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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출판사의 새 책/기타

넌, 생생한 거짓말이야

정가 12,000원

 

낯선 고통과 마주하기

“바깥으로 표현하지 않는 고통은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나는 글을 썼다.”

“심호흡을 하고, 눈을 똑바로 뜨려고 하며, 뒷골에 들어 간 힘을 풀어 본다.

지금의 글쓰기는 내 몸에 찾아온 공황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두서도 없고, 오로지 그냥 쓴다. 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류의 고통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게다가 그 고통이란 것이 실체가 없다. 아무리 애써 원인을 밝히려 해도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숨 막히는 고통은 어디서 오는 걸까? 무엇일까? 공황장애를 겪은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놈이 왔다!’고, 그놈 때문이라고.

“공황장애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환자들은 심한 불안, 가슴 뜀, 호흡 곤란, 흉통이나 가슴 답답함, 어지러움, 파멸감, 죽음의 공포 등을 경험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1-3퍼센트가 공황장애를 경험한다니 남의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 책은 그림을 전공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영화를 찍는 한 예술가 청년이 ‘공황장애’라는 예측불허, 통제불능의 사건을 지나온 과정의 기록이다. 저자 오재형은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이 공황장애란 놈 앞에서, 그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압박 앞에서 “몸부림을 쳤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정신과를 방문하고 한의원을 찾았다. 무속인도 만나고 북한산 꼭대기에 올라 산신령에게 절도 했다. 공황장애에 걸린 친구와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 종주를 했다. 예술가로서의 직업을 치유의 방편으로 삼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공황장애에 대한 단편영화도 만들었다. 치유를 위한 그 고군분투의 과정을 그림과 글로 표현해 이 책에 담았다. 재기 충만한 저자의 스토리텔링에서, 공황장애의 공포에 짓눌려 있는 이들은 물론 일상의 까닭모를 불안과 압박에 시달리는 이들 모두 따듯한 공감과 일말의 희망을 찾아보면 어떨지.

 

공황장애, 넌 아무것도 아니야!

공황장애는 그렇게 왔다가 갔다. 그러나 완전히 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내 상태가 아무리 호전되었다고 해도 공황장애가 뭔지도 몰랐던 예전의 나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쓴다. 그렇다. 이 책은 언뜻 억척스런 의지와 젊음의 패기로 공황장애라는 질병을 물리친 이야기 같지만, 실상 공황장애라는 질병은 한번 찾았던 이를 완전히 떠나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마지막 공황장애 증세가 나타난 지 3년이 지났지만 저자는 아직도 뻥 뚫린 도로를 운전할 때, 밀폐된 공간에서 영화나 연극을 볼 때, 커피를 마시고 난 후 종종 위기가 찾아온다고 고백한다. 분명 출구에 서 있지만 퇴장하지는 못하는 공간, 그곳이 자신이 살아야 할 곳인지도 모르겠다고.

공황장애와 함께한 날들의 기록을 돌아보며 질병으로서의 공황장애를 증오의 대상에서 존중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완치의 마지막 단계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공황장애의 모습으로 찾아왔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괴롭히며 압박하는 존재,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어려움들에 대해 이 책의 저자 오재형 식의 반응도 꽤 그럴듯한 대응방식이라는 생각이다.

 

본문 속으로

톨게이트를 지나자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떠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아도 마찬가지였다. 숨 쉬는 게 어려워질수록 연거푸 더 깊은 숨을 들여 마셨다. 곧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강력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날 덮쳐왔다. 그 순간이었다. 내 몸으로 뭔가가 통째로 들어왔다.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발작이 일어났다. _본문 17-18쪽

앞으로가 중요하다. 원인이 무엇이든 이제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순 없다. 대책위가 있어야 한다. 나는 블로그에 ‘공황장애’ 카테고리를 전체 공개로 개설했다. 이제부터 모든 증상을 기록할 것이다. 기록은 내 전문이다. 지난 10년간 내 모든 생각과 작업을 블로그에 기록해 오지 않았던가. 공황장애라고 예외가 될 순 없다. 나는 공황장애를 정면으로 마주할 것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극복할 것이다.  단순한 기록으로만 그치지도 않을 것이다. 공황장애는 내 그림과 글쓰기 작업의 일부가 될 것이다. 작가가 공황장애를 맞이하는 방식을 보여 주겠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_본문 26-27쪽

불을 끄고 누웠다. 제대로 잘 수나 있을까. 어쨌든 눈을 감았다. 깜깜한 세상이 보였다. 그 검은 세계에서 문득 덩어리진 검은 형체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 형체들은 내가 잠시 접어 두었던 그 질문, 그 문장의 형태를 띠고 점점 클로즈업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_본문 32쪽

증상이 찾아올 때마다 되뇐다. 너는 거짓말이다. 너는 거짓말이다. 너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존재하지만 결국 너는 거짓말이다, 라고. _본문 35쪽

공황장애의 괴로움은 이런 식이다. 일생 동안 한 번 도 해 보지 않았던 생각에 의해 일생 동안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았던 고통이 수반되는 것. 여기에는 어떤 논리도 이성도 의지도 작용하지 않는다. _본문 59쪽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삶이 휘청거릴 만한 사건이 찾아오면 그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뭐라도 바꿔야 한다. 시도해야 한다. 아니면 자전거 여행을 떠나 항문이라도 조져 봐야 한다. _본문 81쪽

내 상태가 아무리 호전되었다고 해도 공황장애가 뭔지도 몰랐던 예전의 나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트루먼처럼 이 세계를 벗어 던지지 못 한 채 출구의 문턱에서 발을 기웃거리는 상태로 어정쩡하게 서 있다. 분명 출구에 서 있지만 퇴장하지는 못하는 공간, 여기가 내가 살아야 할 곳인지도 모른다. _본문 123-124쪽

 

 

차례

프롤로그 10 │ 그놈이 왔다 14 │ 원인 없는 세계에서 23 │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28 │ 내가 주인공인 페이크 다큐멘터리 33 │ 거리 두기 전략 39 │ 선생님, 저는 질병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42 │ 공황 상태 생중계 48 │ 공감의 조건 54 │ 문 밖의 손님 58 │ 무속인의 제안 62 │ 산신령께 보내는 편지 67 │ 고통의 초상화 73 │ 공황 퇴치 자전거 여행 77 │ 영화 〈덩어리〉를 만들며 82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통 89 │ 제1회 공황장애 페스티벌 94 │ 변기에서 온 그녀 100 │ 영화 〈곡성〉 113 │ 더 나아간 상상 116 │ 출구에 서서 121

 

오재형

1985년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 살고 있다. 이번 생은 운이 좋아서 대체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사는 예술 잡상인이다. 스무 살에는 미대에 진학해서 피아노만 쳤다. 한국화 전공을 선택하고는 주구장창 유화를 그렸다. 화가로서 은퇴를 선언하고 매년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서른다섯인 현재 새로운 꿈이 생겼다. 매일 피아노를 연습하며 공연가로서의 정체성을 몸 안에 새기는 중이다. 건강한 정신과 신체는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열심히 작업하며 살고 있다.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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