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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의 일상/땡땡이 인터뷰

박지홍 조합원: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우정의 매개인 책을 만들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찾아온 땡땡책 조합원 인터뷰입니다. 그러고 보니 새해 첫 인터뷰네요. 새봄을 맞아(?) 봄날의책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한 박지홍 조합원을 만나고 왔습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고, 우연히도 그리 되었습니다.^^)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과는 달리,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라고 답을 주셔서 질문자가 잠시 (어떤 말로 이어 가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기도 했는데요. 짧지 않은 기간 독서회를 함께했음에도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작 조합과 관련한 이야기는 많이 나누어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했고요.


함께하자는 데에 대한 고마움, 우정, 울림, 공감……. 인터뷰를 마치고서 제 마음속에 남은 박지홍 조합원의 말들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슬몃 옆으로 밀어 두었던 말들인 듯해서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15년에는 다시금 마음속 가장 중심자리에 이 말들을 돌려놓을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 * *


 땡땡책 초동 모임 때부터 참여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땡땡책 발기인으로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계기라고 할 만한 특별한 뭔가는 없었고요. 출판사 ‘봄날의책’의 이름을 달고 나온 첫 책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의 해제를 하승우 선생님께 부탁드렸는데요, 겸사겸사 경복궁역 근처에서 한 잔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땡땡책협동조합을 궁리 중이시란 얘길 들었는데요, 함께해 보면 재밌지 않겠냐는 얘기를 슬쩍 하셨어요.


사실 처음엔 땡땡책의 대의라거나 명제에 동의해서였다기보다는, 저에게 “함께하면 어떻겠냐”고 얘기해 주신 게 반갑고 좋았어요. 당시 저는 출판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혼자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마음 설레는 동시에 두렵고 외롭고 하는 마음이 컸지 싶어요. 그래서인지 관심사나 고민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친구출판사를 운영하는 다른 분들도 아마 절박하고 불안하고, 그래서 더더욱 좋은 사람들,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물론 처음 땡땡책이 ‘유통구조의 개선’을 목표 삼고 있던 것도 있었기에,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저로서는 그 모임 안에서 저희 책이 좀더 소개되고 또 판매되는 효과도 솔직히 기대했었고요.


참, 얼마 전에 친구출판사 모임이 있었어요. 벌써 스무 곳이 넘는 출판사가 친구출판사로 들어와 있네요. 이후에 합류한 친구출판사의 경우, 뭔가 선배들이 많은 것을 해놓고 이루어놓아, 어쩌면 그 속에서 도움을 받고 싶다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을 듯한데요, 부끄럽게도 해놓은 것, 합의한 것이 그리 없어서, 어쩌면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한다는 느낌도 받고 했을 것 같아요. 각자의 고민도 많이 다르고 또 각자의 생존이 워낙 만만찮아서 그리된 면도 있고요, 친구출판사라는 조직을 적극적인 연대의 공간, 함께 뭔가를 모색하고 실천하는 공간으로 여기지 못했던(않았던) 면도 있었지 않나 싶어요.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뭔가가 분명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지 않기에, 새롭게 자신과 상대를 염두에 둔 궁리, 고민들을 한다면 작년과는 조금은 다른 친구출판사 모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스물몇 곳이 함께할 수 있는 일도 분명 있을 것이고, 또 그중 몇몇에서 좀더 준비하고 합의해서 할 만한 일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에 맞게 관계를 맺고 또 이야기를 이어간다면 재밌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다 보면 함께할 만한 뭔가가 분명 있을 거예요.


 오랜 기간 책을 만들어 오셨는데,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셨는지요?


프리랜서 경력까지 포함하여 스무 해 넘게 책을 만드는 일을 해왔는데, ‘아카이브’라는 브랜드에 있을 시절 만들었던 『사람을 보라』라는 책이 많이 생각나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 위에 오르고, 부산 영도로 가는 희망버스가 조직될 당시, 사진작가들과 부산에서 만나는 자리가 있었고, 이 상황을 알리는 책을 서둘러 만들어 보자는 데 의기투합이 되었어요. 그리고 스물세 명의 사진가와 함께 단숨에 책을 냈어요. 특히 한금선, 노순택 작가가 커다란 역할을 해주셨고요. 책에 들어갈 글과 사진을 고르고 책이 나오는 데까지 보름도 채 걸리지 않았어요. 게다가 참여한 사진가 모두가, 각각의 사진에 자신의 크레딧을 표기하는 것까지 포기하고, 모두의 작업, 모두의 소유로 돌렸고요.


“200여 일에 이르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 농성,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해고자 가족들의 신산한, 그렇지만 가열찬 삶, 거리 곳곳에서, 지역 곳곳에서 연대하는 노동자·시민들, 그리고 그 정점인 1, 2, 3차 희망버스 등, 정규방송과 언론에서는 유령 취급하는, 하지만 어쩌면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삶과 투쟁의 현장 한복판에 23명의 사진가가 뛰어들어 느끼고 공감하고 기록했다.” (책 소개글 중에서)


기존에 책을 만들고 홍보하는 방식과는 달리, 이 책은 저자, 편집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준비하고 만들고 홍보하고 판매하는 내내 함께했다고 할 수 있어요. 제도권 언론을 통한 홍보, 대형서점 위주의 판매에서 벗어나, 거리에서, 현장에서, 또 독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책을 알리고 팔고 그랬어요. 참, 책이 나오고 나서 성공회대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직접 뵙기도 했고요.


이때의 경험을 통해, 아, 책이라는 것이 독서의 대상만이 아니라, 유용한 무기도 될 수 있고, 또 우정의 매개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참, 이때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봄날의책이라는 출판사에서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라는 산문집을 준비할 때 노순택 작가에게 글에 어울릴 만한 사진을 청하기도 했고요(처음 시작하는 제 사정을 헤아려, 부담 안 되는 선에서 사진 사용료를 주시라는 고마운 얘기도 들었고요). 또 한금선 작가와는 그 인연으로 작년에 『바람에 눕다 경계에 서다 고려인』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아카이브 시절 이야기인데요, 르포작가 박수정 선생의 소개로 희정 작가를 만나 책을 냈던 것도 참 기억에 남네요.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르포집인데요, 삼성반도체 희생자들을 다룬 첫 책이기도 하고, 또 희정 작가의 첫 책이기도 하고요. 이런저런 성가신 청에 흔쾌히 재빨리 응해주어서 참 고마웠어요. 그때 희정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이 책을 많이 팔아서, 작가님이 글만 쓰고도 생활할 수 있게 해드리겠다” 큰소리친 기억도 나네요. 희정 작가, 반올림 분들이 열심히 발로 뛰어서 초판 2쇄까지는 찍었는데요, 제가 한 장담은 지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좀 이야기가 길어진 감이 있는데요, 봄날의책에서 나온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를 만들면서 맺은 인연들이 또 싹을 틔워서, 얼마 전 신해욱 시인의 산문집 『일인용 책』이 나왔고요, 또 집배원 류상진 선생님의 산문집도 조만간 나올 예정이에요. 책을 준비하고 만드는 과정도 좋았지만, 한 권의 책에서 맺어진 인연들이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확장되고 하는 경험이 참 반갑고 고마웠어요. 이때 만들어진 관계가 나를 계속 돌아보게 할 것 같았고요. 아, 이 사람들과 연을 맺고 지내는 동안에는, 절대 나쁜 짓은 못하겠구나 생각도 들었고요.


 요즘 출판 시장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어느 정도로 체감하고 계신가요? 여기에 대해서는 절망하시는 편인지, 그럼에도 희망을 품고 계시는 편인지도 궁금합니다.


공교롭게도 저희는 구간이 많지 않아서, 처음에는 도서 정가제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근데 요즘 들어서는 조금씩 영향이 느껴지기도 해요(특히 2월에요). 아마 작년 하반기에 독자들이 그동안 별러 왔던 책들을 잔뜩 구입하고 해서 책에 쓸 돈이 줄어들었다고도 볼 수 있고요, 그때 사놓은 책들을 보느라고 새 책들에 쏟을 관심과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도 있고요.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따지기는 어렵지만요. 근데, 이제 10여 권 남짓밖에 책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중 좀더 많이, 좀더 오래 나가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확연히 나뉘네요. 그러다 보니, 좀더 많이, 오래 나간 책의 사례를 보면서, 그에 근접한 내용과 형식의 책을 찾게 되는 것은 또 어쩔 수 없고요. 그렇게 시장의 영향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니, 좀 마음이 그렇기는 하지만요.


언제는 그렇지 않았나 싶지만요, 인문학 책들을 포함하여, 교양서들마저 양극화되고, 쏠림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무척 막막하네요. 뭔가, 그 다음 단계의 책, 다양한 수준, 다양한 차원이 개성 있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라고 불리는 책들과) 함께 독자의 관심을 받고 또 그이들 손에 쥐어졌으면 싶은데, 늘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마네요.


 함께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 ‘좋은 글’, ‘좋은 문장’에 민감하시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요, 언제부터 예민하게 보시기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도 듣고 싶어요.


모호한 글보다는 담백하고 정확한 문장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정확한 게 아름다움의 출발이라고 생각하고요. 좋아하는 글을 막상 꼽으려니 쉽지 않은데요, 홍명희, 이태준 작가의 글, 최근 작가로는 손홍규, 박혜영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고요.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을 통해 소개하기도 한 유소림, 최용탁, 오은, 서효인, 김소연, 신해욱 작가님의 글도 참 좋고요. 인문서 저자로는 배병삼, 박경미 선생님의 글이 마음에 다가오고요.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울림이 있는 글, 감응이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또 읽는 이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무장해제시키는, 어쩌면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되읽게 만드는 매력 있는 글이 참 좋아요. 아쉽게도 그런 글을 만날 기회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요.


 출판사 이름이 ‘봄날의책’인데, 실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봄이신지 궁금합니다.


실은 겨울을 좋아해요. (웃음) 황량한 느낌이 드는 겨울바다, 쓸쓸하고 애잔한 느낌이 절로 드는 겨울 산사, 그리고 폐사지, 이런 곳이 좋아요. 물론, 아직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요. 몇 해 전 혼자 들렀던 눈 오는 구례 화엄사도 참 좋았어요. 애잔하다는 말로는 담기 어려운 숭고함과 장엄함이 느껴졌어요. 겨울에 갔던 창령 우포늪도 참 기억에 남고요. 캄캄한 새벽에 산책 나갔는데요, 끝없는 늪을 보고 있노라니, ‘참, 이런 곳에서 죽어도 좋겠구나’, 하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요.


산문을 주로 다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판사 이름이 화사하고 따뜻한 느낌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봄날의 뜰’, ‘봄날의 정원’ 등 몇몇 후보들을 놓고 고민했는데, 내려 했던 책들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 싶어서, ‘봄날의책’이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정하게 되었죠.


‘봄날’을 제 고향(광주)에 대한 은유로 생각하시거나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아니에요. 그래서인지 친구출판사인 ‘오월의봄’과 많이들 헷갈려 하시는 것 같기도 해요. (웃음)


 현재의 일상 속에서 땡땡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땡땡책에 나오면 건강하고 좋은(그리고 젊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어요. 이렇게 사심 없이 유쾌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아마 저만이 아니라, 꽤나 많은 땡땡이들이 ‘사람이 좋아서, 관계가 좋아서’ 기꺼이 ‘땡땡 폐인’이 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게다가 개인의 삶에 갇혀 있기 쉬운 생활에 긴장을 주고, 활력을 주고 하는 대목도 참 많은 것 같아요. 어느덧 조합원 200명이 넘는 대규모(!) 조합이 되다 보니, 더 많은 삶들이 호출되고 섞이고 하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기에는 제약이 없지는 않지만요.


 땡땡책에서 함께 하고 싶은 기획/사업, 혹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오신 기획/사업이 있으신가요?


아지트도 좋고, 또는 적당한 공간을 빌려서 ‘밤샘 낭송회’ 같은 걸 해보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있어요. 지금 진행 중인 독서모임의 대부분이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한 모임들이 많은데요, 그 외연을 확장시키는 성격의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밤새 먹거리와 마실거리를 나누며 시집이나 산문집을 같이 낭독해 본다면 참 재밌을 것 같아요. 낭송회도 좋고, 책을 매개로 색다른, 자극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면 좋겠어요.


사실 친구출판사로 참여하고 있다 보니, 가장 큰 고민은 책의 홍보나 매출에 관한 부분이죠.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친구출판사들이 서로가 서로를 돕는 역할을 하는 기금을 함께 마련해 본다거나,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친구출판사나 친구출판사의 책에 펀딩을 한다거나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모두들 생존을 걱정하는 친구출판사들로선, 재정이 어느 정도 안정적이기만 하다면, 훨씬 유쾌하고 건강하게 각자 좋아하는 책들을 만들 수 있겠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도움과 지지, 또 눈에 보이는 도움과 지지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 그곳이 땡땡책협동조합이었으면 좋겠네요.


새로 들어온 친구출판사 중 한 곳에서 얼마 전 제안해 주시기도 했는데요, 친구출판사 책들을 알리고 판매하는 공간―가령 아지트를 포함하여 청주의 공룡 등등―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안정화하는 것, 또 언젠가 친구출판사책들만으로 꾸려진 서점을 함께 만들어서 운영해 볼 수도 있겠지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겠지만, 서로의 지혜와 힘을 모은다면, 당장 가능한 일도 있을 듯하고, 좀더 시간이 걸리는 일도 있을 듯하네요. 어쨌든 마음을 모으는 곳이 몇 곳이라도 있다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 책을 준비하고 만드는 과정도 좋지만, 한 권의 책에서 맺어진 인연들이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확장되고 하는 경험이

참 반갑고 고맙게 느껴진다는 박지홍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