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같은 마음을 담아서
-이경민
양자오의 『자본론을 읽다』는 개인적으로도 오랫동안 기다리던 책이다. 앞선 두 권의 책 『종의 기원을 읽다』와 『꿈의 해석을 읽다』로 내게 즐거운 독서 경험을 선물한 저자의 ‘자본론 이야기’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이 책의 번역 원고를 손에 쥔 순간, 나는 더 이상 독자가 아니라 편집자라는 데 있다. 즐겁기만 할 수 없는 과정의 시작이다. 더구나 『자본론』과 마르크스에 대해 오가는 풍월을 좀 들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리 쉽게 다룰 대상은 아니다(앞의 두 권도 마찬가지지만).
물론 양자오의 설명은 쉬운 편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처럼 굳이 책을 하나하나 낱낱이 파헤쳐서 독자에게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자본론』과 마르크스를 가운데에 두고 주변과 핵심을 오가며 독자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돋운다. 왜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썼는가. 왜 지금도 『자본론』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가. 양자오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이번 책을 편집하면서 나는 이 책에서 앞의 두 권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이 책의 양자오는 열혈남아다. 글의 초반부터 그런 낌새가 보이더니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내가 후끈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소리쳐 외치는 건 아니지만 만약 연필로 썼다면 힘을 담아 꾹꾹 눌러 적느라 밑의 종이에 글씨 자국을 그대로 남겼을 것만 같은 열정이 문장의 결결이 느껴졌다. ‘노동자라는 나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나 자신의 경제학을 갖자.’ 이것이 마르크스와 마르크스를 존경해 마지않는 양자오가 한목소리로 말하는 내용이다. 이 말을 전하고자 그리고 그렇게 노동자의 편에 서서 말하고자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썼다. 세상에서 권력이 내려 주는 틀에 만족하지 말고 믿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전하고자. 양자오는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노동자가 불평등을 호소하는 이 세상에서,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자본론』과 마르크스 사상은 유효하고 유용하다고 말한다.
사실 아무리 원고를 여러 번 읽었다 하더라도 편집자가 원고의 제대로 된 이해자라고 보지는 않는다. 원고를 보면서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는 탓에 독자로서 한 번 집중해 읽는 것만 못한 점도 있다고, 언제나 자책한다. 그러니까 슬쩍 도망갈 마음으로 말해 두자면 이 앞의 말들은 저 두 사람(?)의 열혈에 감화된 편집자 아무개가 혼자 들떠서 늘어놓은 말이기 쉽다(죄송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 편집 과정에서 내 책상 한구석에는 『자본론』과 자본주의에 관련한 책이 몇 권이나 새로 얹혔다. 편집을 위해 산 게 아니다. 경제관념이 희박해서 늘 주변의 걱정과 잔소리를 안고 사는 나에게 『자본론』은 이번 생에서 절대 손댈 수 없는 책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이 원고를 작업하면서 『자본론』은 죽기 전에 반드시, 이왕이면 하루라도 빨리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들어섰다. 그리하여 원고의 용어와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독자교정을 맡긴 친구에게 입문서를 문의했고 몇 권을 추천받아 샀다. 뭐, 이렇게 밀리는 책은 산맥처럼 많지만 읽겠다. 아니 읽어야 하고 읽고 싶다.
편집하는 동안 원고의 내용에 감화되어 책을 사들이는 건 기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버려도 팔아도 책이 계속 증식하는 데는 다 그런 원인이 있는 거다. 하지만 이번처럼 흥분과 동시에 절실함이 꾹 조이는 듯한 경험은 처음인 것 같다. 좋다. 그리고 양자오의 서양현대고전 읽기가 일단 여기서 마무리된다는 점이 슬프고 동양고전 읽기가 시작되어 두근거린다. 정말이지 복잡미묘하다.
이렇게 불꽃놀이 같은 마음을 담아서 열심히 만들었다. 책을 내고 나면 노상 그렇듯, 여전히 어딘가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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