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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출판사의 새 책/인문사회

불로소득 자본주의

정가 30,000원

 

  ‘공유경제’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플랫폼 자본주의의 기만과  

  글로벌 자본주의에 내재한 부패의 근원을 파헤치고  

  추악한 금권정치와 심각한 불평등을 근절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한다!  

 

이 책은 개인이나 기업의 부패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이상으로 여겨졌던 자유시장의 유례없는 부패, 즉 경제가 어떻게 유산자(불로소득자)들에게 점점 이익을 안겨주는 반면에,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핵심 추세가 이렇게 빨리 바뀐 것은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일지 모른다. 노동과정은 기술발전에 따른 전통적 직업 붕괴, 전문직 기반을 약화시키는 새로운 노동 규제, 세계화하는 노동거래와 경쟁, 디지털 ‘작업’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바뀌고 있다. 기술혁명은 기존의 직업들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노동과 일로부터 불로소득을 갈취해서 노동중개인들에게 넘겨줌으로써 소득분배를 악화시키고 있다.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성장에는 더 어두운 측면이 하나 있는데, 일상화된 민주주의의 조작이 바로 그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테크노크라트들이 세계 경제와 정치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불로소득자들과 그 부역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놀라운 역량을 발휘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가장 자유롭지 않은 시장체제를 만들었다. 그 체제는 경제적으로 부당하고 도덕적으로 불공평하며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일찍이 케인스가 말한 ‘불로소득자의 안락사’를 위해 이제 강력히 반격에 나서야 할 때다.

 

◆ ‘우버’는 IT기업인가, 택시회사인가?

얼마 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가 바로 ‘우버’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우버’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기존 택시가 아닌 일반 승용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중개해주는 플랫폼서비스로 20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 우버는 새로 서비스를 시작하는 도시마다 불공정 경쟁을 주장하는 기존 택시회사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우버는 현행 법규에 의존해서 자신들의 우버 기사들이 전통적인 택시에 적용되는 법규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사업 모델을 정교하게 다듬는 한편, 시장을 개척하고 경쟁업체들을 몰아내거나 짓밟기 위한 약탈적 가격 정책으로 더 많은 장기적 이익을 얻기 위해 단기적 손실을 견뎌낼 준비가 된 사모펀드 자본에 의존했다. 우버는 런던의 명물 ‘블랙캡’, 중국의 ‘디디콰이디’와 경쟁하면서 그 업체들보다 요금을 낮게 책정했을 뿐 아니라 일부 도시에서는 택시기사들을 자사의 서비스로 유인하고 가로채기 위해 그 요금의 130퍼센트까지 다양한 보조금과 장려금을 지급했다. 우버 기사들의 수입은 우버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일부 도시에서는 이미 줄어든 상태다. 이런 이유들로 그동안 미국과 유럽에서는 우버에 대한 격렬한 반발과 대대적인 시위가 줄을 이었다. 우리 사회 역시 이 서비스의 도입을 둘러싸고 최근까지도 정부 측과 택시업계가 큰 갈등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입이 결정되었지만 과연 제대로 정착하게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흔히 ‘공유경제’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플랫폼 자본주의에는 심각한 기만이 내재해 있다. 이제 어디서든 인터넷 접속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클라우드 노동’이 세계화한 상황에서 플랫폼업체들은 노동자들이 적절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다. 기술혁명은 직접적으로 노동을 더 작고 값싼 작업으로 분할하는 작업을 가속화하고, 간접적으로 플랫폼 작업자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협상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보수가 높은 일자리의 수와 범위를 축소시킨다. 결과적으로는 거의 모든 권력과 부가 플랫폼 소유주에게 쏠리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플랫폼 자본주의를 기술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안이하게 받아들일 일이 아닌 것이다. 또한 이를 ‘공유경제’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 우버 같은 디지털 플랫폼들은 불로소득을 올리는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그 기업들은 기술적 장치를 지배하지만 과거 대기업들과 달리 주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노동중개인’이라고 해야 맞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설립자이자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은 신간 『불로소득 자본주의』(원제: 자본주의의 부패)에서 플랫폼 자본주의를 비롯한 최근 세계 경제의 양상을 ‘불로소득 자본주의’라고 명명하면서 그 이면에 감춰진 근원적인 부패와 기만, 추악한 비밀을 폭로하고 이를 근절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다.

 

◆ ‘자유시장’이야말로 가장 기만적인 이데올로기다

가이 스탠딩은 이 책에서 자본주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어떻게 본디 목적과 전혀 다른 체제 구축으로 뒤바뀌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자본주의 지지자들은 ‘자유시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주장하면서 수많은 경제정책이 자유시장을 점점 확대하고 있다고 믿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시장이 생긴 이래로 가장 자유롭지 않은 시장 체제 아래 있다. 자본주의의 지도자들이 예상하던 것과 정반대라고 주장할 정도로 시장의 부패는 매우 심각하다.” 요컨대 이 책은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출현과 그 안에 근본적으로 내재한 부패에 대해 낱낱이 다루며, 각계에서 불로소득자들이 활개 치고 시민권보다 재산권을 우위에 두는 세계적 구조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 소득분배체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런 문제를 가장 충격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옥스팜이 내놓은 통계다. 옥스팜은 2010년에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388명이 소유한 부가 전 세계 밑바닥 절반 인구가 소유한 부와 맞먹었는데, 2015년에는 그만한 부를 단지 62명이 독차지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전 세계 1퍼센트에 속하는 최고 부자들이 전 세계 나머지 사람들의 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한 셈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로 노동소득의 몫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줄어든 반면 자본이득은 대폭 늘어났다. 금융자산으로 얻은 자본이득을 빼고 불로소득자 몫이 가장 크게 증가한 나라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프랑스, 영국, 한국, 미국,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순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중요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즉 조사 대상이었던 59개국 가운데 42개국이 그런 상황으로 밝혀졌다. 미국에서 노동소득의 몫은 1970년에 53퍼센트에서 2012년에 43.5퍼센트로 떨어졌다. 가장 극적인 노동소득의 변화는 중국에서 20퍼센트 넘게 떨어진 것이며, 전 세계 GDP 순위 11위인 한국 또한 급격하게 하락했다. ‘공정한 자유시장’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현실을 호도하는 가장 기만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 불로소득의 확대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

이렇듯 사회적 소득의 불평등이 전통적인 소득 불평등보다 훨씬 더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 이 책의 기저를 이루는 주제다.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다양한 형태의 불로소득 확대로 불로소득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현재 모든 종류의 불로소득자들은 역사상 비할 데 없는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신자유주의 국가는 그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불로소득자들은 소유권을 통해, 즉 희소한 자산 또는 인공적으로 희소하게 만든 자산을 소유하거나 통제함으로써 소득을 창출한다. 가장 익숙한 것으로 토지, 건물, 광물 채취, 금융투자로 생기는 불로소득이 있지만, 그 밖의 다른 종류의 불로소득도 많이 생겨났다. 예컨대 돈을 빌려주고 이자수익을 올리거나 특허권・저작권・상표권 같은 ‘지식재산권’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소득, 투자를 통해 얻는 자본소득,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기업 이익, 정부보조금을 받아 올리는 소득, 그리고 제3자의 거래에서 파생된 금융소득과 중개소득 같은 것들이 그런 불로소득에 속한다.

 

◆ 불로소득자를 위한 각종 보조금의 실상

불로소득자를 위한 국가보조금은 자유롭지 않은 시장체제의 감추고 싶은 비밀이다. 세계화의 기이한 특징은 전 세계의 정부가 모든 종류의 자산 소유자들에게 점점 더 다양한 국가보조금을 물 쓰듯 지원함으로써 꼭 받아야 할 민간 이해집단들에게 지원되어야 할 공적 자금이 고갈되었다는 사실이다. 토지와 부동산, 채굴권, 지식재산권, 금융자산의 소유자에게 지급되는 국가보조금은 그야말로 불로소득이다. 그런 국가보조금은 ‘고된 노동’이나 ‘생산’을 통해 얻는 소득이 아니다. 그것은 일부 매우 부적절한 개인과 기업에 불로소득을 제공함으로써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기업에 주는 국가보조금은 자본에 불로소득을 이전하는 것이다. 국가보조금은 ‘경쟁력’이라는 미사여구의 일부가 되었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20대 대기업들이 지난 5년간 받은 혜택이 무려 76조 원에 달했다(2013년 기준)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많은 국가가 자본을 유치하고 특허권자, 부동산 재벌과 같은 부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국가보조금을 활용하고, 수출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수출장려금과 신용보증을 통해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 수출하는 물품의 90퍼센트가 산업국의 국가보조금을 받는 상품들과 경쟁해야 했다.

한편 조세보조금의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IMF의 추산에 따르면, 미국은 세금우대조치와 관련해서 GDP의 7퍼센트 이상, 오스트레일리아와 이탈리아는 8퍼센트 이상, 영국은 6퍼센트를 지출한다. 세금공제는 자본가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보조금이며 노동시장을 왜곡하고 임금을 억제한다. 세금공제로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고용주가 얻는 이득은 전체 이득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세금공제는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기업들은 세금공제 덕에 고임금 종업원보다 저임금 노동자들을 더 많이 고용할 수 있다.

 

◆ 케인스도 피케티도 틀렸다!

고전경제학자들은 불로소득을 비생산적이고 부당한 것이라고 비웃으며 불로소득자들을 경멸했다. 20세기 중반 가장 유력한 경제학자 케인스는 불로소득자를 단순히 자본을 소유하는 것으로 그것의 ‘희소가치’를 이용해 소득을 취하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투자자’라고 일축하며, 불로소득자는 자본주의가 완성되면 곧 사라질 과도기적 존재라고 주장했다. 한편 『21세기 자본』으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은 토마 피케티는 불로소득 자본주의가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지난 80년 동안 불로소득자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로소득자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소득분배체계의 주된 수혜자가 되었다. 케인스는 1980년대부터 구축된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어떻게 개인과 기업들이 자산의 ‘인공적 희소성’을 만들어내어 그것으로부터 불로소득을 창출하는지 예견하지 못함으로써 잘못된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또한 오늘날 자산 소유자들이 ‘경쟁력’이라는 이름 아래 어떻게 정부보조금이라는 불로소득을 받아낼 수 있게 되었는지도 예견하지 못했다. 이후로 불로소득자는 노동이 아니라 자산의 소유로 소득을 얻는 사람을 일컫게 되었다. 또 불로소득 기업이란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이 아니라 불로소득, 주로 금융자산이나 지식재산권으로 수입의 대부분을 얻는 기업을 말한다. 불로소득 국가는 불로소득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정부 기관과 경찰이 있다. 불로소득 경제는 소득의 상당 부분을 지대(임차료) 형태로 받으며, 미국과 영국 같은 여러 산업국도 불로소득이 국가소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피케티의 진단도 잘못되었다.

 

◆ 프레카리아트의 증가는 필연적이다

가이 스탠딩은 지금 상황이 1920년대 ‘개츠비 시대’보다 더 안 좋다고 진단한다. 자신이 불로소득자거나 불로소득 예찬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수긍할 만한 주장이다. 신분 상승이 가능한 직업이 전보다 더 줄어들어 이른바 ‘출세’를 할 기회를 갖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게 한 가지 이유고, 부호와 지배계급으로 흘러들어가는 소득 가운데 노동시장 밖에서 생겨나는 불로소득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 또 다른 이유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 제도 변화와 기술혁명은 서로 결합되어 이전의 계급구조를 허물고 그 위에 새로운 글로벌 계급구조를 창출했다. 그 새로운 계급구조는 맨 상층에 극소수의 부호 계급(0.001퍼센트쯤), 그 아래 엘리트 계급, 이어서 ‘샐러리아트salariat’(상대적으로 안정된 봉급생활자 계급), ‘프로피시언profician’(프리랜서 전문가 계급), 핵심 노동 계급인 프롤레타리아, 프레카리아트, 맨 하층에 ‘룸펜 프레카리아트lumpen-precariat’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호, 엘리트, 샐러리아트, 프로피시언은 소득이 매우 높을 뿐 아니라 소득의 대부분을 노동이 아닌 자본과 불로소득에서 얻는다. 그것은 그들의 계급 소득이 얼마인지를 정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소득을 얻고 어떤 형태로 소득을 취하느냐의 문제다.

프레카리아트는 오늘날 전 세계에 걸쳐 폭넓게 증가하고 있다. 우버 같은 플랫폼서비스들이 그러한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것은 기존의 계급의식에 대한 혼란을 초래했다. 예컨대 오늘날 미국인들 가운데 자신의 계층이 더 낮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보다 더 많아졌다. 2000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믿는 사람이 63퍼센트, 하층민이라고 믿는 사람이 33퍼센트였다. 그러나 2015년에는 중산층 51퍼센트, 하층민 48퍼센트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또한 중산층의 비율이 IMF 이전에 비해 꾸준히 하락한 결과, OECD 21개 회원국 중 18위로 최하위권이다(2011년 기준).

 

◆ ‘더욱 야위어가는’ 민주주의

불로소득 자본주의는 국가에 의존한다. 불로소득 자본주의가 점점 강대해지는 주된 이유는 유력한 불로소득자들이 정부를 차지하고 정치를 상업화하는 방법들을 가지고 있는 한편, 정치인들은 그 불로소득을 이용해서 그들의 정권 장악에 기여하는 ‘정치적 후견주의’ 관행에 탐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로소득을 뽑아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총애하는 정치인들에게 자금을 대는 것에 관심이 있고, 그 정치인들은 불로소득자들의 이익을 만족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 부의 집중이 끊임없이 확대되면서 부호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돈으로 사는 능력 또한 크게 증대했다. 따라서 경제력의 집중은 훨씬 더 커졌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더욱 야위어가고’ 있다. 시민들은 정치와 유리되고 투표율은 하락하고 정당에서 탈퇴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글로벌 부호의 지배는 날로 거세지고 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사실은 불로소득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상업화를 통해 강화되었으며, 이제는 민주주의의 조작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충분한 자금을 지원받은 미디어와 금융을 대변하는 정치운동의 도움으로 특정 이데올로기가 여론을 휘어잡는다. 단적인 예로 미국의 경우 겨우 여섯 개 기업이 전체 미디어의 9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기업과 재벌들이 대부분의 미디어를 소유하고 있다면, 다수의 견해가 미디어를 통해 균형 있게 알려질 수 있을까? 정치적 공정성을 지상명령으로 여기는 대표적 공영방송인 BBC는 현재 공격을 받고 있는 반면, 민간 소유 미디어의 이념적 편향성은 극도에 이른 상황이다. 우리의 현실은 과연 어떤가? 미국이나 영국보다 더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골드만삭스, IMF, 유럽중앙은행의 수뇌부처럼 선출되지 않은 테크노크라트들이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동시에 각국의 정치까지 쥐고 흔들게 된 현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불로소득자를 살찌우는 양적 완화 정책을 도입하고, IMF나 유럽중앙은행을 통해 원조를 받는 국가들에 그 대가로 구조조정을 강요해왔다. 그들은 민주적 동의를 받을 필요도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금융기관과 거기서 일하는 경제학자들은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추악한 금권정치의 바탕이 된 불평등 패턴이 자라나는 세계 경제체제를 만든 주역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체제는 자율적 시장의 힘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기관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2016년 세상을 뒤흔든 ‘파나마 페이퍼’는 전・현직 국가 원수 또는 정부 수반 가운데 최소한 72명이 조세도피처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음을 폭로했다(러시아의 푸틴이 가장 압도적이며 공개된 한국인 100여 명의 이름 가운데 전두환과 노태우의 아들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 문서는 오늘날 세상을 주름잡는 주류 정치인들이 얼마나 위선적이며 범죄와 연루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렇듯 오늘날 민주주의의 부패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30여 년간 맹위를 떨친 신자유주의의 현주소다.

 

◆ ‘불로소득자의 안락사’를 위하여

가이 스탠딩은 불로소득자들을 곧 사라질 존재로 본 케인스의 예측이 틀렸음을 지적하면서도 케인스가 묘사한 ‘불로소득자의 안락사’가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투쟁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나아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도를 넘은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가 거세게 몰아붙인 공적 자산과 각종 공유지의 민영화를 저지하고, 공공서비스를 대폭 늘리며, 노동이 가난을 극복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말이 거짓임을 깨닫고 완전히 새로운 소득분배체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기본소득’은 그 일부다).

가이 스탠딩이 제시한 해법에 동의를 하든 안 하든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21세기 문제를 19세기 해법으로 해결하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정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좌표를 잃은 정당정치에만 기대서는 안 되고, 더 강력한 민중의 압력이 절실하다는 것!

“우리에게는 지금 케인스가 말한 ‘불로소득자의 안락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더 강력한 민중의 압력(그것을 봉기라고 부르자)이 없는 한, 불로소득을 뽑아먹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잘 먹고 잘살게 되는 반면, ‘고된 일’에 기대어 먹고사는 사람들은 점점 더 생활수준의 하락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상투적 표현일지 모르지만 밀렵꾼이 사냥터지기가 되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엘리트 계급이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보호자가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자유주의가 촉발한 불로소득 추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심각하게 부패시켰다. 진보적 대응도 이미 시기를 놓쳤다. 오늘날 우리는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중략)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향한 행진의 부활은 전복과 통합의 공동체와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단체행동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오늘날 운동의 가장 흥미진진한 특징은 그런 네트워크가 매우 순식간에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앞을 향해 나아가는 행진은 곧 재개될 것이다.”

 

◆ 지은이 | 가이 스탠딩Guy Standing

1977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런던 대학 소아즈SOAS(동양아프리카학)칼리지 국제개발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교수연구원으로 있으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설립자이자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 밖에도 영국의 베스 대학,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내시 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고, 1999년부터 2006년 3월까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사회경제보장 프로그램 책임자로 일했다. 노동경제학, 노동시장정책, 실업, 노동시장 유연성, 구조조정, 사회적 보호 관련 분야에서 폭넓게 많은 글을 써왔다. 최근에는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부상에 주목하며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정책과 숙의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일과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 기본소득』, 『프레카리아트 헌장』,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 계급』, 『지구화 이후의 일』 등이 있다.

 

 옮긴이 | 김병순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주로 사회과학, 인문교양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빈곤자본』, 『21세기 시민혁명』,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양심 경제』, 『자본주의의 기원과 서양의 발흥』,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성장의 한계』, 『탐욕의 종말』, 『월드체인징』(공역), 『그라민은행 이야기』, 『경제인류학으로 본 세계 무역의 역사』,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 경제, 공정무역』, 『제자 간디, 스승으로 죽다』, 『인재 쇼크』, 『선을 위한 힘』, 『귀환』, 『젓가락』,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 『달팽이 안단테』, 『과학자의 관찰 노트』, 『디데이』,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여우처럼 걸어라』, 『사회·법체계로 본 근대과학사』, 『생명은 끝이 없는 길을 간다』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 차례

약어 해설

서문

양장본 서문

 

1장 우리 시대의 기원

2장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형성

3장 국가보조금이라는 전염병

4장 부채의 재앙

5장 약탈된 공유지

6장 노동중개인: 압박받는 프레카리아트

7장 민주주의의 부패

8장 사분오열된 프레카리아트의 반란

 

옮긴이의 말

미주

찾아보기

 

◆ 본문 맛보기

러다이트 운동은 노동자들을 아무런 견습기간도 없이 매우 낮은 임금을 받는 직공으로 공장에 몰아넣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기계 그 자체를 반대하거나 기술발전을 거부하는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독립성을 잃은 것과 관련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운동은 ‘노동labor’에 의한 ‘일work’의 파괴[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간노동work이 기계화된 반복적 동작으로서의 기계노동labor으로 바뀌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46쪽)

글로벌 불로소득 자본주의는 부채를 사랑한다. 금융업자와 자산보유자들은 이자와 수수료 수입으로 배를 불릴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빌려줄 데를 찾느라 안간힘을 쓴다. 그들은 과거의 부채 형태를 극대화할 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부채를 만들어내려고 애쓴다. 그 결과, 공적이건 사적이건 글로벌 부채는 끊임없이 최고치를 경신하며 불평등을 확대해왔다. 심각한 부채로 휘청거리는 신흥 경제국들의 시장에서 새로운 금융위기가 촉발될지 모를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187쪽)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의 주요 화제는 부실부채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불평등이 야기되고 인구 증가 대비 경제불안이 심화되었다. 저소득층은 소득에 비해 매우 높은 부채에 시달리고 최고 수준의 이자율에 직면한다. 금전소득으로 평가된 불평등으로 사회적 소득 불평등을 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189쪽)

미국의 소액단기대출 길거리 창구는 맥도날드 가게 수보다 많다. 미국에서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는 9,000만 명이 돈을 빌리는 가장 중요한 출처가 바로 그런 소액단기대부업체들이다. 은행 거래가 없는 가구가 해마다 그런 단기대출업체에 지불하는 돈은 평균 2,400달러가 넘는다. 미국 14개 주에서는 이것마저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업체 가운데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저리 대출을 거부하는 월스트리트 은행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배후에 있다.(206쪽)

이름이 잘못 붙여진 ‘공유경제sharing economy’ 또한 부채를 늘리는 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우버와 리프트Lyft 같은 모바일앱 기반의 택시서비스는 운전사들이 대출을 내서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대출업체와 협력한다. 대형 자동차회사들이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207쪽)

사회적 공유지 침해 현상은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도쿄의 노숙자들은 예전부터 대개 공원이나 지하상가의 공중 벤치에서 잠을 잤다. 오늘날 그 벤치들은 그 위에서 잠을 자다가는 모두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도록 개조되었다. 런던 아파트 단지는 건물 입구에 노숙자들이 앉거나 잠자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닥에 뾰족한 작은 금속단추를 박았다. 2014년 플로리다의 포트 로더데일Fort Lauderdale에서는 아흔 살의 아널드 애보트Arnold Abbott가 노숙자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흉악 범죄 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될 뻔하고 벌금 500달러를 선고받았다. 시장은 노숙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행위는 지역의 부동산 소유자들을 괴롭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체포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그러한 행동은 미국 내 30개 넘는 도시에서 범죄로 취급받는다. (259쪽)

불로소득 경제가 소득분배에 끼치는 역효과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임금노동자들이 임대소득과 기업의 이익으로 생기는 수입의 일부를 받는 새로운 분배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임금만으로는 생활수준을 지탱할 수 없다. 20세기에는 임금협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통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투쟁이 있어야 한다. 임금은 계속해서 오르지 않고 정체된 상태를 유지할지라도, 불로소득을 제한하고 공유하며 기업 이익을 나눌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평등은 끊임없이 확대될 것이고 사회와 정치는 추악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369~3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