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8,500원/조합가 7,650원
처음 읽어보는
이상이 쓴 친구 김유정에 대한 소설!
다들 한 번쯤은 읽어본 작가지만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이상의 소설
우리는 이상의 소설 하면 대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날개>를 떠올린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봤을 이 작품만으로 한국 문학 최고의 모더니스트 이상을 다 읽었다고 대개는 착각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절친’을 대상으로 쓴 소설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 있는가? 이상은 무려 김기림, 박태원, 정지용, 김유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구상했다.
암만해도 성을 안 낼 뿐만 아니라 누구를 대할 때든지 늘 좋은 낯으로 해야 쓰느니 하는 타입의 우수한 견본이 김기림이라.
좋은 낯을 하기는 해도 적이 비례非禮를 했다거나 끔찍이 못난 소리를 했다거나 하면 잠자코 속으로만 꿀꺽 없이 여기고 그만두는 그러기 때문에 근시 안경을 쓴 위험인물이 박태원이다.
없이 여겨야 할 경우에 “이놈! 네까진 놈이 뭘 아느냐”라든가 성을 내면 “여! 어디 뎀벼봐라”쯤 할 줄 아는, 하되, 그저 그럴 줄 알다 뿐이지 그만큼 해두고 주저앉는 파에, 고만 이유로 코밑에 수염을 저축한 정지용이 있다.
모자를 홱 벗어 던지고 두루마기도 마고자도 민첩하게 턱 벗어 던지고 두 팔 훌떡 부르걷고 주먹으로는 적의 볼따구니를 발길로는 적의 사타구니를 격파하고도 오히려 행유여력行有餘力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그치는 희유의 투사가 있으니 김유정이다.
소설 <김유정>의 서두 부분이다. 이상은 이 작품만을 남긴 채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가 되어버리고 말아, 안타깝게도 우리는 김기림과 박태원, 정지용이란 소설은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동반자살을 도모할 정도로 절친이었던 ‘희유稀有의 투사’ 김유정만은 소설 속 인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니 이 아니 좋은가. 모쪼록 독자들도 이 즐거움을 함께 누리길 바란다. 아울러 연인 금홍과 권순영, 아내 변동림으로 이어지는 그로테스크한 로맨스와 이를 통해 전하고 있는 이상의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까지 함께 누려보길 바란다, 이 책을 통해 문득.
문득은 공명의 문학 브랜드 스피리투스가 야심차게 소개하는 문학 시리즈다. 시대를 초월해 문학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들을 다시 호출해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글文을 얻을 수 있는得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득 시리즈는 앞으로 프란츠 카프카, 에드거 앨런 포, 허먼 멜빌, 세르반테스, 김동인, 현진건, 채만식 그리고 김유정 등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지만 한 번도 읽을 수 없었던 그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새로운 장이 되고자 한다.
이상의 소설 《김유정》의 내용 및 특징
그로테스크한 로맨스에 감춘 인간의 여러 모습
이상은 흔히 실험적 구성과 파격적 문체를 통해 혼란스럽고 불안한 인간의 내면 심리를 형상화한 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일견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구성과 문체의 측면만이라면 모를까 이런 평가는 그의 소설이 가진 다양한 스펙트럼을 너무 단순화하는 평가기도 하다. 그의 시가 그렇듯 이상의 소설들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세계, 정확히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상의 소설들은 그 내용을 기준으로 볼 때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아니 평론과 소설과 수필 사이에 있는 그래서 그 장르 규정의 문제가 오랫동안 학계에서 논란이 되었던 <김유정>을 제외한다면 이 책에 실린 이상의 소설들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 틀을 기반으로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고 있는 일종의 변주곡들이라 할 수 있다. 즉 <김유정>을 제외한 이상의 소설들은 금홍, 또는 변동림과의 연애, 혹은 동거를 소재로 삼은 일종의 로맨스 소설인 것이다. 이 책의 첫 작품 <지주회시>는 물론 이어지는 작품 <봉별기>와 <날개>, <동해>와 <종생기>, <공포의 기록>과 <단발>이 모두 그렇다. <실화>와 <환시기> 또한 마찬가지인데 다만 전자는 연애의 대상이 다른 작품보다 모호하고 후자는 연애의 대상이 권순영이며 금홍과의 연애가 배경이 되고 있는 로맨스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물론 말이 로맨스지 그 내용은 모두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치정극(?)이다.
하지만 틀이 같거나 비슷하다 해서 담고 있는 세계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즉 이상의 소설들이 단지 불안한 인간의 내면 심리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들 들어 이상이 김기림에게 ‘소설을 쓰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한 뒤 대표작 <날개>와 거의 동시에 발표한 <지주회시>는 두 남녀의 가학적이자 피학적인 동거라는 연애담을 바탕으로 하되 자본주의사회에 편입한 ‘오’의 모습과 그에 편입하지 않거나 혹은 편입하지 못한 ‘그’를 통해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작가 이상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 시를 포함한 다른 여타의 작품들에 비해 직접적으로 표현된 아주 드문 작품인데, 천생 시인이었던 이상 본인은 그런 직접성이 탐탁지 않았는지 이를 거미(지주)와 돼지(시)라는 비유를 통해 우의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너무도 유명한 구절로 시작되는 <날개> 또한 ‘금홍’과의 동거생활,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동서(同棲, 다른 종류의 동물들이 한 곳에서 같이 살아감)생활’을 그린 소설이다. 우리는 대개 이 소설을 읽을 때 ‘박제’의 삶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 소설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정작 다음 구절, “나는 유쾌하오”다. 잘 알다시피 이 작품의 끝엔 정오 사이렌과 함께 찾아온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하는 나의 외침, 정확히는 나의 외치고 싶은 의지가 자리한다. 한마디로 말해 이 작품은 ‘동서생활’로부터 벗어나려는 ‘나’의 내적 몸부림을 담은 작품인 것이고, 그렇기에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인식할 때만큼은 나는 유쾌한 것이다.
한편 앞의 두 작품만큼 직접적이진 않지만 역시나 금홍과의 연애담을 그 배경에 깔고 있는 <공포의 기록> 같은 작품은 이상의 여타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나는 “단편적으로 나를 찾아오는 ‘생활 비슷한 것’도 오직 ‘고통’이란 요괴뿐”인, 그래서 “입때 자살을 안 하고 대기의 열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만신창이다. 나는 요양차 작은집에 가 있는데, 그곳에서 육체의 고통에서 비롯된 “사람을 싫어하는 버릇”이 심해져 내 육친인 작은어머니까지 미워하게 된다. 이런 정도의 전개는 이상의 다른 작품들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닭들을 관찰한 뒤 인간의 ‘번거로움’에 대해 깨닫는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이어지는 우여곡절과 그에 대한 고민 혹은 성찰 끝에 급기야 “어둠컴컴한 방 안에 표본과 같이 혼자 단좌하여 창백한 얼굴로” 후회를 기다리는 자세로까지 발전한다. 한 연구자가 ‘고통과 야유라는 분열된 내면’을 표현한 소설로 해석한 이 작품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타인과 세계, 나아가 스스로와 화해하고자 하는 의지를 ‘후회’라는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는 인물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김유정>만은 앞에서 이야기한 이상의 다른 작품들과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김유정>은 ‘교만의 예술’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상의 예술론이라 할 수 있고, ‘희유의 투사’ 김유정이 주인공인 소설이라 할 수 있으며, ‘이상이 기억하는 김유정’ 정도의 수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주인공 유정을 포함한 세 명의 술꾼들의 드잡이를 그린 관찰자의 이야기, 곧 이상이 그린 ‘삼국지’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문에서도 느껴지지만 이 작품이 김유정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김형이 그저 두 달만 약주를 끊었으면 건강해지실 텐데.”
해도 막무가내하더니 지난 칠월 달부터 마음을 돌려 정릉리 어느 절간에 숨어 정양 중이라니, 추풍이 점기漸起에 건강한 유정을 맞을 생각을 하면 나도 독자도 함께 기쁘다.
<김유정>이 그 새로움만큼이나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귀한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담겨 있다. 함께 자살을 도모할 정도로 절친이었던 소설가 김유정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이상이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함께, 그 자신의 삶(생명)에 대한 애정을 에둘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그가 죽음으로 산화된 프랑스로의 꿈 대신 이곳 조선의 소설가의 삶을 선택했다면, 그래서 기림, 태원, 지용이 주인공인 소설까지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었다면 하는 지극한 아쉬움과 안타까움만을 우리에게 전해줄 뿐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창조하라, 죽음이 곁에 있으니
이 책에 실린 이상의 소설은 <김유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연애를 바탕에 둔 기괴한 로맨스다. 이 자기복제적인, 더 극단적으로 말해 동어반복적인 작품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날이 축가는 몸”(<지주회시>) 때문에 “으슴푸레하게나마 내 수명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였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공포의 기록>), 그리하여 “하루치씩만 잔뜩”(<지주회시>) 사는 생(生)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만신창이의 나”(<공포의 기록>)로서의 이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상에겐 한편으론 스스로 칭했던 ‘천재’로서의 현재 혹은 미래와 다른 한편으로는 촉망받을 수 있었던 건축가 혹은 미술가를 이어갈 수 없게 했던 건강의 문제가 양립했다. 물론 그의 삶을 지배한 건 후자였다. 이에 더해 이상에게는 ‘오입쟁이’로서의 삶이 있었다. 그런데 이 둘은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열매였다. 즉 절망적인 건강이 그를 연애에 몰두하게 했고, 죽음을 예감하고 사는 자로서의 공포가 연애마저 이별에 대한 공포로 변화시킨 것이다. 박태원이 “당당한 오입쟁이 이상도 몸과 마음을 그대로 내어놓은 연정에는 스스로 소년과 같이 수줍고 애탔다”고 썼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그의 로맨스가 조감도鳥瞰圖가 아닌 ‘오감도烏瞰圖’처럼 쓰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 즉 이상 소설의 오감도 같은 세계는 그의 소설을 해석하는 두 번째 관점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실제의 시뮬라크르의 창조라는 모순’이다. 평론가 신형철이 말했듯 이상의 소설들은 소설을 위해 사실을 희생한다. 사실보다 허구가 더 그럴듯하다면 사실을 희생하겠다는 것이 이상의 소설관이며, 그 희생시킨 사실로서의 허구가 진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상의 소설인 것이다. 그런데 이는 소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감도’가 ‘오감도’로 잘못 인쇄되었을 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점이나 잘못 부른 이름을 자신의 필명으로 삼은 점 등을 통해 볼 때 이상은 삶과 현실이라는 실제를 마치 허구인 소설처럼 바라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임종할 때 유언까지도 거즛말을 해줄 결심입니다”<실화>와 그의 실제 유언인 “멜론이 먹고 싶소……”는 얼마나 닮아 있는가? 무엇이 소설이고 무엇이 현실인 것인가? 물론 이런 해석들에 대한 판단은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사진첩에 쓴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그것은 발명보다는 발견! 거기에도 노력은 필요하다. 李箱”이라고 쓴 이 이상의 글이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 소개
이상李箱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1910년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후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일하다 심한 각혈로 그만두고 서울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한다. 이후 제비가 망하자 인사동에서 ‘카페 쓰루’를, 이후 종로 1가에서 다방 ‘69’, ‘무기’, ‘맥’ 등을 열지만 연이어 실패한다. 그사이 동거하던 금홍마저 떠난다. 계속된 사업 실패, 실연 그리고 쇠약해지기만 하는 몸으로 인해 자살 충동에 휩싸여 김유정에게 동반 자살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그해 말 ‘창문사’에서 문예 담당으로 일하게 되는 한편, 변동림과 짧은 동거 후 결혼한다. 결혼 후 석 달 만에 김기림과 함께 프랑스로 가겠다는 꿈을 안고 돌연 일본으로 갔으나 점점 악화되는 결핵과 가족들에 대한 부채감, 그리고 생계 문제로 고통을 당하던 중 스물여덟, 짧은 생, 잔인하게 찾아온 죽음이 프랑스로의 꿈을 대신한다. 사인은 폐결핵. 사망일은 1937년 4월 17일 새벽 4시. 유언은 “멜론이 먹고 싶소······.”
‘이상’이라는 필명은 건축공사장 인부들이 해경을 김 씨가 아닌 이 씨로 잘못 알고 ‘이상李樣’이라고 부른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잘못 불린 이름이 이름이 된, 처음으로 활자화된 자신의 시인 <이상한 가역반응>처럼 ‘거울 속엔 없는 나’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이상. 이후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라는 그 자신이 소설에서 쓴 말이 ‘한국 문학 최고의 모더니스트’라는 이름과 함께 그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이상에 대한 평가
오늘에 와서 생각하면 상箱은 실로 현대라는 커다란 모험에 빠져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간 골고다의 시인이었다.
_시인 김기림, <고故 이상의 추억> 중에서
당당한 오입쟁이 이상도 몸과 마음을 그대로 내어 놓은 연정에는 스스로 소년과 같이 수줍고 애탔다.
_소설가 박태원, <이상의 비련> 중에서
어떤 이는 이상을 보들레르와 같이, 자기 분열의 향락이라든가 자기 무능의 실현이라 생각하나 그것은 표면의 이유이다. 그들도 역시 제 무력, 제 상극을 이길 어떤 길을 찾으려고 수색하고 고통한 사람들이다.
_시인 임화, <세태소설론> 중에서
나는 이상의 작품(시나 소설이나 수필을 막론하고)에 대해서 그것이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된다는 데 대해서는 언제든지 반대의 입장에 서는 사람이지만 그의 여상如上과 같은 우리의 근대 정신사적인 위치에 있어서의 그의 존재는 퍽 귀중하고 중대한 의의를 남기고 있다는 것만은 깊이 믿는 사람의 하나이다.
_문학평론가 조연현, <근대 정신의 해체-고故 이상의 문학사적 의의> 중에서
그렇지만 그가 그 어쩔 수 없이 착복한 귀기와 아울러 지니고 있었던 가장 귀중한 것은 마지막 극한점…… 아마 하늘 밑 땅 위에 생겨났던 문인들 속에서는 제일 마지막 극한점에 놓였던 그가 겪은 진통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 무렵의 우리 민족의 꼬락서니의 가장 처절한 상징으로만 보이는 그 진통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_시인 서정주, 《노자 없는 나그네 길》 중에서
이렇게 연구자의 야심을 줄기차게 불러일으키는 이상 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런 물음은, 이 땅의 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장벽이자 또한 가슴 한아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꽃다발이다.
_문학평론가 김윤식, 《이상문학전집》 중에서
상은 이 생을 긍정키 위해 시대적인 수난을 몸소 아무 소리 없이 겪은 작가다. 그의 작품은 그의 세계이며 동시에 우리의 세계다. 타인과 만나려는-그러나 언제나 실패하는 자기를 절망적인 눈초리로 바라보는 나의 얼굴은 상의 얼굴이며 우리의 얼굴이다.
_문학평론가 김현, 《김현 예술 기행/반고비 나그네 길에》 중에서
연구자들은 이상의 모더니즘을 어떻게 해석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느닷없이 찾아오는 질병과 도무지 내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연애의 관점에서 그 모더니즘을 이해한다.
_소설가 김연수, 《소설가의 일》 중에서
이상 문학은 그 자체로 20세기 한국 문학사에 내장된 최고의 형이상학적 스캔들이다.
_시인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중에서
이상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늘 이상을 미래로 열려 있는 텍스트라고 평했다. 그는 ‘예언의 작가’였고 그의 문학은 ‘선취의 문학’이었다. 새로운 방법론이 도입되고 새로운 시각이 습득되면 이상은 어김없이 다시 호출되었다.
_문학평론가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중에서
본문 미리 보기
p. 30~31 지주회시
한심한 일이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 네 생활에 내 생활을 비교하여 아니 내 생활에 네 생활을 비교하여 어떤 것이 진정 우수한 것이냐. 아니 어떤 것이 진정 열등한 것이냐. 외투를 걸치고 모자를 얹고—그리고 잊어버리지 않고 그 이십 원을 주머니에 넣고 집—방을 나섰다. 밤은 안개로 하여 흐릿하다. 공기는 제대로 썩어 들어가는지 쉬적지근하여. 또—과연 거미다. (환퇴)—그는 그의 손가락을 코밑에 가져다가 가만히 맡아보았다. 거미 내음새는—그러나 이십 원을 요모조모 주무르던 그 새금한 지폐 내음새가 참 그윽할 뿐이었다. 요 새금한 내음새—요것 때문에 세상은 가만있지 못하고 생사람을 더러 잡는다—더러가 뭐냐. 얼마나 많이 축을 내나. 가다듬을 수 없는 어지러운 심정이었다. 거미—그렇지—거미는 나밖에 없다. 보아라. 지금 이 거미의 끈적끈적한 촉수가 어디로 몰려가고 있나—쪽 소름이 끼치고 식은땀이 내솟기 시작이다.
p. 101~102 동해
“너는 네 말마따나 두 사람의 남자 혹은 사실에 있어서는 그 이상 훨씬 더 많은 남자에게 내주었든 육체를 걸머지고 그렇게도 호기 있게 또 정정당당하게 내 성문을 틈입할 수가 있는 것이 그래 철면피가 아니란 말이냐?”
“당신은 무수한 매춘부에게 당신의 그 당신 말마따나 고귀한 육체를 염가로 구경시키셨습니다. 마찬가지지요.”
“하하! 너는 이런 사회조직을 깜박 잊어버렸구나. 여기를 너는 서장西藏으로 아느냐. 그렇지 않으면 남자도 포유행위를 하든 피데칸트롭스 시대로 아느냐. 가소롭구나. 미안하오나 남자에게는 육체라는 관념이 없다. 알아듣느냐?”
“미안하오나 당신이야말로 이런 사회조직을 어째 급속도로 역행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조라는 것은 일대일의 확립에 있습니다. 약탈 결혼이 지금도 있는 줄 아십니까.”
“육체에 대한 남자의 권한에서의 질투는 무슨 걸레조각 같은 교양 나부랭이가 아니다. 본능이다. 너는 아 본능을 무시하거나 그 치기만만한 교양의 장갑으로 정리하거나 하는 재조가 통용될 줄 아느냐?”
“그럼 저도 평등하고 온순하게 당신이 정의하시는 ‘본능’에 의해서 당신의 과거를 질투하겠습니다. 자— 우리 숫자로 따져보실까요?”
p. 202~203 김유정
B 군은 위선 유정의 턱밑을 주먹으로 공격했다. 경악한 유정은 방어의 자세를 취하면서 한쪽으로 비키니까 B 군
은 이번에는 S 군을 걷어찼다. S 군은 눈이 뚱그래서 이 역 한켠으로 비키면서 이건 또 무슨 생각으로,
“너! 유정이! 뎀벼라.”
“오냐! S! 너! 나헌테 좀 맞어봐라.”
하면서 원래의 적이 다시금 달라 붙이니까 B 군은 그냥 두 사람을 얼러서 걷어차면서 주먹비를 내리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일제히 공세를 B 군에게로 모아가지고 쉽사리 B 군을 격퇴한 다음 이어 본전을 계속 중에 B 군은 이번에는 S 군의 불두덩을 걷어찼다. 노발대발한 S 군은 B 군을 향하여 맹렬한 일축을 수행하니까 이 틈을 타서 유정은 S 군에게 이 또한 그만 못지않은 일축을 결행한다. 이러면 B 군은 또 선수를 돌려 유정을 겨누어 거룩한 일축을 발사한다.
유정은 S 군을, S 군은 B 군을, B 군은 유정을, 유정은 S 군을, S 군은—
이것은 그냥 상상만으로도 족히 포복절도할 절경임에 틀림없다.
차례
지주회시鼅鼄會豕
날개
봉별기逢別記
동해童骸
공포의 기록
종생기終生記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단발斷髮
김유정
'친구출판사의 새 책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0) | 2019.10.10 |
---|---|
일러바치는 심장 (0) | 2019.07.31 |
마냥, 슬슬 (0) | 2019.07.08 |
사계 (0) | 2019.06.20 |
진매퍼/에디토리얼 (1) | 2019.01.23 |
절대돌아올 수 없는 것들/파시클 (0) | 2019.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