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협동조합독서토론회사건
[ 良書協同組合讀書討論會事件 ]양서협동조합은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이듬해 출옥한 기독교 목사 김형기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소비자협동조합이자 문화공동체이다. 1970년대 말 부산 지역 민주화 운동 세력의 집결지 역할을 하던 부산 중구 보수동(寶水洞) 중부교회 스터디그룹이 비판적 지식인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발기되었다.
1977년 11월 16일 조합 이름을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으로 정해 발기한 뒤, 이듬해 4월 8일 창립총회를 열고, 같은 달 22일에는 보수동 서점 골목에 협동서점을 열었다. 누구든 출자금 1,000원, 가입금 1,000원만 내면 조합원이 될 수 있었는데, 출자액과는 상관없이 조합원 1명당 1표의 투표권이 주어졌다.
▲ 양서협동서점의 옛 모습 ⓒ민주공원 |
운영 원칙은 정치적·종교적 중립을 지키고, 조합원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창립 당시 회원은 141명이었으나, 1978년 말에는 300여 명, 1979년 10월에는 57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나자, 박정희(朴正熙) 군사정권은 양서협동조합 회원들을 부마민주항쟁의 배후로 몰아 책과 서류를 압수하고, 조합원 300여 명을 연행하였다. 연이어 10·26사건이 일어나자 모두 풀려나기는 했지만, 조합은 다음달 19일 강제 해산되었다.
해산된 뒤에도 조합에 몸담았던 회원들은 계속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러한 활동은 1981년 부림사건(釜林事件)으로까지 이어져 수십 명이 구속되었다. 1982년의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의 주모자 문부식·김은숙도 이 조합 출신이다.
양서협동조합은 부마민주항쟁을 촉발하고, 1980년대 전국 양서협동조합 운동의 모델이 되었음은 물론, 대학 민주화 운동에도 많은 영향을 주는 등 한국 민주화 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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