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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책 주요활동/길잡이 독서회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길잡이 독서회 - by 오혜진 문화평론가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27일까지 4주간 열어주신 #땡땡책협동조합 의 <#지극히문학적인취향> 길잡이 독서회가 어제 끝났어요.

제 책의 총 다섯 챕터 중 3부를 제외한 1, 2, 4, 5부를 한 주에 하나씩 심층 독서하는, 저로서는 아주 귀한 자리였지요. <#문학을부수는문학들> 때도 이 프로그램을 경험해봤고, 그때 아주 흥미로웠던 기억 때문에 이번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응했습니다.

쉽지만은 않았어요. 처음에는 ‘저자와 함께하되, 저자에게 강의를 듣는 게 아니라 저자가 다른 참여자들과 그저 함께 이야기 나누는 방식’이라는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에 잘 적응하지 못했거든요. ‘과연 이것이 책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데에 적절한 방식인가? 저자가 없는 게 더 낫지 않나?’ 이런 생각을 했죠. 눈앞에 저자가 있으니, 아무래도 참여자들은 책에 대해 좋은 말만 하게 되고, 저자 역시 짐짓 부끄러워하거나 잘난 척하는 거 외에 별다른 리액션을 할 수 없을것 같았거든요.

게다가 아무리 훌륭한 책도 4주 동안이나 끼고 다니면 지겨워지고 흠이 보이기 마련. 저자를 4주 동안 만나 3시간씩 이야기 나누면 당연히 신선함이 떨어지죠. 출간 직후 따끈따끈한 책을 들고 딱 한 번 나타나, ‘책 멋있죠?’ 하고 사라지면 좋았을 것을... 책의 행간까지 샅샅이 훑고 더불어 저의 인격마저 꿰뚫리는 이런 자리가 과연 나에게 득일까?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린 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직장 일 마치고 늦은 저녁에 귀가를 미룬 채, 굳이 "바락바락"(양선화 쌤의 표현) 독서회에 오는 언니들이 단지 ‘저자 칭찬’이나 해주러 오실 리가 없죠. 4주 동안 함께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대체 이 자리가 이 언니들한테 무슨 의미인가’였어요. 제 책, 혹은 ‘책’ 자체가 너무 좋아서일 리는 없고,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진짜 오가는 것은 무엇인가. 지식? 정보? 친교? 인맥? 정?

제가 이 모임에서 가장 절실하게 배운 건 ‘태도’ 혹은 ‘예의’ 같아요. 책에 대한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말씀해주시고, 참여자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도 서로 상처주지 않기 위한 ‘머뭇거림’, ‘웃음’, ‘침묵’ 같은 게 있었어요. 당연히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죠. 각종 연구모임, 학회, 간담회, 심포지엄 등의 자리에서 ‘난 어떻게 앉아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늘 뚱하게 앉아 있고, (없는) 지성을 뽐내야만 하는(?) 게 연구자의 숙명인지라, 괜히 막 ‘난 너에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아’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표시하며 앉아 있었던 건 아닌지... (물론 아주 호의적인 생각으로 앉아 있어도, 전 ‘웃지 않는다, 무표정이다’라는 이유로 무섭다거나 못됐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요) 아무튼 저의 의식적/무의식적인 ‘지지의 유보’가 어떤 사람들을 꽤 주눅 들게 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땡땡책 모임의 참여자분들은 다른 생각이나 비판적 의견이 있을 때, 어떻게 말하거나 말을 아끼는지 저한테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원래 어디 가서 미움 받는 걸 두려워하는 성격이 아닌데, ‘이 사려 깊은 언니들에게만은 미움 받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답니다. ‘꽤 상종해볼 만한, 괜찮은 애’로 평가된다면 다행이겠어요. ^^

이 독서회에 참여한 분들이 제 책을 얼마나 섬세하고 날카롭게, 그리고 따뜻하게 읽어주셨는지는 말하자면 입 아픕니다. 아무도 못 찾아낸, 제 책의 띄어쓰기 오류도 잡아주시고, 저라면 결코 찾지 못했을 어휘로 제 책의 핵심을 재언어화해주시기도 했죠. (저자가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들 중 하나인 듯!) 그리고 ‘작품론도, 작가론도, 비평론도 아닌, 메타비평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이런 글쓰기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이냐’라는 질문을 매주 서로 다른 언어로 세 번 거듭 물어보신 박혜란 쌤의 집요함에는 제가 끝내 제대로 답하지 못했네요.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으면 칼럼이나 르포 등의 글쓰기도 있고, 그냥 네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만 담백하게 써도 되는데, 왜 반드시 ‘예술양식과 그에 대한 담론 비판’을 경유해서 말하는가’ 하는 질문이었죠. 저로서는 ‘작품을 제대로 혹은 더 잘 보는 것’이나 특정 필자의 사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 제 글의 1차 목적은 아니라는 것, ‘재현의 인식론’을 조정하고 갱신하는 게 저한테는 중요하다는 얘기를 어버버 한 것 같네요. 계속 생각해보겠습니다.

물론, 여전히 '아! 내가 너무 말을 많이 많이 했다'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만... 여튼, 저는 이 모임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첫 회에 바로 ‘땡땡책협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어엿한 ‘조합원’이 되었어요. “이 좋은 것을 혼자만 하면 안 되기에!” 제 책과 함께 씨름하고, 시간과 마음을 나눠주신 책모임의 모든 분들,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훌륭한 사람 돼서 이 은혜 꼭 갚을게요!!!

덧) 몇몇 분이 저와 페친이 아니라서 태깅이 되지 않네요. 아쉽..

 

출처 : https://www.facebook.com/hyejin.oh.140/posts/2477946032269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