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잠 좀 자게 해달라는 게 맞을 일이야?"
『우리, 노동자로 살아가다』(땡땡책협동조합 엮음, 땡땡책, 2014)
-양선화
“밤에 잠 좀 자게 해달라는 게 맞을 일이야?”
지난 3월 유성 희망버스에 현수막 연대를 할 때, 땡땡책협동조합에서 내놓은 문구다.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처럼, 검은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디자인했다. 누군가는 장난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바로 이런 마음에서 이 책 <우리, 노동자로 살아가다: 노조파괴에 맞선 충북 노동자들>이 출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간노동을 없애기 위한 주간 연속 2교대제 요구와 합의. 사측이 그것을 무시하고 노조파괴에 돌입하면서부터 악몽은 시작됐다. 노동자들도 사람인 이상, 밤에는 잠을 자야만 했다. 너무 당연해서 입에 담기도 왠지 낯부끄러운 이 절박한 요구, 거대 자본과 몸을 섞고 그것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폭력. 그것들에 대해 밝히고자 이 책은 나왔다. 밤에 자고 싶은 노동자들. 한편으로, 어둡고 탁한 권력의 세계를 기어코 맑은 눈으로 응시해야 하는 사람들. 표지에서 나를 건너다보고 있는, 그들의 상징 올빼미 그림(이윤엽 작)이 슬프고, 한편으로 늠름하다.
책은 지난 3년간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일, 노조파괴에 최적화된 살상무기 ‘창조컨설팅’ 같은 조직들에 대한 뒷조사, 유성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 들을 담아냈다. 일터에서 벌어진 일뿐만 아니라, 유성 투쟁의 불씨가 되었던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 노조 투쟁과 지역사회 간의 연대 문제 등도 함께 다뤄서 총체적으로 접근했다.
‘[인터뷰] 우리는 왜 포기하지 않는가 : 유성지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울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건 내가 울보여서기도 하지만,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의 연대글 첫머리에서 보듯, 그들이 기본적으로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많이 두드려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5.18 직장폐쇄 사건’이 있었다. 5.18에서부터 심장이 덜컹하는데, 이때 벌어진 사건은 정말이지 맨 정신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주간연속 2교대제를 임단협을 통해 합의했으나 사측이 실행하지 않았고 그에 항의해 부분파업에 돌입하자, 사측은 직장을 폐쇄하고 용역을 배치했다. 그리고 2011년 5월 18일 밤, 용역이 대포차량을 타고 인도로 돌진해서 유성 노동자들 13명을 치고 뺑소니쳤다. 노동자들의 경추가 부러지고, 어깨가 탈골되고, 얼굴뼈가 골절되었다. 닷새 뒤 경찰 4천여 명이 쳐들어왔고, 노동자 530여 명이 끌려갔다. 용역들은 노동자들에게 쇠파이프와 곤봉을 휘둘렀다. 때려 죽이려고 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유성 노동자들은 아직도 꿈을 꾼다. “용역이 내가 카메라를 찍으니까 나한테 돌을 던졌는데 내가 피했단 말이죠. 근데 뒤에 있던 조합원이 맞아가지고 광대뼈가 나갔었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고, 꿈도 많이 꾸고. 아직까지도 귀에서 이렇게 울리거든.”(김풍년 조합원) 이쯤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는 질문.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냐는 것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노동자들이 밤에 잠을 자기 위해서였다. 노동자들은 그것을 요구했고, 그 대가로 두드려맞았다. 핍박받았다거나 탄압받았다는 관념적인 표현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저 두드려맞았고, 맞고 있고, 꿈에서도 맞는 것. 또는 나 대신 동료가 맞았다고 괴로워해야 하는 것. 이것이 유성 노동자들이 지난 3년간 겪어야 했던 일이다.
맞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이 책이 그에 대한 소박한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내가 보기에도 땡땡책협동조합의 운영원리는 좀 특이해서, 조합원들이 뭘 하자고 하면 그냥 하는 편(?)이다. 이 소책자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을 비롯한 충북 조합원들이 만들겠다고 나섰다. 좋다고 했더니, 정말 만들어냈다. 다들 자기 재능과 시간을 조금씩 모아서 엮어냈다. 그랬더니 책이, 되었다. 책에서도 주요하게 다루고 있듯이, 지역 연대가 중요하다. 충북 조합원들이 가까운 지역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책을 만들어 알렸기 때문에, 충북과 아무 연고가 없던 나도 이제 유성 노동자들의 아픔을 공유하게 되었다. 얼마 전의 나와 마찬가지로 유성 노조 투쟁이 아예 낯설게 들릴 사람들에게 부담 없이 작은 책(그렇지만 내용은 옹골찬)을 건네줄 수도 있게 되었다. 다행이고, 다행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는 가운데 올빼미처럼 꿋꿋한 유성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그들만큼이나 명징한 눈과 정신으로 지지하고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합원 연재마당 > 땡땡 서평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모임-3월의 주제 '한국소설'] 공선옥, 《꽃 같은 시절》 (0) | 2015.04.12 |
---|---|
[서평모임-3월의 주제 '한국소설'] 황정은, 《파씨의 입문》 (0) | 2015.04.12 |
[서평모임-3월의 주제 '한국소설'] 김애란, 《침이 고인다》 (0) | 2015.04.12 |
<국가 없는 사회> 서평 by 유해정 (0) | 2014.11.13 |
일베의 사상(오월의봄, 2013) (0) | 2014.10.09 |
밀양을 살다(오월의봄, 2014) (0) | 2014.10.09 |
삼평리에 평화를(한티재, 2014) (0) | 2014.09.21 |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포도밭, 2014) (0) | 2014.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