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에서 살아가기로
주수원(아이러브쿱 운영자)
11월 6일 하승우선생님과 함께 하는 길잡이가 있는 독서회 ' '살아남기에서 살아가기로' 3번째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의 책은 고병권님의 <살아가겠다>였습니다. 땡땡책협동조합 친구 출판사 책이여서 조합원 할인가로 책을 구매해 놓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독서회에 참여했습니다. 거기에다 지각에, 중간에 전화 받으러 나와서 제대로 참석했다고 보기에는 힘든 후기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회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후기를 남기니 이 점 양해하고 봐주세요. 이 책의 부제인 고병권이 만난 삶, 사건, 사람에 맞춰 나왔던 이야기들을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삶
많은 분들이 ‘탈시설, 그 ’함께-삶‘을 위하여’와 ‘밤에 열린 어느 장애인 학교’를 통해 장애인의 삶을 간접 체험하며 고통스러웠던 감정을 얘기했습니다. "TV에서 보았던, 그렇게 부러웠던,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 부르고 얘기하는 것을 해보았을 때 너무 좋았어요“라고 하는 노들야학 학생의 고백(p93)에 가슴 아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장애를 다시 타자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으로 받아들여야 겠다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장애를 가졌기에 이런 저런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활동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장애인이 되는 것“(p95)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능한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능력을 무능함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사회, 대안이 없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란 얘기도 나왔습니다. 저는 이와 관련해서 ‘당신의 삶에서 당신의 철학을 본다’에서 나오는 플라톤이 ”네가 디오니시우스 왕에게 조금만 더 공손했더라면 너는 네 샐러드를 직접 씻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라는 얘기에 디오게네스가 ”네가 네 샐러드를 직접 씻는 법을 배우면 너는 디오니시우스 왕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p18)는 답변이 떠올랐습니다. 나라는 개인만이 아니라 무능력하고 무기력하다고 여기는 우리가 모두 함께 ”샐러드를 직접 씻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 사회가 강요하는 무기력함을 재생산하는 삶에 구속되지 않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함께 사는 삶이란 서로가 다름에도 어울릴 수 있는 삶이란 얘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얼마나 수용하며, 함께 어우러지고 있을까, 우리의 공동체는 또 하나의 폐쇄적인 것은 아닐까란 얘기가 나왔습니다. 더불어 우리의 책 읽기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책을 읽고 와서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다가 그와는 또 다른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내용적인 부분에서 옳고 그르냐, 사실이냐, 아니냐를 고민했지만 결국 어떤 사람의 입장, 고민의 관점을 듣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사실 저도 2번 모임을 하며 책의 내용 보다 우리 주변의 사회에 대한 비판점과 느낌이 주로 얘기되는 게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임수정 캐릭터의 사회에 대한 불만들을 쭉 듣는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부정만이 아닌 대안적인 삶의 재구성, 그 속에서의 나의 작은 실천들을 모색해볼 수는 없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떤 분에겐 이 공간이 답답한 일상에서 불만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작은 창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강의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가진 사회에 대한 불만과 문제점을 충분히 얘기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러한 비판을 넘어선 얘기를 하고 싶지만, 어떤 분에겐 앞의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수 있는 것이죠. 우리 독서 모임 안에서도 이러한 다름이 있었고, 그 다름과 함께 교차하는 삶이 있었던 것이죠.
사건
다이나믹 코리아란 말처럼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사건이 사건을 덮으며 무엇하나 해결되지 않은 느낌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관심을 두루 갖고 보는게 중요하나, 나의 현실적인 여건상 모든 문제를 다 끌어안고 있을 수도 없고, 다 쫓아 다닐 수도 없다는 점을 얘기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들은 많지만 이미 나의 후원금 계좌는 다 찼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다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하면 내 일이 되고, 그렇다고 멀리하자니 부채감만 쌓인다는 것이죠. 또 유독 사회의 아픈 사건들에 대해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힘이나 모임이 동력이 되어 나가는 게 아니라,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라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고 막막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눴습니다.
사건들을 쫓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연계되어 사건을 바라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 책에서는 2000년대 이후 장기 투쟁의 양상 속에서 나타난 ‘지킴이’를 주목합니다.(p152) 지킴이들은 사건이 발발한 이후 아직 사건의 의미가 결정되지 않았을 때 들어가서 의미의 생산에 개입합니다. 하지만 1980년대처럼 계몽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민들과 함께 싸우고 살아가면서 공동으로 의미를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그 ‘의미’를 또한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저의 경우 어쩌다보니 협동조합 교육, 상담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협동조합들을 만나고,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협동조합들에 모두 응답을 하다보면 나의 삶은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협동의 관계망에서 조합원으로, 소비자로, 생산자로, 지역주민으로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함께 살아가다 보면 저 역시 활동 속에서 소모되는 것이 아닌 함께 성장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
삶과 사건을 지나쳐 우리는 사람으로 이어집니다. 타인의 삶과 내가 만나는 사건 역시 결국 사람을 통해서 만나게 됩니다. 음식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알게 되면서는 길가의 음식 쓰레기 통이 다시 보이게 된다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다시 보입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노동들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마주치는 시점이 있다는 얘기를 누군가가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통해 사회는 다시 다가오고, 사건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관계가 교육가 비슷하다고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면 배움이 저절로 이뤄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분은 자신의 역할이 내가 느끼는 사회의 문제를 주변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계속 관계를 형성하며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계몽은 지성이 아니라, 용기를 주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눴습니다. 또한 사랑은 동질화 되려고 하는 속성이 있어 공동체에 적합하지 않은 감정이며, 서로 견줄만한 것이 되는 우정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눴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호감인 것이죠.
이와 관련해 얼마전에 페북에서도 얘기했던 <유나의 거리>가 생각났습니다. 드라마 초반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흠이 가득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소매치기, 꽃뱀, 조폭, 부패한 전직 경찰 등. 하지만 주인공 창만을 중심으로 서로간의 지탱해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어 갑니다. 상대방의 지나온 역사를 알아가고, 그들이 하는 행동이 아닌 이들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외로움, 슬픔, 두려움, 분노 등. 그런 감정들을 어루만지며, 인물들은 서서히 변해갑니다. 믿어주고,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변할 수 있으며 그렇게 사회도 변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책은 이러한 삶, 사건, 사람을 통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참 힘들고 어렵고 가슴 아프지만, 한 발 내 딛으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지를 밝힙니다. 외부의 동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하루 무의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를 가득 담아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며, 고통스런 사건들을 접하는 사람들을 껴안으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다음 독서회는 어떠할까?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겪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 그 이야기를 들으며 드는 여러 생각들, 감정들은 어떻게 풀어낼 수 있고, 어떻게 다시 파장을 이어갈까? 궁금합니다. 책을 함께 읽는다는 기쁨은 이런 의미이겠죠? 땡땡이 치지 말고 열심히 들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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