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땡땡의 일상/땡땡책 운영진 이야기

300과 1,350, 숫자과 현실 사이.

3001,350, 숫자과 현실 사이.

어제는 호철과 함께 세상에서가장작은도서관에 보낼 책 1,350권의 배송 준비를 마쳤다.

24개 출판사에서 보낸 45종의 책을 90권씩, 30박스로 나눠 담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도서관 팀과 협의하고, 공급 계약을 맺고, 추천할 책 리스트를 출판사에서 2배수로 받고, 보내주지 않은 곳은 공개된 데이터에서 채우고, 예산과 종수에 맞춰 책 리스트를 확정하고, 각 출판사와 공급률 협의를 하고, 주문서를 넣고... 여기까지는 간단한 문서작업과 소통으로 수월하게 진행됐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주문한 책들은 월요일부터 들어오기 시작했고, 오가는 책 규모가 늘자 자연스레 한강 물류가 뚫렸다. 출판사에서 출고한 후 빠른 곳은 하루만에, 늦는 곳은 사흘이 걸려서야 책이 들어왔다. 책을 받는 대로 바로바로 입금을 마무리하고, 포장 준비에 들어갔다.

 

어디에 책을 포장하나? 땡땡엔 아무것도 없는데. 가까운 마트에 가서 라면 상자를 얻어 와야 하나 고민하다가 출판사에서 보내온 박스를 재사용하고 모자란 건 우체국에서 4호 박스를 구입했다. 책들을 크기별로 나열해 놓고, 90권을 두 박스에 어찌 나눠 담을지 샘플링 작업을 마치고 나니 허기졌다. 이삿짐이라도 정리하듯 짱게를 먹고 작업 재개. 3시에 시작해서 7시엔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택도 없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두껍게 만드는 거냐 싶게 책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손은 얼얼하고 팔다리 근육은 슬슬 풀리고 집중력은 떨어지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을 무렵, 작업이 끝났다.

뜻하지 않게 창고 노동자 체험을 하고 나니, 숫자로 존재하는 관념의 세계와 현실 사이에는 얼마나 큰 벽이 놓여 있는 걸까 싶다. 제목과 주제로만 존재하던 책들이 1,350권이라는 물리적 실체로 다가오는 순간, 책은 노동이 되었다. 경험이 없으니 투여할 노동의 양을 가늠키 어려웠고,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생각해 보면 땡땡의 적정 규모를 고민하면서도 그랬던 것 같다. 2인으로 구성된 사무국이 존재하고 최소 자금으로나마 조합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300명 이상의 조합원이 필요했다. 관념 속에서의 300은 조금만 애쓰면 쉽게 조직할 수 있을 것 같은 숫자였지만, 창립 이후 20개월이 지나는 지금까지도 아직 달성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사이 300에 대한 체감은 아주 무거워졌다. 조합원 한 명 한 명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 그 강박에 이르지 못하는 현재 사이에서 최소한의 일상을 나눌 수 있는 그룹으로서의 300이란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겠단 생각이 든다.

 

마무리를 못 짓겠네... 하루 30분만 글을 쓸려고 끄적였는데, 40분이 넘어간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