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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출판사의 새 책/인문사회

스피노자 매뉴얼

정가 15,0000원

정념과 증오를 넘어 온통 자유와 긍정으로 가득한 삶을 꿈꾸었던 철학자 스피노자에 대한 정치하고도 포괄적인 입문서가 나왔다. 프랑스에서 스피노자 연구를 이끌고 있는 세계적인 철학자 피에르-프랑수와 모로의 스피노자와 스피노자주의(Spinoza et les Spinozism, PUF, 2003)가 스피노자 매뉴얼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끄세주?(Que sais-je?) 문고’(프랑스의 PUF(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가 1941년에 시작해 현재도 출간하고 있는 유서 깊은 교양문고 시리즈)로 나온 입문서답게 스피노자의 생애와 저작, 그리고 쟁점과 수용사가 망라되어 있다. 스피노자의 생애와 저작의 경우 이미 어느 정도 국내에 소개되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스피노자의 생애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기존의 허구적이고 왜곡된 생애를 교정하고 있고, 저작들의 집필 연대와 관계, 문체상의 특징, 핵심적 내용들을 체계적이고 요약적으로 서술하면서 스피노자 저술의 전체적인 면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스피노자 철학을 둘러싼 쟁점이나 수용사를 다룬 부분은 아직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분야라는 점에서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스피노자에 대한 종합적 인식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애에 대한 치밀한 고증

스피노자 매뉴얼의 가장 큰 덕목이라 하면, 스피노자와 관련된 여러 사실들과 철학적 개념들에 대한 면밀한 고증과 치밀한 연구 그리고 추론을 통해 치우침 없는 균형감 있는 서술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짧은 생애(1632~1677)를 살았던 만큼 스피노자의 삶에 대해서 아직까지 많은 부분이 잘못된 정보나 추측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그 난해함 때문에 철학적 개념과 내용에 대해서는 오독되고 성급하게 단정 지어진 부분이 많다. 저자는 전기적인 측면에서 기존에 이용되던 자료의 신빙성과 이용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는데, 이는 스피노자의 생애를 소개하는 전기들이 저자의 다양한 입장으로 인해 단순히 사실의 보고만을 겨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스피노자가 놓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도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스피노자가 단순히 네덜란드인이었다든가 데카르트주의자였다는 전기적 사실이 그런 맥락 없이는 아무런 변별적 의미도 띨 수 없기 때문이다.

스피노자 매뉴얼에서 전설에 불과한 의심스러운 사실이라고 정정해주는 스피노자에 대한 매혹적인 이미지가 몇 가지 있다. 유대공동체의 폐쇄성과 단절한 스피노자에게 유대교의 한 광신도가 칼을 휘둘렀다거나, 이를 계기로 인간이 언제나 이성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우울한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스피노자가 칼에 찢긴 외투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전설 같은 것 말이다.

‘숨은 현자’라는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유대공동체로부터 파문(‘헤렘’)을 당하고 하숙집에 숨어 렌즈 세공으로 생계를 근근이 유지하면서 고독하게 철학을 업으로 삼아 평생을 살았다는 금욕주의자로서의 스피노자. 그러나 저자는 이를 스피노자에 대한 최대의 오해라고 주장한다. 스피노자가 명예나 타인과의 갈등을 추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독한 금욕주의자로 살았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늘 “친구, 제자, 서신 교환자들의 네트워크 한가운데”(p.90) 있었고, 이는 “매 저작마다 인간 상호관계를 개체에 대한 정의의 핵심에 놓았던 저자에게 사람들이 기대할 수 있는”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간소한 삶을 살았던 것이지 정념을 억압하는 금욕주의자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이는 󰡔윤리학󰡕 4부 정리 45의 주석에서도 알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은 적당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향수를 뿌리고 보기 좋은 식물을 즐기고 옷치장을 하고 음악 감상과 놀이를 즐기고 연극 관람 및 각자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이와 같은 종류의 일을 즐긴다.”(p.91)

 

『철학』에서 『윤리학』으로 제목이 바뀐 이유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치밀한 연구는 전기적 사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각각의 저술에 대해 요약적으로 서술하는 부분에서도 스피노자에 대한 연구의 내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윤리학 철학 이라는 제목에서 바뀌게 된 경위나, 애초에 설계되었던 3부에서 5부로 그 체계가 변경된 이유에 대한 분석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제목을 바꾼 이유 두 가지는 모두 개연성이 있으며, 양립할 수 있다고 한다.

우선 개별성 일체를 거부하며 자기애를 원죄로 보는 횔링크스가 윤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자, 자기애를 덕으로 보는 스피노자가 횔링크스의 신스토아주의 철학과의 대립을 명료히 표명하기 위해 제목을 윤리학으로 바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철학이 데카르트적인 느낌의 제목이자 세계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책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데 반해, 스피노자의 의도는 그렇게 박식한 체계의 홍보가 아니라 “독자들을 지복에까지 ‘손수’ 인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윤리학으로 바꿨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1665년까지 원래 3부로 이뤄져 있던 윤리학이 출판을 시도하던 1675년경에는 5부로 변경된 것도 단순히 3부의 명제들의 양이 늘어났다는 양적인 대답에 만족할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여기서 신학정치론과의 관련성을 얘기하는데, 스피노자가 윤리학 집필을 중단하고 도중에 신학정치론을 쓰는 기간(1665~1670)에 “종교적 영역 및 정치적 영역의 횡단, 그리고 이 횡단이 함축하는 인간 상호관계에 대한 분석의 결과, 이 물음들에 대한 스피노자의 관심은 커져갔고, 그의 분석은 정교해져갔으며, 바로 이 점이 현재의 판본이 보여주는 보다 정확한 분할을 정당화할 수 있다.”(p.134)는 것이다.

 

스피노자에 대한 성급한 해석들

스피노자 매뉴얼은 정밀하고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기존의 연구가 놓치고 있는 사항들이나 성급한 해석들, 간과되었던 것들, 유의해야 할 사항들도 지적한다. 가령, 윤리학 2부에는 복잡성이나 외적인 것과의 관계를 통해 물체들 간의 차이를 규정하는 ‘자연학적 공준’이 있는데, 여기서 스피노자는 인간과 인간 이외의 것에는 순전히 정도상의 차이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를 준거로 인간과 자연의 공통성을 주장하는 생태주의자들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 이외의 것에서 본성적인 차이보다는 정도상의 차이를 강조하긴 하지만 스피노자는 차츰 “이 공통성을 불가피하게 단절로 이끄는 논리”를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스피노자의 이론적인 효율성은 처음의 이 미약한 차이로부터 마침내 전면적인 분기를 끌어내는 데 있게 될 것”인데, 그것은 “사람들과는 화합을 추구해야 하지만, 자연의 나머지는, 특히 동물들은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화합 대 이용”이라는 이 근본적인 차이를 생태주의자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진리에 대한 인식을 지복의 길이라고 주장했다는 해석이 성급한 것이듯이, 모두 88통이나 되는 그의 편지들을 “마치 자율적인 논고인 양” 편지에서 “이런저런 논점에 대한 그의 생각의 전모”를 찾아보려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그의 편지는 답장이며”, “상대편이 제기한 물음들을 이어받아, 대개는 제기되었던 순서에 따라 이 물음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감안하여 그의 편지를 읽어야 하는데, 더 정확히는 “특정한 반박에 답변하는 주석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스피노자의 특이성

이와 함께 스피노자 매뉴얼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스피노자의 특이성을 설명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정념론에 대한 분석이다. 스피노자는 당대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데카르트나 홉스처럼 ‘정념’을 자신의 철학 영역으로 다룬다. 욕망, 기쁨, 슬픔, 증오, 사랑과 같은 대상관계의 정념들은 이들과 공통적이다. “스피노자가 대상관계를 다루는 한, 어떤 의미에서 그는 고전적이다.”(p.153)

스피노자만의 독창성은 그가 대상관계에서 유사성의 원리로 나아가는 지점에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와 유사한 것이,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아무 정서도 갖지 않았는데도, 어떤 정서로 변용된다고 상상하면, 우리는 바로 이 때문에 그와 유사한 정서를 체험할 것이다.”(3부 정리27) 이와 같은 정서모방의 계열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스피노자는 인간이 정념에 대한 예속과 그로 인한 인간 사이의 갈등에서 벗어나 자유의 영역에 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증명하게 된다. “원초 정념들의 놀이”가 데카르트나 홉스와 공통적인 것이라면, “정서 모방”은 스피노자 심리학의 독창적인 면모가 된다.

합리주의자 스피노자는 스피노자 매뉴얼에서는 다음처럼 더 고유한 자리를 지정받는다. 모든 것을 지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절대적 합리주의자’. 온전히 신만을 향한 철학자가 아니라, 진리 규범이 역사적으로 산출되고 자유에 구체적인 역사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합리주의자’. “모든 사람이 평화, 안전, 정치적 자유를 공유하게 하는 것, 또한 그들 중 최대수가 영혼의 해방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전투적 합리주의자’.

 

스피노자를 둘러싼 논쟁점

스피노자 매뉴얼이 정리해주는 스피노자와 관련된 논쟁점 또한 일목요연하다.

스피노자는 무신론자인가? 심판과 처벌 그리고 보상의 논리 속에 있는 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면 그는 무신론자가 맞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자신이 말하는 신을 “참된 삶의 모델”이라고 주장하면서 무신론자라는 비난에 대해 자신을 변호한다. 스피노자에게 신이란, “진정한 역동성과 자유를 누리며, 이런 역동성과 자유가 양태들의 역동성을 정초하고, 가끔씩은 양태들의 자유를 정초한다는 점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보면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다.(p.192~195)

스피노자는 유물론자인가? 속성들 간의 상호작용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사유’에 대한 ‘연장’의 영향이나 연장에 대한 사유의 영향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그는 유물론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점에서는 확실히 유물론자라 할 수 있다. 연장과 신체를 사유와 영혼의 하위에 두었던 철학적 전통에 맞서 신체와 연장의 자율성, 역동성, 고유의 역량을 보여주면서 신체와 연장의 가치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유 속성과 영혼도 물리적 연장 못지않게 과학의 대상으로 간주했다는 점에서.(p.195~196)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문제도 있다. 우연에 대해 어떤 여지도 두지 않는 사유가 어떻게 자유에 대한 긍정일 수 있는가? 혹은 절대적 필연을 인정하는 철학이 어떻게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윤리적 도정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스피노자 매뉴얼󰡕은 이렇게 말한다. 먼저, 자유를 결정의 완전한 부재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자유와 결정의 부재가 같다고 하더라도 자유를 결정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간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결정의 완전한 부재가 결코 결정보다 더 선호할 만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선택이라는 문제는 별개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고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선택하는 인간의 삶에는 늘 불투명성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p.196~198)

***

스피노자 매뉴얼은 하나의 시금석과도 같다. 끄세주?(Que sais-je?), “나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스피노자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스피노자 매뉴얼은 오해와 신화와 성급한 해석들을 걷어낸 스피노자에 대한 앎을 전해줄 것이다.

 

■ 본문 미리 읽기

판 덴 엔던의 딸 클라라마리아에 대한 스피노자의 사랑(이는 콜레루스가 전한 이야기로서, 그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시기에 대해 어떤 확증도 없이 이렇게 말한다. 이때 클라라마리아는 12살이었다), 스피노자가 극장을 나올 때 유대인 광신도에게 칼침을 맞았다거나, 유대인 랍비들이 암스테르담 당국에 고발하여 스피노자가 암스테르담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그런 흔적을 담은 문서는 전혀 없다) 역시 아마도 전설로, 혹은 최소한 의심스러운 사실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설 가운데서도 가장 생생한―철학자들에 대한 많은 전기의 밑바탕에 깔린, 숨은 ‘현자’의 이미지에 부합한다는 점에서―것은 속세에서 물러나 금욕적으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스피노자라는 전설이다. (p.90)

정치론의 가장 강력한 테제 중 하나는 시작 부분에서 진술된다. 경험은 끝났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국가, 그리고 대중을 통치하는 모든 수단을 경험이 이미 보여주었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종결을 어떻게 이해할까? 역사의 종말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게 볼 만도 한데, 왜냐하면 새로움에 대한 스피노자의 신중함(정치는 새롭고 위험한 수단보다는 잘 알려지고 확실한 수단에 호소해야 한다)과 어울릴 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진술된 유한성은 구축의 유한성이라기보다는 요소의 유한성이다. (p.168)

“타인을 우리 자신의 기질에 따라 살아가도록 인도하기.” 누구나 이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앞서 보았듯이, 이 원리는 유사성의 규칙에 근거하고 있다. 정념에 사로잡힌 인간은 자신의 정념을 다른 자들에게 전파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이 준칙이 적용되는 장은 정념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성은 철학자의 ‘기질’이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자가 자기 철학의 정당성을 타인에게 설득하려고 시도할 때 그도 공통의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스피노자주의는 전투적 철학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그 저자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이 철학의 논리 때문이다. (p.191)

스피노자는 이렇게 독일 사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계속해서 현전한다. 쇼펜하우어는 『지성교정론』의 처음 몇 페이지를 찬양한다. 마르크스는 1841년 『편지들』과 『신학정치론』을 메모를 해가며 읽는다. 니체는 1881년 7월 30일 오버벡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나의 선조를 발견했다네!” 그런데 1881년 8월 그는 향후 그의 사상에 혼을 불어넣을 위대한 개념들을 벼려낸다-기쁨(laetitia) 개념과 힘에의 의지 개념, 신의 사랑(amor dei)과 운명애(amor fati), 필연성과 동일자의 영원회귀 사이의 근접성을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p.217)

결국 스피노자주의를 특징짓는 데 가장 적당한 형용어는 아마도 ‘합리주의’라는 용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는 다른 철학자들에게도 적용되므로 이 말 자체를 더 분명히 해야 한다. 절대적 합리주의–게루와 마트롱에게서 빌려온 이 표현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 표현은 이성이 도처에, 단번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은 모조리 지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인간 본성을 포함한 자연을 이해하는 데 이성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p.228)

 

■ 차례

옮긴이 서문

도입

 

1장 생애

사실

출전과 자료

암스테르담에서 출생

유대인과 마라노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유산

제도와 갈등

교육, 단절, 환경

콜레히안과 소치니파

데카르트주의

신학과 정치

말년

스피노자의 문화

매혹과 전설

 

2장 저작

지성교정론

소론

원리형이상학적 사유

신학정치론

윤리학

정치론

히브리어 문법 개요

편지

위작과 사라진 저작

 

3장 주제와 문제

인물

장소

원리

논쟁점

 

4장 수용

신학정치론에 대한 비판

실체의 단일성

스피노자주의의 영향

범신론과 카발라주의

신-스피노자주의

범신론 논쟁

독일 전통

19세기 프랑스

문학적 독해

정신분석학

19세기와 20세기의 유대주의

20세기 문학

 

결론

한국어판에 부치는 저자 후기

참고문헌

 

■ 지은이 소개

피에르-프랑수아 모로(Pierre-François Moreau, 1948~)

철학사가이자 스피노자 전문가. 리옹 고등사범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Spinoza : Oeuvres(스피노자 전집) 출판의 책임자이다. 대표 저서로는 Spinoza : l'expérience et l'éternité(스피노자 : 경험과 영원성, PUF, 1994, 2009), Problèmes du spinozisme(스피노자주의의 문제들, Vrin, 2006), Hobbes : philosophie, science, religion (홉스 : 철학・과학・종교, PUF, 1989), Lucrèce : l’âme(루크레티우스 : 영혼, PUF, 2002)가 있다. 

 

■ 옮긴이 소개

김은주

서울대와 리옹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했으며, 「La causalité imaginaire chez Spinoza」(스피노자 철학에서 상상적 인과성)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경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체의 복합성과 코나투스󰡕, 󰡔푸코-데리다 광기 논쟁을 통해 본 데카르트라는 사건󰡕 등의 논문, 󰡔생각하는 나의 발견 : 방법서설󰡕, 󰡔스피노자의 귀환󰡕(공저) 등의 저서,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알렉상드르 마트롱, 공역) 등의 역서가 있다.

 

김문수

서울대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논문으로 「스피노자와 하이데거 : 정서의 기하학과 실존론적 기분 이론」, 역서로 󰡔나는 철학자다 : 부르디외의 하이데거론󰡕(피에르 부르디외)과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알렉상드르 마트롱, 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