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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의 일상/땡땡이 인터뷰

"언젠가 과학 살롱을 만들고 싶어요" 김미선

알고 싶은 조합원이 있었다면 직접 인터뷰하자! 2019년 첫 간당간당 인터뷰를 해보았습니다. 

제(김민희)가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던 분은 김미선 조합원입니다. 친구출판사인 이김 출판사에 계신데요, 이김 출판사는 남편분과 함께 꾸려 가고 있는 출판사이고 미선샘은 편집과 디자인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미선 조합원을 떠올리면 땡땡책 큐레이션 책묶음 만드는 날 사무국에 짜잔~ 하고 나타나셔서 열심히 재밌는 책묶음을 만들고 떡볶이를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인터뷰를 해봐서 더 많았던 얘기를 다 정리하지 못해서 아쉽네요. 그래도 인터뷰 시작!

전날까지도 밤을 새서 마감을 맞추고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 인터뷰에 나와주신 김미선 조합원! 저도 그렇고 아침잠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둘 다 지각을 면했습니다.


>> 급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김미선 조합원과 땡땡책 행사에서 인사 나눈 적만 있었거든요. 정말 뜬금없는 인터뷰 요청이었어요.) 무슨 생각으로 나오셨나요?

제가 안 하면 또 다른 사람을 찾으셔야 할 테니까 그냥 제가 해버린다고 했어요. 제 성격이 원래 이래요.


>> 평소 땡땡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땡땡에 대한 딜레마를 느끼는 건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과 제가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땡땡책에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 협동조합 안에 다양한 지향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이김 출판사에서 '김'을 맡고 있고 기획, 편집,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출판사 이름은 남편의 성과 제 성에서 하나씩 따와서 '너의 하나와 나의 하나' 그렇게 동등한 느낌으로 지었습니다.  저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를 하다가 디자인을 배웠고, 남편은 책을 좋아하고 아이디어가 굉장히 좋은데, 이걸 살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직접 출판을 시작하자고 했죠. 남편의 꿈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었는데, 대학원은 안 맞았고 다른 공부도 해 봤는데 잘 안 됐어요. 좋은 과학책을 만드는 것으로도 과학기술에 이바지할 수 있으니까요. 

출판사 등록을 해놓고 의도치 않게 필리버스터를 첫 책으로 출간하게 됐어요. 저는 어릴 때 강원도에서 살아서 서울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특히 강원도가 정치 소외 지역이라서 정치나 근현대사에 무지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이게 진짜 현대사구나 싶어서 책으로 만들게 되었고 이게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 생각했죠. 이때 20-30대 여성독자가 많이 구매해줘서 젊은 사람들과 같이 가는 출판사가 되자는 결심을 했어요. 당시 전자책을 안 만들어도 되는데 전자책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제작을 했어요. 정가를 매기긴 했는데 판매하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전자책 판매분을 주빌리은행에 전부 기부했어요. 

어쩌다 보니 저는 사회과학을 맡고 남편은 자연과학을 맡기로 했는데, 이런 저런 재밌는 기획을 다 하다 보니 결국 종합출판이 되었어요. 그러면 우리는 출판의 결을 분야 말고 컨텐츠로 잡자, 라고 결정했어요. '세상이라는 호수에 돌멩이 하나 던지는 마음'으로 생각과 사고의 균열에 내는 책을 만들어야 겠다, 하고 방향을 잡았죠.


>> 출판하면서 쌓인 에피소드가 엄청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계속해서 좌충우돌 출판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양육가설>은 주류 학계에 있지 않은 사람이 자신이 깨달은 부분을 논문으로 써서 엄청난 이슈가 된 책입니다. 출간 당시 '너 같은 듣보잡이 쓴 논문 인정 안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반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죠. 1998년에 나와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못 들어왔던 책을 출간한 거예요. 아무래도 부모가 자식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설이 절대적이라서 못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 아닐까 싶어요. 번역비를 매절로 드렸으면 1000만원인데 선생님이 인세로 받아주시겠다고 해서 낼 수 있었어요. 다행히 초판 찍고 인세 드리고 2쇄 인세도 드리고 3쇄도 찍었어요. 


아까 말한 것처럼 앞으로 저자, 번역가는 젊은 사람으로 최대한 잡아 보자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미 궤도에 올라선 사람보다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젊은 학자나 저자의 이름이 한 번 더 알려질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요. <개복치의 비밀> 같은 경우는 저자가 85년생이예요. <개복치의 비밀>을 시작으로 젊은 과학자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연구 주제를 얇고 자세하게 쓸 수 있는 “비밀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이미 유명한 사람, 많이들 섭외하는 사람 말고,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등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진행 중입니다. 왜냐하면 공부하는 분들이 박사를 따도 자리가 없어요. 책이라도 하나 내면 어디서 강의라도 한번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분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쪽에 중점을 맞춘 거죠.

정말 재미있는 점은 <개복치의 비밀>은 독자들보다 젊은 과학자들이 오히려 많은 관심을 보내주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연결되다 보면 다양한 과학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새롭고 개성 있는 과학 저자와 함께 할 수 있죠. 이게 작은 출판사의 묘미 같아요.

<과학자가 되는 방법>이라는 책은 이(남편)가 출판사를 하기 전까지 실패했던 경험이 기획의 토대가 되었어요. 학부에서 실험실 가보고 안 맞으면 그만둬라, 석사 별로면 포기해, 이런 식으로 계속 가지 말라고 하는 책이죠. '과학은 진정 즐기는 사람이 해야 하는 거다.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사람. 정년 보장 받을 수 있는 교수가 되는 것은 지극히 일부이고 그것만 과학자라고 생각 하면 안 된다. 훨씬 넓은 범위의 과학자가 되는 길이 있다'고 말하는 책이죠. 남편이 '나는 실패했어, 과학자가 못 됐어'라고 생각하던 부분을 스스로 해소하기도 했던 책입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진작에 포기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의외로 교수님들이 좋아합니다. 진로 상담할 때 건네 주는 책이라고 하더군요. 학부생이 읽으면 딱 좋은 책입니다.

냉수라는 브랜드도 만들었어요. 이김과 마찬가지로 문제의식이 있는 컨텐츠를 가지고 문학이나 에세이라는 장르에 입혀 내고 있습니다. 첫 책으로 일본 현직 AV 배우가 쓴 단편집 <최저>를 냈어요. 이 책을 대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시선이 존재하죠. 배우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에 대필한 것 같다는 말도 들었던 책입니다. 성 노동을 보는 이중적인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 주는데요. 특히 국내 독자에게는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무료로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해 소비해 왔던 AV 속 사람과, 소설을 쓰는 사람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소설에 인간말종을 그리는 쓸쓸한 정서가 담겨 있어서 그 느낌을 디자인에 담고 싶었어요. 고민하다가 안정적인 기존 명조체 말고 바람체 베타 버전을 폰트로 사용했어요. 불안하고 생소한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 <개복치의 비밀> 표지가 인상적인데요. 책의 컨셉이 확 들어와서 재밌어요. 드로잉 선을 반짝거리게 처리한 것도 눈에 띕니다. 북디자인은 보통 어떻게 하시나요?

지금까지 일러스트는 이(남편)가 그리고 디자인은 제(김)가 해왔어요. 개복치 표지 그림도 남편이 그린 거예요. 둘 다 잘하는 분야가 확실해서 협업이 잘 되는 것 같아요. 표지 기획도 남편이 아이디어를 무척 많이 줍니다. 개복치 표지 할 때는 ‘갈 데까지 간 디자인을 한번 시도해보자!’ 한 거죠. 관심 끌고 싶어서. 북디자인이 꼭 진지해야 할 필요도 없고, 눈에 띄는 게 너무 중요하잖아요. 이런 시도도 해보고 있어요. 젊은 아티스트를 크루로 섭외해서 아티스트의 개성을 살린(갈 데까지 간) 그림을 책별로 실어보려고 해요.



>> 땡땡책 조합원 중에 같은 이름이 있는 거 아시죠? 저도 흔한 이름이라 똑같은 이름을 자주 마주치는데 어떠세요?

어릴 때는 이름이 흔한 게 싫었어요. 이쁘지 않다고 생각했죠. 형제들이 '영'이라는 돌림자를 썼는데 나만 질서에 어긋나는 것도 싫었어요. 그래서 수영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혼자 쓰기도 했었어요. 미선이라고 하면 다들 “아름다울 미, 착할 선”을 쓰냐고 묻는데 오기가 나서 쌀 미에 생선 선이라고 얘기하고 다니기도 했죠. (민희: 저는 이 부분에서 너무 웃었어요.) 그래서 별명 중에 쌀미가 있기도 했어요.


>>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장래희망은? 

칭찬을 정말 좋아해요. 전에 회사 다니면서 칭찬에 인색한 상사에게 날 칭찬해 주면 죽도록 충성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욕심도 많아서 뭐든 다 잘 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저는 사실 컨텐츠보다는 기술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열등감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다 잘 하고 싶은데 어떡하죠!!! 

근데 또 저는 결과가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아주 목적지향적이라 '너도 잘하고 있어'라는 말은 별로 저한테 도움이 안 되죠. 스스로 더 잘해야 한다고 채찍질 하는 편이라 책임감이 무척 강하고요.

제가 제일 잘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무래도 일이다 보니 지금은 일이 제일 좋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요즘은 비밀 시리즈 저자들을 만나면서 진심을 담은 기획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언젠가 과학 살롱을 만들고 싶어요. 구하기 어려운 과학 상품을 만들어 팔고, 젊은 과학자들이 와서 쓸데없이 담소도 나누고 강의도 열고, 실험 키트를 구성하고 같이 실험하는 상품/동영상 구독 서비스도 차리고, 전문 과학자들이 자기 프로젝트별로 키트를 만들 수 있도록 동참하고 판매를 해주는 허브를 상상하고 있어요. 서가는 과학도서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아카이빙 공간으로 꾸리면 좋겠고요. 그런 공간을 운영하려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먹고 사는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네요.


>> 땡땡은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나요?

송인 부도 사태가 일어났을 때 얘기할 곳이 없었어요. 대응을 해야 하는 데 할 수 없었죠. 민들레 출판사 트위터에 땡땡책 이야기가 올라와서 연락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친출방(카카오톡)에 초대를 받았죠. 뭔가 그곳에서 정서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 같아요. 채권단 같은 곳은 부도 금액이 큰 출판사의 목소리가 클 테니까 나와 비슷한 규모의 피해를 입은 출판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조합에 가입하기 전에는 '책의 실험' 롤링다이스 행사에 매주 참석했었는데, 그때 최진규 샘이 땡땡책 소개하러 나오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조합가도 틀어주셨죠. 


>>조합비가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세요?

조합이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직접 땡땡책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도 있는데, 사무국 사람에게 적정 수준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느슨하게 활동을 이어가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고요. 얻어가는 게 더 많으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내가 참여해야 조합비를 아깝지 않은 게 아닐까요? 지난 번에는 사무국 내현샘이 개복치 책을 좋아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

제가 강원도 출신이라 정체성에 운동성이 없거든요. 대학교 때도 그런 활동과 거리가 멀었고 굉장히 신자유주의적인 가치관 속에서 살았어요. 아직도 자본주의적이고 내 생계가 당장 중요한 그런 지향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  땡땡하고 뭘 같이 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땡땡은 뭐하는 곳 같아요?

이김의 운동성은 젊은 연구자들을 향하고 있는데요, 땡땡책의 지향성은 약자라고 생각을 했어요. 들어올 때 나도 약자였죠. 거대 도매상의 부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작은 출판사.

그런 방향성을 같이 가고 싶은 것 같아요. 이김은 쏠려 있는 부와 권력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젊은 연구자들의 생계를 위해 연대하는 출판사가 되고 싶어요. '젊음'이란 단어를 자꾸 쓰는 게 오히려 꼰대스러워질까봐 30대 후반이 되고 40대가 되면 지금의 느낌을 잃지 않고 꼰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죠.

가끔은 이런 지향성을 드러내고 싶을 때도 있는데, 출판사는 숨는 게 미덕인 것 같아요. 뒤에서 숨어서 좋은 책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땡땡책 활동을 조금씩 하면서 느꼈는데 협동조합에 가입했다고 처음부터 조합원이 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각자 자신의 포지션에서 알아가면서 함께 하고 싶은 부분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 샘에게 땡땡은?

정서적 안정.


>> 올해 하고 싶은 일?

올해 저희가 실험적으로 오프라인 마케터를 영입했거든요. 그래서 책을 더 많이 팔아야 하고요. 강아지랑 같이 매일매일 뛰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데 올해는 꼭 다시 노래하는 취미를 만들려고 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말을 좀 줄이자. 생각하고 말하자. 요즘 목표입니다. (웃음) 


이김 출판사에서 나올 호수를 와장창! 깨 줄 돌덩이 같은 책들을 기대하면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긴 시간, 솔직한 입담으로 재밌는 인터뷰를 만들어주신 김미선 조합원에게 감사드립니다. 

- 인터뷰를 처음 해봐서 어리버리했던 김민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