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되고 싶다면 한 순간만이라도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이제 선택은 둘 중 하나뿐이다.
“나를 사랑하거나” 아니면 “더 사랑하거나.”
말장난 같다고? 아니, 저자 이유미에겐 이것은 절박하고도 소중한 결단이며, 일종의 선언이었다.
그녀 나이 스물여덟에 핑크빛 꿈을 꾸었던 사람과 맥없이 파혼을 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부모님을, 애인을, 세상을 원망했다. 열아홉 살 때부터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오면서 그저 “우리 딸 고맙다!” 이 한 마디면 괜찮아질 줄 알고 온 몸을, 온 시간을 바쳐 살았지만, 결국 돌아온 건 ‘나 없는 삶’!
돌아보면 그녀는 누군가의 인정과 사랑에 늘 목말랐고, 그것이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삶의 주도권을 저들에게 넘겼으니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이 모든 것 역시 ‘그들 탓’이었다. 성격이 소심한 것도, 남들 눈치를 보는 것도, 가난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 것도 모두 엄마 탓, 매일 무기력하고,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건 모두 회사 탓!
그러다 파혼과 동시에 감정적 바닥을 치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래, 모두 내 선택이었어!”
이 책은, 내 삶의 주인공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고, 나를 지켜내기 시작하면서 겪은 지난 10년간의 기록이다. 나름대로 실험하며 찾아낸 ‘자기 사랑법’을, 직접 그린 그림들과 함께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따뜻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기 사랑’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정말 자기를 사랑한다는 건 뭘까?
그녀의 경우는,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른바 ‘좋은 사람’ 되기를 포기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가족에게 헌신하는 장녀의 역할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장녀 독립 만세”를 외치는 순간, 그 어떤 비난도 감수할 각오를 해야만 했고, 한동안 엄마와의 갈등도 겪어야 했다.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미대 졸업장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편견을 깨고, 상고를 졸업하고 경리로 일하던 시절의 자신을 건져 올려, 드디어 하고 싶던 그림 공부를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며 먹고살 수 있는 회사에 취직했지만, 공장처럼 콘텐츠를 찍어내는 그곳에서 더 이상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그녀는 스스로 회사를 그만둔 뒤 두렵지만 프리랜서의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다. 세상의 시계가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나침반과 시계로 삼아 일하고 쉰다. 자신도 모르게 불나방이 되어 일을 향해 달려들 때면 잠시 멈춰서 이렇게 질문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일이 먼저야, 내가 먼저야?” 대답은 언제나 “내가 먼저”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먼저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고 나서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고, 이런 식으로 자신과의 대화를 매일 매일 해나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들여다본 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 지었고, ‘나 사용법’을 만들어 일러스트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클라이언트들에게 알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주말에는 일하지 않아요. 평일에는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일해요. 질문은 온라인 카페를 이용해 주세요. 답변하는 데 며칠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전화와 문자 연락은 원활하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이러다 일이 끊기진 않을까 두렵기도 했고 유난스럽고 건방지다고 여기진 않을까 염려도 되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꾸준하게 하기 위한 나름의 간절한 노력이었고, 그 결과는 예상 외로 프리랜서 8년차가 된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잘 유지되고 있다. 아무 때나 허락했던 시간이 내 것이었음을 인식한 뒤로는 몸을 보호하고 보살피듯 내 시간의 주인으로 살아가려 하고 있다.
또,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룬다거나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슬픈 감정이 지속될 때면 마음에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알고 나만의 사적인 공휴일인 ‘마음 챙기는 날’을 만들어 보살핀다. 들고 다니는 수첩엔 ‘나를 위한 To do list’를 생각날 때마다 적어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해주듯 내가 ‘나’에게 해준다. 그렇게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 스스로를 보살피면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늘자 서서히 자기 삶의 진짜 주인공이 되어갔다.
이제는 안다. 자신을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것도 ‘선택’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놀랍게도 선택의 순간은 매일, 매 시간 찾아온다는 것도.
돌아보면 왜 그렇게 자신에게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했을까? 사소한 일에도 자신을 비난하는 것 역시 습관이고 선택이었다.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멈추기로 작정한 어느 날부터, 저자는 비난보다 더 집요하게 물음표를 달기 시작했다.
“저 사람하고 부딪힌 게 날 탓할 일이야?” “정말 내가 게으름을 피웠다고 생각하는 거야?”
물음표는 비난 대신 상황을 새롭게 보게 했으며, 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비난을 멈추고, ‘나’를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순간, 수많은 가능성이 열리는 것을 그녀는 참 많이 경험했다. ‘할 수 없는 일’이 ‘해볼 만한 일’이 되었고, 오래된 상처가 치유되었으며, 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구걸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녀에겐 언제나, 어떤 순간에도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내’가 있었으니까.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미워하는,
너무 애틋해서 모질게 대하는 당신을 위한 책
이런 그녀의 실험과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한 이 ‘자기 사랑 실험 에세이’를 그녀가 용기 내어 공개하는 까닭은, 과거의 그녀처럼 자기를 탓하고, 미워하고, 억누르는 데 익숙한 당신이라면, 그 마음의 뒷면을 살짝 들어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서이다. 그 마음 뒤집어보면 자기를 너무 사랑해서, 잘되기를 바라서, 내가 너무 애틋해서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테니까. 우리 안에는 이미 자기에 대한 사랑이, 적어도 아직 틔우지 못한 씨앗의 형태로라도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왜 스스로를 미워하는지 이유나 알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대면하기 시작한 자신을 더없이 사랑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나 하나만 품을 정도의 사랑이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더 큰 사랑의 원을 그려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가족이, 그 다음에는 친구가, 더 나아가 비슷한 고민과 아픔을 지닌 사람들을 향해 마음이 열렸다.
지난 10년간의 다양한 자기 사랑 실험과 변화를 담은 이 글과 그림이, 그래서 몸은 어른이지만 아직 마음의 탯줄을 끊지 못한 20~30대들에게 자기 사랑에 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용기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 저자 소개
지은이 ․ 이유미
‘달콤 아티스트 유유’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일상을 기록하면서 SNS로 소통하는 에세이 작가이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일러스트 수업 ‘달콤 페인터’를 운영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꿈을 돕고 있으며, SNS를 통해 자기 사랑에 관한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맨몸으로 부딪히고 아프게 배우며 익힌 경험들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고,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은 자발적 워커홀릭이다.
돌아보면,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실생활은 직장에서는 상사와 트러블이 있었고, 엄마와는 갈등의 골이 깊게 패었으며, 결혼까지 약속했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나’는 없는 삶이었다. 치유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자기 사랑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 후 나를 아프게 한 건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임을, 늘 ‘을’의 입장을 취하며 살아온 것 역시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나의 선택이었음을 아프게 인정하고 나서야 피해자 역할에서 스스로 걸어나올 수 있었다.
매일매일 나와의 대화 시간을 가지면서 ‘어떤 순간에도 내 편이 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었고, 그 뒤로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늦깎이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회사에 사표를 내고 평생 꿈이었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자기 사랑을 통한 내면의 성장을 담은 책 《소심토끼 유유의 내면노트》를 출간하는 등 원하던 삶을 펼쳐가기 시작했다. 생생한 경험과 구체적인 사례를 토대로 자기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다.
Instagram: @dalkomartist
Portfolio: dalkomartist.com
blog: www.eyumi.net
▶ 차례
프롤로그: 우리는 이미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1_ 홀로 서기의 기술: 진짜 독립이 필요한 어른을 위하여
도대체 누구를 위해 살았던 걸까?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나에게 집중했다
한 순간이라도 나를 위해 살아
탓할 사람은 많지만 책임질 사람은 나 혼자야
2_ 셀프 독립의 기술: 가족을 떠나야 진짜 어른이 된다
희생은 사랑의 유사어가 아니야
나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잖아
장녀는 왜 집안일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스스로 마음의 탯줄을 끊었다
저는 자판기가 아니에요
아픈 엄마는 낯설고 어렵다
3_ 자기 사랑의 기술: 혼자가 되면 비로소 알게 되는 사랑
난생처음 스스로를 안아주었다
할머니를 닮은 소파
사랑이 필요한 아이가 있었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 문제될 게 뭐 있겠어?
무서워, 무서워요
그 놈의 비교, 비교, 비교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멈추기로 했다
파혼하고 6개월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매일 먹는 밥처럼, 꼬박꼬박 사랑하기
나를 사랑하는 게 이기적인가요?
하얗고 보드라운 비누 하나면 충분해
4_ 자급자족의 기술: 나 하나로 충분한 자급자족 라이프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절대로 굶기진 않을게!
내가 누군지 알아야만, 나답게 살 수 있다
세상의 잣대를 내려놓고 바라보면 모든 것이 특별했다
일이 먼저야? 내가 먼저야?
자신의 동의를 구하는 게 일의 순서다
끈질기게 ‘나’에게 집중할 것
5_ 거리두기의 기술: 조금 까칠하게 나에게 집중하는 법
자신을 지키는 섬처럼 사는 지혜
만남을 거절합니다
아무 때나 허락했던 시간이 내 것이었어
전전긍긍하면서 그것이 사랑인 줄 착각한다
내가 좋으니까 너도 좋을 거라는 싸구려 윈윈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인맥이 넓으면 행복해지나요?
불쾌함은 교묘하게 찾아온다
그거야말로 예의를 상실한 거지
나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줄게요
중요한 건 진심으로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
6_ 마음 돌봄의 기술: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물들인다
얼룩진 마음은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한다
내 안에 어린 아이가 살고 있어
아주 사적인 공휴일
그럴 땐 차라리 기도를 해
마음에 사랑이 차며 넘친다. 내 마음도 그랬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나의 방
한 번의 선택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한 발, 한 발 나아갈 뿐이다
▶ 본문 맛보기
▶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살았던 걸까?” 절망에 휩쓸려 내려갈 때 착한 딸이라든가 성실한 직장인, 사랑스러운 연인이라는 수식어는 허울 좋은 지푸라기일 뿐이었다. 남들한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야. 나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23p
▶ 씨앗은 자신으로 살기 위해 땅에 뿌리를 내린다. 길에 심은 나무는 높게 가지를 뻗고, 새는 하늘을 난다. 두더지는 두더지답게 살기 위해 땅을 파고, 나비는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를 뚫고 나온다. 모두 자신을 위해 살지만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되고 싶다면 한 순간만이라도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씨앗과 나무, 새와 나비, 두더지처럼 그렇게…… ―30p
▶ 나는 ‘너 때문이야 교敎’의 열렬한 신도였다. 성격이 소심해진 것도, 남들 앞에 서면 눈치를 보는 것도, 가난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 것도 모두 엄마 탓이었다. 매일 무기력하고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건 회사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 생각들이 얼마간 위로가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탓할 사람은 많지만 책임질 사람은 나 혼자. 계속 원망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갈수록 무력한 피해자를 자처할 뿐이었다.(……) “그래, 모두 내 선택이었어!” 남 탓만 하느라고 잃어버린 힘을 되찾기 위해서 나는 단호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리고 솔직한 고백이 이어졌다. “더 일찍 집을 나올 수 있었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었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선택은 내가 한 거야. 아무도 나에게 불행을 강요하지 않았어.” 쓰디쓴 현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피해자 역할에서 스스로 걸어나올 수 있었다. ―33p
▶ 나는 믿는다.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때로는 생의 무게에 압도당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나약함의 반증은 아니다. 위태롭게 흔들려도 언제나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또 다른 나. 그 존재야말로 평생을 함께할 든든한 내 편이 아닐까? ―37p
▶ 부모님은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대리 기사가 아니다. 두려움과 고민을 치워주는 청소부는 더더욱 아니다. 진짜 책임져야 할 것은 부모님의 기분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다. 인생의 무게, 마주하기 힘든 두려움, 쓰디쓴 후회까지 결국 자신의 몫이다. 책임지면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책임지지 않으면 자유도 없다. ―47p
▶ ‘태어날 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탯줄을 잘랐지. 이번에는 내 손으로 잘라낼 거야. 더는 사랑을 구걸하며 살지 않겠어.’ 그렇게 선언하는 순간 마음의 탯줄이 떨어져나갔다. 단지 마음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몸이 떨리고, 걸음이 휘청거렸다. (……) 유미야, 유미야, 유미야. 소리 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마음의 좁은 길을 따라 길 잃은 아이가 걸어왔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아이를 품에 안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내가 부모가 되어줄게. 이제부터 내가 너의 엄마고 아빠야.” 아빠가 떠나고, 엄마가 날 밀어내도 나에게는 내가 있구나.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안도했다. 집을 나오는 게 독립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독립은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54p
▶ 똑같은 크기의 상자는 서로를 품을 수 없다. 큰 상자라야 작은 상자를 담을 수 있듯이 자신을 끌어안는 순간마다 나는 더 큰 존재가 되었다.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코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보다 큰 존재가 되어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바꿀 것도 미워할 것도 없구나.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93p
▶ 다행스럽게도 기회는 매 순간 찾아왔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계속해서 부족한 사람을 자처할 수도 있었고, 자신을 품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존재가 되기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 부족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사랑’과 ‘이해’라는 새로운 선택을 하고 싶었다. ―93p
▶ 나는 빈 노트 한 권을 펼치고 첫 줄에 이렇게 적었다. “좋아, 다 얘기해 봐. 도망치지 않을게. 더 이상 모른 척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마음 깊은 곳, 찢기고 헤진 그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내려갔다. (……)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워……” 마음 깊숙이 숨겨왔던 두려움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또 다른 손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너를 미워한데도 나는 너를 사랑할 거야. 끝까지.” 이날이 처음이었다. 진심이 담긴 사랑의 말을 나 자신에게 건넨 것이. ―102p
▶ 나는 누구나 자신에게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끝까지 내 편이 되겠다는 약속, 이것 하나면 충분하다. ―127p
▶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면 기다려주는 고마운 사람도 많았다. 뭐야, 서두를 필요가 없었네. 의외였지만 정말 그랬다. 혹시 기회를 놓치면 어쩌지? 다른 사람한테 뺏기면 안 되는데. 나쁜 인상을 남기고 싶진 않아. 이런저런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재촉한 것일 뿐.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배려해 주기로 마음먹은 후로 촌각을 다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배려해 준 뒤에 겪게 된 가장 아름다운 경험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앎 속에 머무는 것이었다. 좋아, 오늘 이만치 일을 했구나. 가뿐한 마음으로 잠드는 밤과 내일 할 일이 기대돼서 눈 떠지는 아침이 찾아왔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 평범한 만족이 내게는 커다란 선물이었다. ―144p
▶ 다음에는 용기를 내서 휴대폰 전원을 아예 꺼버렸다. 정말이지 휴대폰을 끄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며칠이 지나자 갑갑한 목줄이 풀린 것처럼 홀가분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삶이야!” 나는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이 기억났다. 아무 때나 사람들에게 허락했던 시간이 실은 ‘내 것’이었다는 사실! 어떻게 이걸 잊고 살았는지 충격에 빠질 만큼 놀라웠다. ―163p
▶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됐지만, 새로운 규칙을 추가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유난스러워 보이려나? 건방지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을 사용하는 방법을 내건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됐을까? 아니다. 뜻밖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프리랜서 8년차가 된 지금까지 규칙을 유지하고 있다. ―190p
▶ 내 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는 쉽게 겁을 먹고, 눈치를 보고, 중요한 순간이면 수없이 망설인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정말 괜찮다. 그런 순간이 오면 어떤 모습이든 끌어안을 수 있는 어른인 내가 어린 나에게로 뚜벅뚜벅 나아가면 되니까. ―208p
▶ ‘마음 챙기는 날’에는 일을 잠시 쉰다. 바쁠 때는 하루 중 서너 시간 정도라도 할애한다. 보통은 꼬박 하루를 보내고, 길면 일주일이 걸리기도 한다. 먼저 깨끗이 씻고, 주변을 정돈하고, 잘 먹는다. 몸이 편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말은 언제나 옳으니까. 그리고 마음을 관찰한다. 이 과정은 보통 애정 어린 질문으로 이뤄진다. “뭐가 힘들어?” “가장 큰 고민이 뭐야?” “왜 슬플까?” “혹시 뭐가 두려운 거야?” 말 못할 근심과 두려움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다정하게 묻고 또 살핀다. ―211p
▶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일깨운다. 이 사실을 얽히고 얽혀 있던 엄마와의 관계를 풀면서 깨달았다. 오롯이 나를 위해 시작한 사랑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주변을 돌아보게 했으며,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주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늘빛이 바다를 물들이듯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물들이기 때문이리라. ―221p
▶ 처음에는 나 하나만 품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랑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수록 마음이 점점 커다란 원을 그렸다. 처음에는 가족이, 그 다음에는 친구가, 더 나아가 비슷한 고민과 아픔을 지닌 사람들을 향해 마음이 열렸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게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신을 넘어서 주변까지 물들인 것이다. ― 2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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