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에 하나쯤 품은,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미선
이렇게 힘든 날이 다시 또 올까 싶었던 사회초년생 시절, 1.5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이 책을 만났다. 그즈음 텔레비전을 켜면(물론 고시원 방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미생」도 아닌 냉혹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었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혹독한 독설을 듣고 견뎌내야 함을 강요당하는, 그래야 ‘발전 가능성이 있고, 성격 됨됨이가 좋은’ 참가자로 그려지는 장면들을 보며 그게 마치 나 자신인 것 같아 많이도 울었다. 다 어른이 된 것 마냥 큰 가방 하나에 짐을 싸 호기롭게 집을 나섰던 나는 생전 처음 느끼는 아픔의 원인을 누구에게 묻지도, 탓하지도 못한 채 그저 시간을 견뎌야 했다.
열차는 눈먼 물고기처럼 인천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노선도를 올려다보며 역사(驛舍)의 수를 꼽아보았다.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50여 개의 역이 있고, 영등포와 신길, 종로를 지나면 서울 북쪽 어딘가에 내 방이 있다. …… 내가 모르는 도시의 별자리. 서울의 손금. 서울에 온 지 7년이 다 돼가는데, 그중에는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많다. 땅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안내 방송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구파발에도, 수색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은 서울의 크기가 컸던 탓이 아니라, 내 삶의 크기가 작았던 탓이리라. 하지만 모든 별자리에 깃들 이야기처럼, 그 이름처럼, 내 좁은 동선 안에도―나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김애란, 「자오선을 지나갈 때」, 『침이 고인다』)
‘내 이야기’를 찾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푸념’이 아닌, 그 자체로 존중받고, 이해되고, 공감받을 수 있는 ‘이야기’의 지위로서 말이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10시간 넘게 일터에서 (일보다는 눈치를 보며) 보내고 돌아오는 시각쯤엔 친구나 가족에게도 전화할 수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웬만한 가게는 다 문을 닫았을 시각, 나는 ‘나를 위해’ 가끔 치킨이나 맥주를 사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고시원 침대에 누워 시체처럼 잠만 자며 치킨과 맥주로 연명하던 그때, 이 책을 만났다.
흔해 빠진, 지리멸렬한 일상
김애란의 단편소설집 『침이 고인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겉으로 보기엔 그저 흔해 빠진 일상이다. 변변치 않은 직장을 견디고(「침이 고인다」), 입시나 취직을 위해 고시원을 전전하고(「자오선을 지나갈 때」, 「기도」), 가난을 견딘다(「도도한 생활」, 「성탄특선」). 덤덤히. 그렇지만 소란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IMF 위기라는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하고, ‘잠시 지나가는 곳’인 줄로만 알았던 노량진 학원가를 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시 오게 된,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그렇지만 저마다의 역사와 만나는 순간, 저마다의 이야기로 피어난다. “언니는 만두를 삼킬 때마다 엄마를 삼키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문득, 스무 해를 넘긴 언니와 나의 육체는 엄마가 팔아온 수천 개의 만두로 빚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도도한 생활」),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칼자국」). 내가 이런 문장들을 사랑했던 이유는, 나도 ‘나를 살리려는 어떤 힘’에 의해 길러진 존재라는 걸 환기시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뜻 모를 힘에 이끌려 고시원 방 한 칸으로 흘러들어온 것 같은 나에게도, ‘역사’가 있다.
관계 맺기는 여전히 희망인가
1분이라도 먼저 잠들고, 1분이라도 늦게 눈 뜨길 바라던 때, 벽이라기보다는 판자에 가까운 벽 너머로 들려오는 타인의 소리는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아침의 헤어드라이기 소리, 야심한 시각의 감자칩 먹는 소리만으로도 ‘살의’를 느낄 정도로 나는 곤두서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날은 그런 소리라도 있어야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날도 있었다. 나 혼자 이 시간을 견디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아니면 소란스러움이 주는 단순한 안도감.
노량진 학원가에서의 끝이 정해진 데이트(「자오선을 지나갈 때」), 성탄 전야에 모텔방을 찾지 못하고 토라져 돌아온 여동생과 함께 맞는 성탄의 안도감(「성탄 특선」), 원룸에 잠시 들였던 후배를 내보내고 나서 느껴지는 공허(「침이 고인다」)…….
지금의 ‘관계’라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성가시다가도, 내치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든다. 타인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도 버린 지 오래, 서로의 세계를 섞는 데에 대한 부담이 만연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관계 맺기는 희망일까.
‘관계’에 대해 회의가 들 때나 고민이 될 때, 「침이 고인다」의 한 장면(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남기고 간 마지막 껌을 찢어서 건네주는 장면)을 곱씹는다. 나는 내 세계를 반으로 찢어 줄 용기도, 그리고 그걸 받을 용기도 있는 걸까?
껌을 집어 들더니, 망설일 것 없이 반으로 북― 쪼개는 것이었다. 언니에게 주려고요.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수류탄을 든 채 자살 기도하는 탈영병을 달래듯 간절하게 외쳤다. 그러지 마, 후배는 웃으며 대꾸했다. 괜찮아요.
‘.... 뭐가?’
껌의 절단면이 파르르 흔들렸다. 그냥, 껌이잖아요. 후배가 말했다. 고마워요.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모든 게 거짓말 같고 또 정말인 것 같았다.
<중략>
어쩌면 그 한마디 때문에 후배와 살게 된 건지도 몰랐다. 후배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로 사라진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했을 때는 말이에요. 껌 반쪽을 강요당한 그녀가 힘없이 대꾸했다. 응. 떠나고, 떠나가며 가슴이 뻐근하게 메었던, 참혹한 시간들을 떠올려 볼 때면 말이에요. 응. 후배가 한없이 투명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도 입에 침이 고여요.”
방을 나서며
1.5평 고시원 방에서 벗어난 지도 꽤 오래 되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방 안에 굴러다니는 동전들을 겨우 챙겨 도서관으로 향해야 했던 때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 ‘추억’으로 말하기엔 여전히 가슴 한편이 시리다. 나는 1.5평 고시원 방을 정말 온전히 빠져나온 것일까? 가끔씩 그 안에 앉아 판자 너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제멋대로 상상한 타인을 미워하고, 이 고립된 시간들이 그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방을 나섰다고 생각했던 순간,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
내게 남은 마지막 껌을 망설임 없이 북― 찢는 상상을 해본다. 할 수 있는 건 ‘내’ 껌을 찢어 건네거나, 누군가가 건넨 껌을 씹는 일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처럼 각박한 가운데 서로의 삶을 섞을 수 있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김애란의 소설들은 ‘지나가는 중’으로만 알았던 이 시간을 계속해서 연장시켜야 하는 ‘우리’에게, 그저 견디는 것만으로는 힘들다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껌을 입 안에 털어 넣는다. “세상에.” 그녀가 놀란 듯 중얼거린다. “아직 달다.” 그녀는 천천히 껌 조각을 씹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눕는다. 입 안 가득 달콤 쌉싸름한 인삼껌의 맛이 침과 함께 괴었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다시 괸다.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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