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탤탤입니다.
어쩌다보니, 후기를 이렇게 쓰고 있기는 하지만, 후기를 쓰는 것이 단순히 독서회에서 언급되었던 이야기를 그저 나열하는 것이 아니기에, 점점 더 어려움을 느낍니다. 글을 쓰는 어려움도 크겠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어 하나 조차 전처럼 쉽게 쓸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배틀 그라운드>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낙태죄 폐지’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느꼈던 순간과 비슷한,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들이 제 머릿속에 둥둥 떠다닙니다. 세 번째 길잡이 독서회에서도 이런 혼란 속에서 정리된 내용입니다.
세 번째 독서회는, 독서회 시간 내내 ‘천재캐릭터’, ‘음유시인’으로 호명되었던 박종주 선생님께서 길잡이로 함께 해주신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글 [재생산 담론과 퀴어한 몸들]은 이 책 <배틀 그라운드>에서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배틀 그라운드>의 앞부분에서 법적, 의학적으로 낙태죄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면, 책의 뒷부분에서는 그 의미를 조금 더 확장시켜 낙태죄가 생산해내고 있는 몸에 대해, 그 논의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박종주 선생님은 쓰신 글을 바탕으로 ‘퀴어한 몸’을 통해 재생산 담론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첫 시작은 아일랜드 낙태죄 폐지 운동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피임부터 임신중단까지 엄격하게 규제해왔던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가 최근 낙태죄 폐지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데요, 그 운동에 크게 기여했던 것이 성소수자들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도 낙태를 전면 금지한 헌법 수정안(1983년)을 폐지하고 낙태가 가능한 법안을 제정함에 있어서, 대상을 ‘임신한 여성(pregnant female)’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초 성소수자 운동단체에서는 이 법에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가 포함된 ‘임신한 사람’으로 주장하였으나, 이 부분에서는 조금 후퇴한 결정이 내려졌다고 하네요. 아일랜드에서는 성별 전환이 한국처럼 반드시 수술을 전제해야 전환이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성별을 전환하지 않은(=여성으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이 법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겠죠. 이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더 이상 낙태죄가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지는 듯 합니다.
아일랜드 낙태죄 폐지 운동을 촉발시켰던 것은 2012년 사비타 할라파나바르가 유산할 위기에 처한 아이를 낙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의사들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이유로 낙태를 거부하면서, 결국 사비타가 숨을 거두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시 나누면서, 우리가 하는 낙태죄 폐지 운동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요, 어떤 운동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사건의 비참함과 비극성을 부각하면 할수록 운동의 파급력은 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유효한 운동의 방식인가라는 것에는 우리 스스로 질문해봐야 합니다. 비참함을 부각시키는 순간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사건과 당사자를 나와는 다른 존재, 다른 상황으로 타자화 시킬 수 있습니다. 곧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면, 결국 그 운동에 대한 실천과 책임감은 옅어지게 되겠죠. 운동의 열기도 금세 식을 것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비참함을 강조한 ‘사연팔이’로 그치지 않고, 나와의 관계성과 맥락을 가진 ‘서사’로 바라볼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놓인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임신과 출산의 논의에서 벗어나 있는 몸에 대한 발화에 대한 질문이 등장했는데요. 책에서도 언급이 되었듯, ‘정상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아닌 경우엔 거의 대부분 사회적 제재가 될 수 있기에 공론의 정에서 발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임신과 출산 논의의 외곽이 있어왔던 몸과 삶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야 하죠. 박종주 선생님께선 이 부분에 대해 연극과 같이 다른 매체를 통한 발화의 가능성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셨는데요, 덧붙여, 한 사람이 정체성을 인정받는 것이 그것이 당장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발화할 것인가는 너무 중요한 문제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시민권의 문제도 나눠봤는데요, 국가는 현재 어떤 존재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시민권의 문제에 있어 어떤 프레임에 갇혀 있을까요? 임신 중지의 문제를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과 같은 이분법적으로 대결하는 것으로 그리는 ‘낙태죄 찬성’측의 입장에 대해, 이 책에서는 끊임없이 이러한 구분법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때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가 태아의 시민권입니다. 현재 우리의 법체계에서는 태아의 시민권을 전제하는 법은 없습니다. 또한 국가는 태아가 탄생한 이후 이 존재의 보호 의무가 있을 뿐이지, 태아의 생명권을 논하는 대변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어떤 태아에게는 생명권을 주장하고, 어떤 태아는 선별적으로 태어나지 못하게 할 때도 있죠. 시민권의 문제를 확장시켜 우리 사회에 실질적으로 시민권을 인정받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외국인, 난민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 국민인 장애인, 성소수자들의 시민권은 제대로 인정받고 있을까요? 반면, 이러한 문제로 국가와 싸워야 하는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또한 우리 역시 ‘시민권’의 프레임에 갇혀있지는 않나요? 우리에게 시민권의 논의는 어디까지 유효할까요? 이러한 수많은 질문에 박종주 선생님께서는 이런 대답을 남겨주셨습니다. ‘나는 어디까지 내어줄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훈련하신다’고. 한 참여자 분께서는 우리가 시민권의 범주를 논하기에 앞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봐야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다른 한편으로 태아의 시민권의 논의를 확장시켜 나가보면, 결국 태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문제는 결국 국적이나 상속의 개념을 전제했을 때 논의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태아가 의제하고 있는 무엇 때문이 아니라, 태아 밖에서 태아에게 무엇인가를 부여하며, 바깥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있을 텐데,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는 말씀이셨죠. ‘밖에서의 호명’과 동시에 여성과 태아를 분리시켜 설명할 수 없는 것, 이것이 여성의 몸을 지나는 또 하나의 ‘교차성’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이 시간에는 ‘교차성’에 대해 특히 여러 번 언급이 되었는데요, 박종주 선생님께서 서두에 ‘개인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말씀에 대한 부연 설명 부분을 잠깐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이 책 김선혜 선생님의 글 [섹스 없는 임신, 임신 없는 출산]에 대한 첨언이기도 했는데요, ‘백인들이 제3세계 여성의 착취(가령, 대리임신)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여기서도 많은 것이 얽혀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흑인, 여성, 노동자 등의 교차성을 이야기할 때, 피억압자들이 얼마나 억압을 당하고 있는지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억압자들에게 분명한 특권이 있음을 인지하는 중요하다는 것, 대리 임신하는 아시아 빈곤층 여성의 선택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이 말씀이 앞서 개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씀의 해제(!)와 같았습니다!) 그런 윤리적 판단을 할 때에는 타인보다 나에게 보다 엄격한 기준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교차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는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인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규범성과 퀴어함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기준 또한 어쩌면 남성적인 속성 아닐까요. 정상성에 대한 관습, 규범성에 순응하는 몸에 익숙해진 우리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재생산 담론을 이야기하는지에 대한 의문, 이 담론에서 주변화되어 있는 존재는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그 담론 속에 있는 나는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구요.
직장에서 어떤 규정성을 강요받을 때 그것에 반발하고 해결하려고 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 나또한 정상성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어요.
마지막으로 박종주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은, 퀴어의 권리나 그들의 삶이 퀴어가 아는 삶들과 마치 충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을 구분하고 대립되는 것으로 만드는 존재가 있을 뿐, 이 둘의 권리와 삶은 충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존재들, 그것이 현상적으로 적대관계에 놓여있더라도 ‘적대자들의 연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말씀을 남겨주셨네요.
이번 후기에는 유독 질문이 많고, 여러분께서 들려주신 말씀 그대로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이날의 논의가 제 안에 제대로 소화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여느 시간 보다 주옥같은 표현과 말씀들이 많이 있었는데, 정리가 부실해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속상합니다. 또르르... (같이 했던 그 시간, 그 느낌을 잊지 않으신 여러분, 부디 여러 첨언과 수정 부탁드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런 물음표를 계속 머릿속에 띄워둔 채, 이 책의 후반부와 또 연결되는 다른 글들도 함께 읽어보려고 합니다. 이 책 <배틀그라운드>가 모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길 바라며. 마지막 길잡이 독서회시간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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