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너무 이른 이야기가 되어버린 과거의 책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를 읽고
용석
10년 전에 읽은 책으로 내가 고른 책은 송두율 교수가 쓴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번에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다.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미가 없었다. 예전에 굉장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남아 있고, 당시와 지금의 정치적 상황을 견주어서 다시 읽어도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따라서 이 서평은 책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예전에 이 책을 어떻게 재밌게 읽었는지를 이야기하고, 그렇다면 지금은 왜 재미가 없어서 다 읽지도 못했는지 이유를 밝히는 글이다..
이 책은 2007년에 4월 말에 나왔다. 아주 정확히 10년 전은 아니다. 책 뒤쪽 면지를 보니 나는 이 책을 2007년 6월에 읽었다. 2007년6월이면 수원구치소 독방에서 이감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고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거의 나오자마자 읽은 셈인데,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은 계획은 없었다. 구속노동자 후원회에서 보내준 책으로 기억하는데, 보내주지 않았다면 내가 직접 사 보지는 않았을 거였다. 송두율 교수가 이야기하는 ‘내재적 발전론’에 흥미가 없었고, 나 역시 송두율 교수가 거짓말 한 것은 잘못이며 지금(당시)이라도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국가보안법이 내게도 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겨우 알게 되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 송두율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던 2003년 가을, 나는 대학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었다. 대학시절 내가 활동한 학생운동 그룹은 유독 민족주의와 한총련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서인지 국가보안법은 비판하면서도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해서도 송두율 교수가 특정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는 국가보안법이 힘을 잃어가고 있던 시기였다. 물론 국가보안법으로 피해 받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 정권보다는 현저하게 줄었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대통령이 되었고 인권변호사가 뒤이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변화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의미 없는 변화는 아니었다. 송두율 사건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발악일 거라 여겼다.
나는 송두율 교수가 재판을 받던 2004년 초에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 일 중 하나는 병역거부 수감자들 면회를 다니는 일이었는데, 서울구치소에 면회를 갔다가 송두율 교수를 면회하러 온 송두율 교수의 부인과 자제분들을 우연히 만나 밥을 함께 먹기도 했다. 그분들이 참으로 필요없는 고생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국가보안법이나 송두율 교수에 대해특별한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2007년,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를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생각해오던 것들이 크게 뒤흔들렸다. 특히 국가보안법이 침해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나는 아주 깊게, 반성적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감옥 이야기를 읽게 되어 그 감흥이 깊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른바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까지 왔지만, 정작 내 스스로도 ‘양심에 따르는 삶과 행동’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고, 그 양심을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국가보안법이 개인에게 강요하는 말들에 대해서, 그 말을 하는 것과 거부하는 것이 각각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법정에서, 여론에서 끊임없이 내심을 밖으로 끄집어내라는 요구를 받는 송두율 교수를 보면서, 자연스럽게도 병역거부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생각났다. 물론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평화운동가로서 군대를 반대하는 내 양심을 표현하는 것은 운동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개인의 선택에 따라야할 일이지, 병역거부자 개개인들에게 양심을 까발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느꼈다.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느냐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있지만 그걸 인정받기 위해서는 솔직하게 말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송두율 교수에 대해 과후배와 이야기하며 내가 내뱉은 말들은 저치들이 병역거부자들에게 내뱉은 말들과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때 나는 국가보안법이 참 무섭다고 생각했다. 활동가를 잡아 가두는 것 때문도 아니고, 사람들이 알아서 입을 다물게 하는 것 때문도 아니고, 사람들이 누군가의 양심을 강제로 광장에 까발리고 품평회를 여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게 만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사회는 제도적인 차원에서조차 민주주의와 멀어졌다.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다 죽어가는 줄로만 알았던 국가보안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되살아나 그 서슬 퍼런 칼날을 무차별적으로 휘두르고 있다. 테러방지법 같은 다른 법으로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 정치 결사의 자유, 저항궈 등을 제한할 줄 알았는데, 그냥 국가보안법이 끝판왕이자 선봉장이 되었다. RO라는 무시무시한 지하조직을 창작해내고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며 국가보안법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세상에 자랑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준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 이 책이 가진 매력을 절감시킨 게 아닌가 싶었다. 무슨 말이냐면, 책이 내게 주었던 성찰은 지금의 정치적 상황에서 보자면 미래의 성찰이 아닌 게 싶은 거다. 국가보안법이 죽어가던 시절 마지막 발악 같았던 그 사건과 사건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대처가 우리에게 반성적인 성찰을 가능하게 해줬던 건데, 지금은 그러한 사건이 언제든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다보니 국가보안법의 숨은 무기보다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당장의 실체적인 피해에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 같다. 당장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잡혀가서 말도 안 되는 실형을 선고 받고 있으니, 국가보안법이 개개인의 사상과 행동에 어떤 보이지 않는 영향을 끼치는지를 바라볼 새가 없는 거다. 국가보안법이 다시금 힘을 잃게 되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 속 무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미래의 어떤 순간이 되었을 때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십년 전 책이 미래의 책이 되다니, 재미만 없는 독서가 아니라, 무척 슬픈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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