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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출판사의 새 책/기타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순간

* 이 책은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를 개정 · 증보하면서 제목을 바꾸어 펴낸 것입니다.

★★★★★

“가끔 놀라운 만남의 순간이 있다!

그 깊은 연결의 순간, 우리는 치유되고, 삶의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

이 책은 미술 치료 과정에서 경험한 그런 만남들에 관한 이야기다.”

● 치유란, 희망의 순간을 만들어가는 것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순간》은 저자 정은혜가 미술 치료사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만난 쉼터의 청소년들, 그리고 정신병동의 환자들과 소통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8년이 넘는 치료 경험 속에서 배우고 익힌 창조적인 미술 치료 기법들, 나아가 미술 치료에 대한 통념을 깨는 경험과 통찰 등 미술 치료사로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그린 치료적인 그림과 함께 속 깊게 풀어내고 있다.

이민 1.5세로 캐나다에서 그림을 전공한 뒤 한국에 돌아와 아트센터에서 일하다 다시 미국의 시카고에서 미술 치료를 공부하고 치료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남다른 이력만큼이나, 그녀의 미술 치료 이야기도 남다르고 특별하다. 그녀는 자신이 한 번도 그들을 치료한다고 느꼈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치유 혹은 치료란 나와 상대가 만나서 소통하고 함께 창조의 기쁨을 느끼는 그 순간에 자연스럽게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때로 ‘내담자와 상담자’라는 명확한 관계 의식을 훌쩍 뛰어넘고, 치료의 효과와 성공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마저 뒤로 한 채, 상처받은 영혼이 살아 움직이는 모든 순간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녀가 집중하는 순간이란, 내담자와의 관계 속에서 창조와 영감이 어우러졌을 때 일어나는 치유의 찰나이다.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순간》은 그 반짝이는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미국의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미술 치료 석사 학위를 받은 저자가 처음으로 일한 곳은 미국 시카고의 한 정신병동이었다. 가난하고 범죄율도 높은 시카고 웨스트사이드의 정신병원에서 그녀는 환청과 환상 증상을 보이는 중증 환자들을 만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부르스 리’라 여기던 이들과 관계를 트고, 아무것에도 반응하지 않던 애니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며 대화를 나눈다. 자신이 우주인이라고 우기는 로렌스와는 찰흙으로 UFO를 만들며 공감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학대와 방치로 생긴 트라우마와 정신 질환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거주하는 치유센터에서도 그랬다. 서로 죽이겠다고 덤비고, 삶이 지옥이라며 손목을 긋고, 계단 아래로 몸을 던지는 아이들의 치료사로 일하면서, 저자는 아이들의 영혼에 일어나는 미세한 치유의 순간을 감지한다. 말을 안 듣는 걸 넘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고 낄낄거리는 아이들에게 직관적으로 떠오른 ‘눈싸움 놀이’를 제안해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웃음보가 터지던 순간, ‘이 애만 없으면 뭘 좀 해볼 텐데’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 아이와 함께 피아노를 치던 순간, 학대받아 바느질을 무서워하던 아이의 손에 테이프로 골무를 만들어주며 서로 행복해하던 순간 등이 바로 그런 때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정신병원과 청소년거주치료센터라는 특별한 상황의 기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어떤 면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그런 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저자가 환자들에게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자신의 병이 아니라 ‘외로움’이라고 대답한다. 가족이 있었으면, 친구가 있었으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또 그 한 명이 하루라도 문병을 왔으면 하는 것이다. 그들은 환자이기 전에 누구나처럼 외로워하는 인간이고, 공감하고 공감 받고 싶어 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느낀 미술 치료의 핵심은 반짝거리는,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만남이고, 아주 작은 단위로 셀 수 있는 변화의 순간들이다. 이러한 변화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마음을 열고 오랫동안 만난다.”(316쪽)

 

● 저자의 노하우가 담긴, 누구나 해볼 수 있는 16가지 미술 치유 워크숍

이 책은 저자의 이러한 경험들과 더불어, 혼자 혹은 누군가와 함께 해볼 수 있는 16가지의 미술 치유 워크숍 방법을 선보이고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창조적 워크숍 방법은 ▶ 두 사람이 종이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주거니 받거니 하나의 리듬을 지닌 그림을 만들어가는 ‘공감 대화’ ▶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려나가는 ‘자화상 작업’ ▶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깨달은 바를 써 내려가는 ‘명언집 만들기’ ▶ 바쁜 일상 속에서도 방향을 정하고 자리를 깔아 특별한 공간을 열 듯, 자신만의 힐링 시간을 선사할 꾸러미를 만드는 ‘셀프 힐링 치료 키트’ 꾸미기 ▶ 힘든 감정 상태가 될 때 그 마음의 상황을 바꿔줄 리스트를 만들고 그것을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응급 상황 대처 매뉴얼과 키드 만들기’ 등이다.

그녀는 이런 작업을 하나의 기법이나 방법을 넘어 관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한 ‘그와 나 사이의 공간’으로 설명한다.

“함께 작업을 하는 스튜디오 모델의 미술 치료에서는 내담자와 치료사가 함께 만드는 창작 작품이 제3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나와 그 사이에 있는 어떤 신비한 공간이 열려서 나의 영혼과 그의 영혼이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보았을 테니 말이다. 상대방과 진정한 만남을 경험하면 영혼의 깊은 울림과 동시에 두 사람 사이에 열리는 공감의 공간을 느낄 수 있는데 이 경험은 두 사람 모두에게 치유를 선물한다.”(34쪽)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 눈동자에 들어가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나를 보는 것이 상대방을 보는 것이고 상대방을 보는 것이 나를 보는 것이겠구나 싶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55쪽)

● 자연이 당신과 나를 동시에 치유할 것이다

미국을 떠나와 제주도에 정착한 뒤, 그녀의 치유 공간은 자연으로 바뀌어간다. 미술치료 일을 하면서 지칠 때마다 자연에 기대 혼자 쉬곤 하던 저자는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겸허해졌고 바람과 공기와 나무와 사람, 그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담자들을 자연으로 초대하기 시작했다.

같이 바다를 보고, 비오는 날 비를 맞으며, 시집을 꺼내 시를 읽기도 한다. 곧 밀려올 파도에 쓸려 사라질 그림을 그린다. 겸손과 공감이 필요한 청소년과 부모가 공기 탱크를 매고 호흡기를 물고 물속에 다이빙해서 들어간다. 치료인지 교육인지 문화 예술인지 아니면 그냥 놀이인지 구분은 모호하지만, 저자에게 미술 치료를 받는 아이 하나는 모래와 물과 비와 ‘고양이 다홍이’와 실컷 놀다 가는데, 하루는 치료를 받으러 오면서 엄마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단다. “엄마~ 내가 다홍이 선생님한테 잘 말해서 엄마도 같이 놀게 해줄게~”

그녀는 치유에 미술 재료를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실내 스튜디오 방식을 공부했지만, 이제는 치유를 위해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고, 그곳에서 치료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치료해 주기’를 멈춘다. 자신의 기운만으로 일방적으로 보살피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나무를 안고, 하늘을 바라보고, 숲의 공기를 마시며, 바다의 모래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 속에서의 치유는 ‘문제’의 밖으로, ‘우리’의 밖으로 의식을 확장시켰다.

이런 변화의 연장선에서 저자는 서구 심리학에서 나와 너를 확연히 구분 짓는 자아 경계에 의문을 던진다. 서구 심리학에서는 나와 네가 독립된 존재임을 아는 것이 정신 건강의 척도이지만, 공동체 문화가 깊은 사회에서 개별화의 확립이란 오히려 사회에서의 고립, 부적응 또는 정신이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생태심리학자의 선구자인 로작Roszak의 말을 빌어 “‘자기’에 관한 집착은 이 사회의 집단적인 정신병이며, 개인을 존재하게 하는 많은 관계(타인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등)와 따로 떨어뜨려서는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녀는 어쩌면 치유사들에게 금기일지 모를 ‘내담자와 친구 되기’를 마다하지 앉는다. 그녀는 치료사라는 ‘제3자의 자리’를 벗어나 치료 과정을 종결한 내담자와 친구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친구를 맺어주기도 한다. 그녀는 과정을 함께 하는 친구가 되어 자연에 기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다.

저자의 이런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에 대해 김혜남(정신과 의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저자) 은 “모든 예술은 만남이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 치료는 만남의 치료이다.…… 저자가 수년간 미술 치료를 하면서 만났던 환자들과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치유적 만남과 그 만남을 토대로 싹트는 창조적 순간들을 보게 된다”고 했고, 현경(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 종신교수, 《미래에서 온 편지》 저자)은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 더 깊게, 내 삶과 함께 상처받은 아이들을 모두 껴안고 싶어졌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싶다. ‘어떤 일이 있었다 해도…… 삶은 정말 살아볼 만한 거야! 포기하지 마’”라고 추천문을 적고 있다.

또 하나의 추천문을 써준 류분순(ATA한국예술심리치료원 대표, 한국 댄스테라피협회 이사장)의 말처럼 “마음이 아픈 이들이나 그들을 돕는 사람들 외에도 치유와 창조의 순간을 삶에 더 많이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추천문

* 모든 예술은 만남이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 치료는 만남의 치료이다. 환자가 자신의 내면과 만나고,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며, 치료자의 마음과도 만난다. 이 책은 저자가 수년간 미술치료를 하면서 만났던 환자들과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치유적 만남과 그 만남을 토대로 싹트는 창조적 순간들을 보게 된다. 미술 치료를 말하면서도 감동을 선사하는 책, 무엇보다도 중간중간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김혜남(정신과 의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저자)

 

* 부서진 아이들과 동행하려는 그녀의 용감하고 정직하고 따뜻한 마음에 내 가슴이 열리면서 참 많이 울었다. 이 책은 우리의 구멍 난 영혼 속으로 살며시 비쳐드는 치유의 빛을 보여준다. 정은혜는 그 이름처럼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를 보여주는 ‘힐러’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 더 깊게, 내 삶과 함께 상처받은 아이들을 모두 껴안고 싶어졌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싶다. “어떤 일이 있었다 해도…… 삶은 정말 살아볼 만한 거야! 포기하지 마.”

현경(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 종신교수, 《미래에서 온 편지》 저자)

 

* 글을 읽는 내내 잃어버린 내면의 영감과 아름다움이 다시금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저자의 미술 치료 작업이 강의실의 이론을 넘어선, 사랑과 공감, 직관과 생명력이 가득한 작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아픈 이들뿐 아니라 치유와 창조의 순간을 삶에 더 많이 초대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류분순(ATA한국예술심리치료원 대표, 한국 댄스테라피협회 이사장)

 

▶ 저자 소개

미술 치료사이며 화가다. 캐나다에서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하고 한국에서 뉴미디어 전문 미술관인 아트센터 나비의 기획자로 일하다, 자신이 바라던 삶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소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도울 때 기뻐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치료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의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미술 치료 석사 학위를 받고 시카고의 정신 병원과 청소년치료센터에서 미술 치료사로 일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사로, 문화 예술 기획자로, 예술, 치유, 자연을 키워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엮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제주에서 치유 활동을 하며 위로와 소통이 필요한 이들과 미술 작업도 하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그림도 그리고, 숲에 누워서 하늘을 보며 마음을 나누는 일도 하고 있다. 자유로운 고양이 다홍이와 스스로 자라는 풀들이 같이 살아주고 있다. 지은 책에 《변화를 위한 그림 일기》 《나에게 잘하자》가 있다.

 

▶ 차례

프롤로그 8

Part 1 우주 왕자가 사는 정신 병원

현장 스케치 20

―“알 유 브루스 리?” 24

• healing art workshop #1: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공감 대화 33

―당신이 웃으면 세상이 웃어요 40

• healing art workshop #2: 자화상-너를 그리기 53

―외계인과 함께 춤을 58

• healing art workshop #3: 몰라야 만들 수 있는 작품 69

―아픈 몸을 그림으로 치유하다 74

• healing art workshop #4: 상상 몸 그림 그리기-나에게 주는 치유의 선물 85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정신 병동에서 배웠다 91

• healing art workshop #5: 명언집 만들기-보편적인 삶의 지혜 106

―사랑이 가득하네 111

• healing art workshop #6: 헤어짐 주머니 만들기 121

―공감 127

• healing art workshop #7: 공감적인 듣기 훈련 139

• healing art workshop #8: 요술봉 만들기 148

 

Part 2 비행 청소년과 눈싸움

현장 스케치 156

―너도 서쪽 동네 출신이야! 162

• healing art workshop #9: 두려움을 직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 만들기 175

―날카로운 것들 183

• healing art workshop #10: 삶의 은유 찾기 194

―골무 203

• healing art workshop #11: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 213

―어메이징 그레이스 218

• healing art workshop #12: 감사하기 231

―텃밭 가꾸기 240

• healing art workshop #13: 자연과의 치유적인 만남 257

―치료사 스스로를 위한 미술 치료 264

• healing art workshop #14: 셀프 힐링 치료 키트-방향을 정하고 자리를 깔기 277

―찾아나서는 행복 284

• healing art workshop #15: 일상을 특별하게 하기 296

• healing art workshop #16: 응급 상황 대처 매뉴얼 306

에필로그 314

 

▶ 본문 맛보기

― 내가 믿어주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믿어주라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사실을 믿어주라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우주선을 타고 온 것을 믿기는 힘들지만, 그가 자신의 갈 길을 잃었으며, 집으로 갈 수가 없고, 이곳에 혼자 떨어져 막막하다는 그 사실을 믿어주라는 것이다. 모든 거짓말에는 진실의 씨앗이 들어 있으며, 우리가 접속하고자 하는 진리는 속에 있는 그 씨앗이다. 다 싸잡아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절대 들을 수 없는 것이므로 씨앗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열어볼 일이다. (68쪽)

 

― 서구의 심리학에서는 나와 네가 독립된 존재임을 아는 것이 정신 건강의 척도지만, 공동체적인 다른 많은 사회에서는 ‘개별화의 확립은 자아의 건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고립을 의미하거나 부적응 또는 정신이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생태심리학의 선구자인 로작Roszak은 ‘자기’에 관한 집착은 이 사회의 집단적인 정신병이며, 개인을 존재하게 하는 많은 관계(예를 들어서 타인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와 따로 떨어뜨려서는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128쪽)

 

― 어쩌면 공감이라는 것에 다양한 형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어쩌면 공감이라는 것에 다양한 형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작은 목소리이지만 자폐적 상태를 ‘독특한 문화’ 또는 ‘소수인의 행동 양식’으로 받아들이자는 목소리도 있다. (130쪽)

 

― 내가 정신 병원에서 일하면서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불평은 자신의 병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으면, 병이나 가난이나 살 집이 없다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외로움이라고 했다. 치료를 더 잘 받았으면, 더 좋은 약물이나 더 좋은 의사를 만났으면 하는 게 아니고, 애인이 있었으면, 가족이 있었으면, 친구가 있었으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또 그 한 명이 하루라도 문병을 왔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환자이기 전에, 정신병자이기 훨씬 전에 나와 같이 외로워하는 인간이다. 공감하고 공감 받고 싶어 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136쪽)

 

― 나도 이 아이들의 과거를 기록한 차트를 보다 보면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읽기가 힘들었다. 그 아이들의 짧은 삶의 기록은 학대와 폭력과 강간과 버림받은 이야기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여기 어떻게 오게 됐니?'라는 질문에 입을 꼭 닫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내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 아이들의 삶을 보면,‘이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말을 안 듣고 문제가 있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나?’가 아니라,‘이 아이들이 인간으로서 당해서는 안 될 일들을 그렇게 당하고도 어떻게 삶의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배반당하고도 어떻게 아직도 사랑을 갈망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160쪽)

 

― 폭력 안에 깃든 두려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두려움은 폭력의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곳에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질러대는 욕이나 휘두르는 주먹에 동요한다면 내 안에 있는 두려움과 자기 보호 본능이 발동하여 나도 함께 욕을 내뱉거나 주먹을 쓸지도 모르고, 그렇게 한다면 내가 분명 그들에게 맞을 거다. 그래서 나는 맞지 않고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라도 폭력 앞에서 두려움이 없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내 스스로의 폭력성을 잘 알고 있어야 했다. 내 내면에 있을 수 있는 폭력성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을 타인에게 투사할 수도 있고, 부정하다 보면 어느 날 이상한 데서 이상하게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3쪽)

 

― 그런데 이쯤이면 짐을 싸고 도망을 가던 내가 오늘은 버티고 있으니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를 어떻게 할 기세다. 한 놈이 얼굴을 내 앞에 바싹 대고는 “어떡할 거야, 때리고 싶어? 욕해 보지?” 하면서 빈정거린다. 처음에는 이 애들 이러는 게 그렇게 무섭더니 이제 나도 좀 겪어봤다고, 싸울 수도 도망갈 수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마음이 조용해진다. 째려보는 이 아이의 눈을 보다가 뜬금없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우리, 눈으로 하는 게임 하나 할래?” 이 질문에 인상 짓고 있던 아이의 표정이 확 바뀐다. “그게 뭔데?” 하고 궁금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이런 놀이를 미국에서도 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하고 자주 했던 눈싸움 놀이를 설명한다. 서로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먼저 웃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고. 째려보는 게 특기이니 뚫어지게 노려보는 게 너무나 쉬울 것 같은 이 아이들과 승산이 있을까 싶었는데, 눈싸움 놀이를 시작하자마자 이놈들 몇 초를 못 견디고 웃느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나랑 눈만 닿으면 웃겨죽겠다며 자지러진다. 그런데 웃음소리가 다르다. 비웃고 작당 모의하고 기분 나쁘게 웃어대는 웃음소리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까르륵까르륵 넘어가는 애들 웃음소리다. 어라? 재밌어하네? (171쪽)

 

― 칭찬은 양날의 칼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도 한다지만, 과도한 칭찬은 “나는 당연히 이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대책 없는 칭찬은 아무런 힘이 없으며, 진정성 없는 칭찬은 울림이 없다. 칭찬을 잘하고 싶다면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다 좋다” 또는 “모든 것이 훌륭하다”는 식의 칭찬은 피드백으로 도움이 전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정성이 없다. 그 프로젝트에서, 그 발표에서, 그 옷차림에서 뭐가 멋졌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되는 칭찬이다. 칭찬은 선택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칭찬거리를 찾을 수 있다. 아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면 그 상황이 괴로울 수 있겠지만, 칭찬을 해주기로 선택을 했다면 목청의 시원시원함을 칭찬해 줄 수 있다. (213쪽)

 

― 내가 하는 일에서 희망이라는 것은 이렇게 ‘순간’이라는 단위로 세어진다. 사람들은 내게 “미술 치료, 그거, 치료가 되는 거요?”라고 묻고는 한다. 미술 치료의 미술이나 예술 치료의 예술은 만들어지는 물질적인 결과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만들고 찾아내는 창조의 작업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예술적인 감성으로 하는 치료, 그거, 된다. 그러나 치료라는 것이 병에 걸렸다가 나아지는 그런 의미의 치료는 아닌 것 같다. 한 번에 치료가 되는 것도 아니다. 1년 단위나 일주일 단위도 아니고, 하루 단위로 치료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런 순간들이 있을 뿐이며 치료의 효과도 한 순간의 단위로 계산된다. 하지만 그런 짧은 순간들이 모여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혼이 가득한soulful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모일 때 샬린에게도 치유의 날이 오지 않을까? (229쪽)

 

― 실내에서 미술 치료를 할 때는 치료사가 내담자의 말과 표정과 작업에 집중하고 공감을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치료가 끝나고 난 후에는 피곤해지기 예사였다. 그런데 숲에서는 생각이 멈추는 여백의 빈 시간들이 많아 치료 후에도 피로하지 않았다. 숲에서 상을 펴놓고 작품을 만들고 있으니 동네 사람이 와서 뭐하는가 묻고, 지나는 사람과 인사도 하게 되고, 그러다 새가 울면 대화가 멈추고, 바람이 불면 마음에도 바람이 불었다. 문제에 집중을 하기보다 문제 밖으로, 우리 밖으로 의식이 확장되었으며, 자연 속에서는 내가 치료사고 내가 상대방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그도 함께 자연의 치유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2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