들까지 다양한 일터에서 모인 조합원들이 있는 ‘잡종’ 노동조합인 것입니다.
조합원 생활은 참 즐거웠습니다. 전 조합원 모임에 나가면 조합원들이 하는 얘기를 꼼꼼히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항상 궁금했는데, 제가 물어서 대답을 듣는 게 아니라 그냥 그들 스스로가 술 한 잔 하면서 내뱉듯 하는 얘기들을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조합원 형 하나가 자기 공장 얘기를 하는데, 말을 들어보니 엄청 위험한 일을 하더군요. 파주의 작은 단추공장에 다닌다는데, 원료를 섞는 배합실에서 시작해서 단추가 만들어져 나오기까지 맹독성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있다는 겁니다. 머리가 띵하고 어지럽고 때로 구역질도 나오고. 이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일이라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모습이 왠지 뻥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완전 뻥이 아닌 건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가보자 했죠.
단추공장 형은 사장이 퇴근한 다음에 몰래 저를 공장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저는 준비해 간 측정장비를 이용해서 유기용제 측정을 했죠. 정말로 냄새가 심했고, 환기장치 하나 없어서 일하면서 먹는 유해물질 양이 어마어마할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분석결과를 받아보는 동안 제 얼굴은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습니다. 스티렌이라는 발암물질이 기준을 초과한 겁니다. 스티렌은 신경독성이 강할 뿐 아니라 폐암, 유방암, 백혈병, 림프종 같은 암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되는 발암물질입니다.
형에게 얘기했더니 동료들을 자기 자취방으로 모으겠다 했습니다. 아무래도 같이 들어야겠다구요. 그래서 자취방에 모여 쭈욱 설명을 했습니다. 어떤 물질이 높게 검출되었고, 어떤 건강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랬더니 중간 중간 제 얘기를 끊는 분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래, 그래서 그 형님이 일찍 간 거구만.”,
“얼마 전 김씨도 쓰러졌잖아.”,
“단추공장 사람치고 오래 사는 사람 없데.”
이런 얘기가 추임새처럼 치고 나오지만, 제 얘기는 흥이 나기는커녕 점점 우울해져 갔습니다. 결과를 다 설명한 후 이제 어쩌면 좋냐는 얘기를 할 때에 형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환경 개선을 어떻게 해? 일단 창문은 잘 열어야 하는데 겨울엔 온도조절 땜에 창문 열기도 쉽지 않고. 이거 참 큰일이네.”
그나마 조합원 형이 가장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았죠.
“그래도 환기시설 해야 한다잖아요. 사장님이 내년에 미국 수출 길 뚫릴지 모른다 그랬으니까, 잘되면 그 땐 사장님에게 꼭 얘기해보자구요.”
전 아무 말도 못하고 벌개진 얼굴로 같이 밥 먹고 돌아왔습니다. 밥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일이 2004년인가 2005년인가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십년 쯤 전의 일이죠. 이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전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의 발암물질 사용 문제를 계속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발암물질에 노출되는지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 발암물질에 대해서는 30년 간 환경측정 기록을 유지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회사, 너무나 멀리 있는 법과 정부, 그리고 이 발암물질 냄새를 공유하는 동네 주민들.
너무도 어지럽게 엉켜있는 실뭉치 같았습니다. 이건가 싶어 당겨보면 괜히 더 튼튼히 엉켜버리는 실뭉치 말입니다. 단추에 불량이 생길까봐 열지 못하는 창문 같은 건 필요가 없습니다. 뭘 하면 좋냐,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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