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계속 멋져질 것 같아요”
-싱글싱글 공식환대 전유미 인터뷰
(2013년 12월에 작성된 인터뷰입니다)
Q. 지겨우시겠지만, 땡땡책에서 하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A. 땡땡책협동조합(다음부터 땡땡책)에서 공식환대를 맡고 있는 전유미입니다. 하는 일이 딱 “이거야!”라고 설명할 수 있게 정해져 있는 건 아니어서 소개가 늘 어려워요. 다른 단체로 이야기하면 사무국장 정도의 역할인데, 중심축이 사람에 꽂혀 있다고 할까요. 일을 중심에 놓지 않고 사람을 먼저 보는 것, 일은 활동력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낼 테니까 이 사람들의 생각과 활동과 욕구들이 잘 드러나 어우러질 수 있게 살피고, 낚고, 엮는 게 사무국의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좀 정체되어 있다, 싶으면 펌프질도 할 텐데, 아직은 자체 발광인(스스로 빛을 내는) 조합원들이 많아서 이 흐름이 물 흐르듯 흘러갈 수 있게 보조를 맞추면 될 듯해요.
Q. 사무국을 선뜻 맡아주신다고 했을 때, 좀 놀랐습니다. 사실 ‘선뜻’만은 아니었겠지요? 아주 새롭게 그림을 그려나가야 하는 일인데 두렵지는 않으셨을까.
A. 사실은 창립총회 2주전까지만 해도 흔들렸고, 지금도 여전히 두려워요. 저는 집없는 도시생활자이고 가장이기도 해서 사실 돈을 좀 벌어야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땡땡책은 내게 뭘까’ 자꾸 되묻게 되는데, ‘기회’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바라는 대로 살 수 있는 기회. 지금이 아니면, 여기가 아니면, 이 사람들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런 기회. 책을 읽어야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사회 부조리에 관심을 놓지 않는 게 ‘일’이 되는 곳, 지치지 않는 노동 조건이 지지받는 곳, 바다 건너 후쿠시마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곳, 그런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걸 불안과 두려움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Q. 사무국을 막상 꾸려보시니 어떤가요? 어떤 부분에서 보람을 느끼고, 또 어떤 부분에서 막히는지?
A. 내가 바뀌어도 사회는 바뀌지 않을 수 있지만 나부터 바뀌지 않으면 사회는 바뀔 가능성이 더 줄어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장 먼저 고민한 게 내가 있는 사무국의 환경이었고, 지치지 않는 노동 조건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게으름에 대한 찬양』인가 『게으를 수 있는 권리』였나, 가물가물한데 예전에 읽은 책에서 노동 조건에 대한 힌트를 얻었던 듯해요. 최근엔 『굿워크』에서였고요. 물론 그때는 이런 시각이 있다는 걸 재미있게 여겼을 뿐이지만 생각해 보면, 부지런함에 대한 찬양 같은 게 늘 불편했던 것 같아요. 사무국에서는 이런 막연한 생각들을 직접 실험해볼 수 있는 게 맘에 들어요. 4시간 노동, 자율 출퇴근, 기존 사업장에선 ‘근무지 이탈’로 여겨지는 작업 공간의 자유까지, 규칙에 억매이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보는 경험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여지를 남기는 게 보람이 아닐까 해요.
가장 막히는 건 역시 돈. 땡땡책의 재정 상태가 열악해서 고용이 불안해요. 현재 상황으로는 사무국 2인의 2014년 1월치 월급까지 확보되어 있는데, 이게 참 스트레스예요. 기호철 샘 계산으로는 앞으로 매달 20명씩 조합원이 늘면 최소한의 사무국 유지비가 확보된다고 하니 발기인을 비롯한 조합원들, 애써주세요.(달리 보면 처음에 65만원 총회준비기금에서 시작해서 2개월을 쓰고도 또 2개월치나 확보했다는 데서 위안을 얻기도 해요. 물론 이렇게 시각을 바꾼다고 해도 고용 불안 상황이 해소되는 건 아니니까 역시 애써주셔야 하죠.^^;)
Q. 집 식구들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A. 1남 2녀 중 막내인데 아버지는 2006년에 돌아가셨어요. 일흔이 좀 넘은 어머니는 지금 저와 네 살 된 제 딸아이랑 같이 계시고요. 미술을 전공한 언니는 중2 딸 세모랑 초5 아들 내모와 아이들의 고모네와 함께 포천에 살면서 현장미술을 하고 최근엔 룰루랄라 예술인협동조합 만들어 활동하고 있어요. 존경스럽도록 평범한(요즘은 정말 이게 가장 존경스러운데) 직장인인 오빠는 체육을 전공했는데 특기와는 별 상관없이 회사를 다니면서 스포츠를 즐기고 비혼으로 한 동네에 살아요. 딸 한비의 아빠는 조각가인데, 저랑 안 친해서 따로따로 행복하게 살아보기로 했고요.
Q. 거창한 질문. ‘인생의 책’이 있다면요?
A. 뭐, 인생 ‘씩’이나. 무라까미 류의 『69』를 좋아해요. 류의 자전적 성장 소설인데, 무지 유쾌해서 책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애들한데 일단 세 쪽만 읽어보라 하면 밤새 읽고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게 되는 마법 같은 책이죠. 광화문에 종로서적이 있을 때 하루끼 옆에서 발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살지 않는 건 죄악이다”라는 말을 제 세포 하나하나에 콱, 박아줬어요.
Q. ‘나의 땡땡책’이 앞으로 어떤 모임, 어떤 모습이기를 원하나요?
A. 조합원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땡땡책의 처음을 최초기획자 하승우 샘이 이끈 아나키즘 공부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로 여기는데, 그게 지난해 가을이에요. 1년 사이 꽤 멋진 사람들을 줄줄이 만나면서 지금처럼이면 좋겠단 생각을 해요. 수천 개 출판사 가운데 열 곳도 되지 않는 노동조합이 있는 출판사, 그 가운데도 반대를 뚫고 나온 친구들이 있고, 그런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려고 애쓰는 분도 있고, 삼성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키겠다고 발벗고 나선 분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에 몇뿐인 병역 거부자들을 비롯한 평화활동가들도 있어요. 100만원도 넘는 핸드폰을 국가 보조를 받아 공짜로는 사도, 기본소득은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 싶은 나라에서 이걸 공부하겠다고 모이는 사람들이 있고, 밀양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며 팜플릿을 만드는 친구들도 있고요. 이제는 바다 건너에서 파국 이후의 삶을 온몸으로 살아가는 후쿠시마 사람들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저는 이런 모임들이 자꾸자꾸 생겨나고 퍼지면서 잘못된 것을 바꾸어내는 힘으로까지 연결되길 바래요. 또 한 가지는 이 건강한 사람들이 일터에서 내몰리는 경우가 자꾸 나오는데, 이 친구들이 계속 그렇게 건강하게 살게 땡땡책이 좋은 일터가 되면 좋겠어요. 우리에겐 원대한 포부가 있잖아요. 독서모임과 친구출판사를 연결한 도서 직거래에서 시작해서 땡땡책 협동서점, 출판사, 도서관, 대학까지. 땡땡이 화폐도 만들고요. 이를 통해 조합원에게 기본소득을 줄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Q.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올해의 큰 사건 셋을 뽑아볼까요? 2014년도 예상도 부탁드려요.
A. 올해 초에 아이가 열감기에 걸려서 온몸이 30분 정도 마비된 적이 있었어요. 나중엔 신종플루 때문으로 밝혀졌는데, 덕분에 중요한 게 뭔지를 깨달았죠. 이 일은 두 번째 사건으로 이어져서 저를 불행에 빠트린 임금 노동을 때려치우는 데 기여했어요. 내 아이도 엄마가 이렇게 불행하게 일하는 건 원치 않을 테니까,하고. 세 번째는 그래서 바라는 대로 살아보려고 땡땡책 만들기에 함께 하게 되었다는…. 2014년에는 이 상태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찾아서 하려고 해요. 자석처럼 좋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자기장을 만들어내면서 힘을 낼 수 있게. 국가에 해산할 권한을 주지 않는 아마도 유일한 협동조합일 텐데, 우린 계속 멋져질 것 같아요. 좋은 사람 300명이면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으니 2014년엔 이 바탕을 만드는 일에 힘써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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