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삼평리에 평화가 오기를
오은지 (한티재 대표)
송전탑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삼평리 할머니들의 이야기. 평생 땅을 일구며 자연과 이웃에 의지해 살아온 할머니들의 인터뷰와, 삼평리 주민들이 핵발전소와 송전탑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싸워온 과정이 실려 있다.
지금 나는 삼평리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버스는 대구남부정류장에서 출발하여 가창댐을 지나 헐티재를 넘는다. 2차선 도로 양옆으로 우거진 나무들, 댐에 가두어진 깊고 푸른 물. 구불구불 산허리를 돌아 숲길을 달리는 버스를 타고 있으면, 이 버스가 향하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믿기지 않는다. 대구에서 버스로 한 시간 십 분 거리밖에 안 되는 작은 농촌 마을이 송전탑 때문에 갈가리 찢기고 짓밟히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헐티재를 넘으면서부터 맞은편 산에 송전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 7월 21일, 한전과 경찰이 어두운 새벽을 틈타 송전탑 공사를 강행한 곳까지 버스는 달린다. 그날 이후 삼평리 할머니들은 공사를 막기 위해 매일 공사장 정문을 지키며 도로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버스가 서는 정류장 이름은 방지다. 꽃다울 방, 이슬 머금을 지, ‘방지’는 삼평리의 옛이름. 이름처럼 새벽부터 접시꽃들이 길가에 붉게 피어 아름답던 삼평리에 한 달째 공사가 강행되면서 어느새 접시꽃은 모두 지고, 산 위에는 철탑을 조립하기 위한 크레인이 세워지고 있다.
경북 청도군 삼평리에 세워지고 있는 34만 5천 볼트 송전탑들은 신고리핵발전소에서 밀양을 지나 북경남변전소를 거쳐 오는 송전선로를 위한 것이다. 핵발전으로 만들어낸 전기를 대도시로 보내려는 계획이다. 삼평리 할머니들은 그 마지막 송전탑이 서는 것을 막고 있다.
6년 동안 계속돼온 송전탑 반대 싸움과, 한 달이 되도록 뙤약볕과 폭우에도 버티고 있는 할머니들의 농성에 연대하고자 많은 이들이 삼평리를 찾아왔다. 청소년과 젊은이들, 학생과 활동가들, 평범한 시민과 성직자들까지. 그리고 그들의 발자국처럼 수많은 연대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 중 늘 내 가슴을 두드리는 현수막, "When injustice becomes law…, Resistance becomes a duty." 논두렁 앞에 걸린, 이주노동자들이 보내준 이 현수막 앞을 지날 때마다, 그 뜻을 다시 우리말로 새길 때마다 나는 부끄럽고 가슴이 뜨거워진다.
삼평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송전탑 문제를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핵발전의 위험을 알리고,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삼평리 할머니들의 싸움에 도움이 될 일들을 고민하는 가운데, 책 만드는 일을 한티재가 맡을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기쁘면서도 그런 기쁨이 부끄러웠다.
농성장에 도착하니 어제 폭우로 무너진 농성장 천막을 보수하느라 저녁밥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저녁을 나누어 먹고 나니 어둠이 내린다. 온갖 풀벌레 소리들과 개구리 울음소리. 농성장 낮은 등 아래 앉은 내 앞으로 개구리 한 마리가 팔짝, 팔짝 지나간다. 국가폭력의 한복판인 농성장에서 느끼는 연약한 평화. 책의 제목처럼 정말로 삼평리에 평화가 오기를, 공사 강행 한 달이 되어가는 오늘 삼평리에서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삼평리 할머니들에게 《삼평리에 평화를》을 읽어드리고 있는 이보나 활동가·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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