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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출판사의 새 책/인문사회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정가 14,000원

 

  이해인 수녀, 장형주 정신과 의사 추천!  

  일본 정신과 의사들이 동료 의사들에게 추천하는 책  

 

‘내 인생에는 왜 이렇게 불공평한 일들만 일어날까?’

마음이 힘들고 인생이 힘들어진 이들에게

환자의 가족으로, 환자로, 정신과 의사로서 전하는 인생의 약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는 말은 늘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공부하는 경영인으로 유명한 미와 노부이치가 했다. 이 책의 저자인 나쓰카리 이쿠코는 한창 인생의 절망 속에서 이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소리야! 사람은 사람으로 망가진다가 맞는 말 아닌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일본 정신과 의사들이 동료 의사들에게 권하기로 유명한 이 책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 인생이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용기 내어 쓴 정신과 전문의의 인생처방약이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무기력증 등 마음의 병에 시달리며 살아간다는 것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에 의존하는 사람들,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현실의 고통에 잠식당해 자해와 자살시도를 일삼는 청소년들,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며 고통의 인생에 갇혀버린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꼭 전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

저자는 환자의 가족이자 환자인 상태로 의대를 졸업해 정신과 의사가 된 특별한 이력을 가졌다. 저자는 주변에서 ‘철인3종경기 인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험난한 삶을 살았다. 조현병을 앓는 어머니 때문에 가족붕괴를 겪으며 아무도 돌봐주지 않던 어린 시절에는 오직 동화책에 등장하는 할아버지와 강아지 한 마리가 마음을 나눈 유일한 친구였다. 아버지를 따라 전학 온 중학 시절에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교복 치마로 인해 ‘전교 1등 왕따’가 되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이후 그녀는 오직 ‘고등학교에서는 그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일념만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이후에도 가해 아이들에게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어 죽을 듯이 공부해 의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알코올 의존과 자해, 섭식 장애에 시달리며 주변사람들과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해 끝없이 불행했다. 인생은 버거웠고 늘 죽음을 동경하며 자살을 시도하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결국 두 번째 자살 시도가 실패로 끝난 후, 대학 측의 강요로 본교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의대 대학생 환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환자의 가족이자 환자였다. 끝없는 절망의 길을 걸으며 마음의 고통이 무엇인지, 정신과 치료는 무엇인지,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세상 속에 스스로 격리된 느낌이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생하게 깨닫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환자의 가족이 당하는 고통을 이해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은 환자의 경험을 가진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상처받은 이의 기억을 모두 없앨 수 있는 약이란 없다

인생의 구원투수는 결국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자신이 환자의 가족이자 환자였음을 세상에 고백한다. 자신이 경험한 삶을 세상에 알리며 마음 아픈 이들에게 생생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녀의 흔치 않은 경험이 한 가지 진실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그것은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전국에서 그녀에게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과 마음의 병을 이겨내고 평온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강연요청이 쇄도했다.

그녀는 “상처받은 이의 기억을 모두 없앨 수 있는 약이란 없다. 사람들 속에서 상처 입은 사람에게 필요한 최고의 치유는 ‘사람’이다”라고 강조한다. 그 사람은 누구나의 인생에 존재하는, 불쑥 손 내밀어주는 평범한 주변사람들이다. 그녀의 인생이 그 좋은 예였다.

“암흑과도 같은 삶에 전환점을 만들어주고, 책을 쓸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을 치유해 주고, 구원해 준 것은 내 주위의 보통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덕분에 나는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 밝지 않은 인생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어둠에서 걸어 나와 회복할 수 있었다. ‘사람의 힘’이 약으로도 치료하지 못한 나의 굳은 마음을 조금씩 풀어주었다.(9p)”

“나는 정신과 의사다. 발달장애 어린이를 치료하고 지역 주민의 건강을 살피고 있다. 우리 진료소에 오는 환자 중에는 가족 문제에 얽히고설킨 번뇌에 사로잡혀 끝없이 가족을 미워하고, 그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면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 이들에게 살아갈 의욕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로서 말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 정답은 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경험한 기억과 감정까지 ‘완전히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약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어느 날, 한 환자가 내게 '선생님은 인생에서 가장 힘이 되었던 게 뭐였어요?'라고 물었다. 그때 나는 '내게 힘이 되었던 것은 약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에요. 그건 바로 사람과의 관계였어요' 하고 대답했다. 사람에게 받은 슬픔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미움과 허무함도,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회복되었다.”(11p)

이 책은 사람으로 상처받고, 계속되는 고난으로 인해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약보다 필요한 것은 인생의 어느 순간, 그들에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들의 손을 잡는 순간,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히 오늘과 다른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아픔을 드러내는 것, 함께 웃는 것이 지닌 치유의 힘, 따뜻한 에너지가 평온을 선물하다.

조현병을 앓는 어머니로 인해 인생의 밝은 면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채 우울증과 자해, 과식과 거식, 과음과 줄담배, 수면제 의존, 자살시도를 반복하며 30세를 맞이한 저자는 이때부터 자신이 폐쇄해버린 삶의 문을 두드려 그녀에게 다가온 소중한 사람들을 차례차례 만나게 된다.

이 책의 1장부터 3장까지는 저자의 삶을 이어준 12가지 만남이 등장한다. 유아기에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준 큰어머니,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위로해 준 동화책 주인공과 등장인물, 최초의 친구인 애완견 고로, 엄마를 다시 만나게 해준 지인, 똑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둔 만화가, 정신과 의사로서 목표가 된 선생님, ‘철인3종경기 인생’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조현병 환자 거북 씨, 정신과 의사인 남편, 그리고 저자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이들은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녀에게 일어난 일들을 열심히 들어주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으로서 공감해 주었으며,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생활력을 갖추게 해주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해보려고 한 발짝 내딛으며 시도하는 ‘행동의 힘’을 알려주었다. ‘기어서라도 살아가라’던 재일 한국인 친구는 자신이 암에 걸려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녀를 걱정해 주었다. 이들은 인생의 무게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벗어나 한 걸음이라도 걸어보라고,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직접 해보라고, 무엇이든 인생을 즐겨보라고, 자신감을 가져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회복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인정하게 해주었다. 이들 중에는 상처로 가득한 아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늘 함께 있어주며 정신과 환자들이 상담과 치료, 입․퇴원을 할 수 있도록 주택가 한가운데에 야키쓰베노미치 진료소를 지어 저자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동료 정신과 의사인 남편도 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강연으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며 ‘솔직히 말하는 것’이 마음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 지켜봐주는 사람이 주는 회복의 힘에 대해 깨달았다.

환자로서의 경험과 약 의존증에 대한 경험을 가진 정신과 의사로서 그녀는 말한다. 약만으로는 결코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다고. 상담 없는 약 처방은 더욱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그보다,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손을 잡고 나서야 저자는 평온한 삶에 대한 기쁨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제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마음의 병에서 어떻게 회복하는지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 소중한 인생이었다. 또, 정신과 의사인데도 그간 환자에게 약만 처방할 뿐 가장 중요한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의학이 할 수 있는 것, 약이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사람이 사람을 통해 회복하는 강력한 힘을 믿고 진료할 것이다."(25p)

 

추천사

‘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마음이 아픈 환자로, 환자 가족으로, 그리고 이들을 치료하는 의사로 남다른 삶을 살아온 저자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입니다. 여린 듯 강한 여운으로 마음을 적시며 읽는 이에게 이런 다짐을 하게 만듭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일상의 삶에서 힘들다, 못살겠다, 죽겠다는 푸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는 한마디로 삶에 대한 감사,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겸손한 인생관을 배우게 해주는 책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축복으로 바꾼 겸손한 용기와 사랑의 승리를 함께 기뻐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 맞아.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는 저자의 말을 다시 깊이 되새기면서.

_이해인(수녀. 시인)

‘가장 좋은 정신과 의사는 환자와 같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다.’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 흔히 오르내리는 말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상처를 담담히 드러내며 크고 작은 상처를 지닌 우리 모두에게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픔의 기록이자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원고를 펼쳐 든 후 한숨도 쉬지 않고 끝까지 읽었습니다. 저자가 전하는 '말하는 것', '아픔을 드러내는 것', '함께 웃는 것'이 지닌 치유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자의 말처럼 ‘말하는 것’에는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상처와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_장형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린 완벽주의자들》 저자)

 

지은이 소개

나쓰카리 이쿠코

아동정신과의, 의학박사. 1954년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태어났다. 하마마쓰의과대학 의학부 졸업 후 동(同)대학 정신과 조교, 공립 기쿠가와 병원 신경과, 하마마쓰 병원에서 진료했다. 정신보건 지정의, 일본정신신경학회 전문의, 일본아동청년정신의학학회 인정의, 일본우울병학회 회원, 일본통합실조증학회 회원이다. 2000년, 역시 정신과 의사인 남편과 함께 시즈오카현 야이즈시 주택가 한가운데에 ‘야키쓰베노미치 진료소’를 개설해서 정신과 진료를 계속해 왔다. 지은 책으로 《마음의 병을 앓는 어머니가 남겨준 것-정신과 의사의 회복의 여정》 《또 하나의 ‘마음의 병을 앓는 어머니가 남겨준 것’-가족 재생 이야기》 함께 지은 책으로 《인지요법 입문》 《불쾌한 기분이여, 안녕》이 있다.

NHK라디오 <라디오 심야편>과 <아사히신문> 등에서 조현병을 앓은 어머니를 공개하고 자신도 마음의 병을 겪어낸 저자의 인생이 소개되어 전국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과 마음의 병을 결국 이겨내고 평온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강연 요청이 쇄도하여 책을 쓰기에 이르렀다. 환자의 가족이자, 환자였던 경험을 가진 정신과 의사로서 약 처방만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저자의 뜻에 일본의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공감을 표시하며 이 책을 추천하고 있다.

 

옮긴이 소개

홍성민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교토 국제외국어센터에서 일본어를 수료했다. 현재 일본어 전문 번역가 및 출판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물은 답을 알고 있다》《어머니에게 드리는 100가지 질문》《삶의 보람에 대하여》《차이와 사이》《무서운 심리학》《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잠자기 전 30분》《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 등이 있다.

 

차례

이 책을 쓴 이유_돌아보면 누군가 힘이 되어주었다

프롤로그 _환자의 가족으로, 환자로, 정신과 의사로서의 삶을 통해 얻은 깨달음

 

1장 환자의 가족으로 어린 시절 만난 사람들

  1 내 인생의 첫 구원자인 큰어머니 

     부모님의 결혼|생애 최초로 사랑받은 기억

  2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준 동화책 속 할아버지

     춥고 어두웠던 어린 시절|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가 유일한 즐거움|엄마가 사준 단 한 권의 책|말을 들어주는 존재의 소중함

  3 내 최초의 친구, 고로

     세상에 하나뿐인 친구, 애견 고로|막내아들 같던 ‘건강이’

  4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한 나를 괴롭힌 중학교 친구들

     전학|너희들 때문에, 나는 의사의 길을 선택한다

 

2장 환자였던 나에게 손 내밀어 준 사람들

  5 ‘산다’는 의미를 깨닫게 해준 동료 의사와 10대 환자

     아버지의 재혼|사람의 죽음으로 알게 된 것|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6 ‘내관요법’에서 만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준 여성

     약에 대한 의존|신문 기사에서 발견한 내관요법|진심으로 우정을 나누는 친구를 만나다|본능대로 행동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7 ‘약함을 내보이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게 해준 교토의 여인

     거침없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언니 같은 여인|1천만 원의 청구서로 날아든 우정|거미줄

  8 의연한 자세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 친구

     식사에 대한 두려움|‘강인함’과 ‘각오’라는 삶을 산 친구|마지막까지 주위를 배려한 따뜻한 사람

 

3장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의사로 살게 해준 사람들

  9 진심을 담은 자세를 가르쳐준 호스피스 의사

     살아가는 사람과 살 수 없는 사람|죽어가는 사람의 마음|진심을 담은 자세가 만들어낸 익살|환자와 의사 사이에 꼭 필요한 유머와 웃음

  10 웃으며 인정하는 법을 가르쳐준 만화가

     마음의 아픔을 치유한 웃음의 힘|시나가와역에서의 첫 만남|나를 변화시킨 ‘공개’의 힘|어머니를 잃은 딸들로서

  11 진정한 자신감을 가르쳐준 조현병 환자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환자, 가족, 의사라는 세 가지 입장에서 고민하다|강연회에서 만난 거북 씨|행복의 크기는 사회적 지위로 잴 수 없다|거북 씨의 엽서

  12 같은 가치관을 가진 나의 남편

     무뚝뚝한 첫인상과 달리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어모퍼스 모임|선의의 무관심|우리의 결혼식|한 집안의 가장으로서|남편과 시작한 진료소

 

글을 맺으며_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엄마께|아버지에게 드리는 짧은 편지

에필로그_사람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달라질 수 있다

 

책 속에서

이 책은 중증 정신병에 걸린 어머니 밑에서 성장해 청년기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이후 정신과 의사가 된 내 이야기다. 그리고 인생이 절망뿐일 때 나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들과의 이야기다.

‘마음의 병’은 누구라도 인생 어딘가에서 한 번쯤 만나게 되는 병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소중한 가족, 절친한 친구에게 찾아올 수도 있다. 그렇게 누구라도 마음의 병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의 어느 자락에서 자신이나 가족이 마음의 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나는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치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하다. 가혹한 인생을 걸어온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보낸 사람들 특유의 눈부시게 천진한 웃음을 갖기 어렵다. 가혹했던 체험은 그 사람의 외모와 인격에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다. 자신이 초래하지 않은 일들임에도 그의 삶에 계속해서 나쁜 영향을 미친다. ‘왜 이렇게 내 인생에는 불공평한 일들만 일어날까…. 왜?’

그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에 물어도 아무런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다.

암흑과도 같은 삶에 전환점을 만들어주고, 책을 쓸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을 치유해 주고, 구원해 준 것은 내 주위의 보통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높은 지위에 있거나 내세울 만한 특별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저 내 곁에 있던 평범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를 다시 보통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들이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덕분에 나는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 밝지 않은 인생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어둠에서 걸어 나와 회복할 수 있었다. ‘사람의 힘’이 약으로도 치료하지 못한 나의 굳은 마음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한 인간에게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많은 일이 내 인생에 일어났다…. 이렇게 잠시 나빴던 일만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내고 인생을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회복하는 데 딱히 정해진 시기는 없었다.

<이 책을 쓴 이유> 중에서

 

유치원에 다닐 때도 마법처럼 옷을 만들어 내던 엄마의 실력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 전체적인 완성도는 좋지 않았지만 그런 몸 상태로 최선을 다해 만들어준 엄마의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매일 그 교복을 입고 등교했다. 그런데 뽑지 않은 시침핀이 여기저기 남아 있어 소매에 팔을 낄 때마다 찔리고 아팠다.

특히 스커트가 비참했는데, 다른 애들처럼 예쁘게 주름이 잡히는 주름치마가 아니라 말 그대로 ‘호박’ 모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 반 아이들의 좋은 놀림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런 괴롭힘에 박차를 가한 것은 시험이었다. 나는 원래 필기시험만큼은 강했다. 아무리 컨디션이 나빠도 놀랄 만큼 좋은 점수를 받았다. 전학 후 첫 시험에서 내가 1등을 하자마자, 모두의 놀림감이던 ‘호박’이 1등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모두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때부터 남학생들뿐 아니라 여학생들까지 괴롭힘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확 밀었다. 순식간에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고 나서 무슨 일인지 올려다보니 층계참에 있던 몇몇의 남학생들이 나를 쳐다보며 킥킥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에는 여학생도 한 명 있었다. 슬프게도 그 아이는 내가 전학 온 첫날,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준 아이였다.

나는 치마가 훌러덩 젖혀져 속옷이 드러난 그대로 주저앉아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픔은 느낄 새도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이 올라왔다. 나는 거의 울다시피 하며 그 자리에서 도망쳐야 했다.

그날, 수업 시간에 책상 위에 교과서를 세워두고 고개 숙여 흐느끼던 나를 본 선생님은 “넌 그렇게 울어서 뭐 할래!”라고 소리칠 뿐이었다.

‘아! 이제는 정말 인간 대접을 받고 싶다….’ 그때부터 나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당시는 ‘등교거부’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선택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고 억지로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서는 최대한 아이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어야 했다. 존재감이 없어지면 아이들의 괴롭힘도 차츰 잦아들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중학교 3학년이니까 조금만 더 견디면 졸업할 수 있다’는 조그마한 희망을 품은 채 학교에서의 나날들을 버티고 있었다.

 

나는 마치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용처럼 분노라는 감정을 훅훅 드러내며 미친 듯이 공부에 몰두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나는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사람은 행복이 넘칠 때보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더 강한 에너지를 내는 것이 아닐까. 원래 사람을 움직이는 에너지의 근본이 되는 것이 ‘원망’이다. 그것은 결코 건강한 감정이 아니며, 복수는 결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의사가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은 분명히 나를 괴롭힌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1장의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한 나를 괴롭힌 중학교 친구들> 중에서

 

남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복잡하게 뒤얽혀 질척한 우리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까지도 그녀에게는 뭐든지 털어놓을 수 있었다. 찢어질 듯 아픈 마음도 그녀가 들어주면 조금 가벼워졌고 곧 극복할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욕을 들어가면서도 결국은 그녀 덕분에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상담료’로 총 1천만 원을 청구받았다. 엄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난 후였다. 우편함에서 그녀의 편지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뜯어보았다. ‘어머니를 만나서 정말 잘됐어요….’ 그런 말이 쓰여 있을 거라고 짐작하면서. “출장의 경우는 교통비 별도로 1일 100만 원. 전화 상담은 50만 원. 지금까지 합계 금액은….” 이렇게 쓰인 편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그전까지 그녀의 집에 머무를 때, 필요에 따라 돈을 지불한 적은 있지만 ‘상담료’라는 게 무엇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돈? 청구라니… 그게 뭐지? 입금이라니?’

금액과 입금 방법을 사무적으로 설명한 편지 내용이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았다. 겨우 사정을 이해한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역시 그랬구나…. 나 같은 건 돈이 아니면 그 누구도 상대해 주지 않아….’

그녀를 알게 되면서 얻을 수 있었던 자신감과 삶의 기쁨, 순수한 즐거움이 그 순간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빠져나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예전의 나라면 여기서 완전히 힘이 빠져 자신감도 기쁨도 역시 환상이었다고, 극도로 좌절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목숨을 끊어버리자고 죽음을 향해 돌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며칠간 편지를 끌어안고 있다 보니 차츰 굴욕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당신이 내게 보여준 행위가 모두 돈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래, 그것도 좋다. 돈을 지불하겠다! 분명한 것은 내가 당신 덕 분에 1년간 내 몸과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하며 얻은 것들은 그것이 비록 돈 때문이었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확신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에게 스스로 놀라면서….

그녀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나는 그 청구서 덕분에 ‘나의 다리’로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기꺼이 청구서의 돈을 지불했다. 그동안 나에게 ‘살아갈 힘’을 가르쳐 준 사람은 정신과 의사가 수십 명 모여 있는 대학에도,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게 필요한 것은 정신의학과 심리학 지식보다 비록 돈 때문이었다고는 해도 내가 느낀 그녀의 따뜻한 배려와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한 지혜, 즉 ‘생활력’이었다.

<2장의 ‘약함을 내보이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게 해준 교토의 여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