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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연재마당/땡땡 서평단

삼평리에 평화를(한티재, 2014)



"삼평리 할매들, 태양의 후예로 살다!"

삼평리에 평화를(박중엽 이보나 천용길 글, 한티재, 2014)

-하승우


(2014년 9월 <뉴스민> 게재)

송전탑을 반대하는 밀양이나 청도 삼평리에서 투쟁의 핵심은 할매들이다. 왜 할매일까? 삼평리에서 평화를(한티재, 2014)을 읽으면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다. 할매들은 한국사회가 만든 울타리 밖에 있었다. “아버지가 딸은 오래 놔두면 안 된다 해가지고, 그래 뭐 결혼시켰지. 그때 결혼하고 싶은지 그런 생각도 없었다. 결혼하고 나니 이게 결혼인가 싶으고 했지.”라는 말처럼 남편 얼굴도 제대로 모른 채 시집을 왔거나, 아이들을 어렵게 키우느라 세월을 다 보냈다. 고생에 고생을 거듭했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하던 남편은 일찍 세상을 뜨고 아이들은 지역을 떠나고, 남은 건 서로 의지할 할매들이다.

 

할매들은 가부장적이고 개발에 목을 매는 한국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체제 밖에 있으니 그 체제에 가장 격렬하게 맞설 수 있다. 또 한국사회에서는 배제되었으나 할매들이 사는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22호 서 있는 데는 동네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라. 여름에 모 심을라 카는데 비가 안 오면 저기에 술 받아 갖고 명태 한 마리 사가가 동네 사람 우 모다 가가 절하고, 고시레도 하고, 집에 오면 비가 좌르르 와. 농사에 비가 얼매나 중요하노. 비가 와야 곡식이 되지. 사람도 살고.”라는 말처럼, 지역이라는 삶터와 그 속의 관계를 가장 잘 헤아리는 사람이 할매이다. 송전탑이 설 자리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기에 할매들은 이 싸움을 무를 수 없다. “기계 들어오면 기계 밑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지. 즈그가 뭐 사람 칭가 직일 기가, 우짤 기고.” “어이 세상이 히뜩 디비져야지. 완전 디비져야지.”라고 외치는 급진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할매들에 맞서 송전탑을 세우려는 자들에게서 세 가지 근본적인 악을 목격할 수 있다. 근본적인 악이라 함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돈이면 다 된다는 물신주의이다. 할매들에게 집과 땅은 그냥 재산이 아니다. 이건 할매들의 삶이 누적된 결과물이다. “촌에 얼매나 살기 좋았는교. 그런데 송전탑 저거 때메로 죽겠다요. 갑갑해서. 저거 우야꼬 싶어. 저거, 나가면 사람 따라오는 거 같애. 무슨 지랄병할라고 저기 세우는가 몰라. 송전탑은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눈에 보이고 따라다니는 송전탑을 어찌할 수는 없다. 보상을 더 받으려고 저런다는 한전의 거짓말이나 그 거짓말에 물든 사람들의 반응은 삶을 애써 외면한다.

 

두 번째는 국가를 앞세운 공기업의 폭력이다. 한전을 비롯한 공기업의 폭력은 반드시 공동체를 파괴한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저항의 근거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품앗이도 안 되고 지금은 놉도 안 된다. 젊은 사람이 공장 가서 일손도 없고, 송전탑 들어온다 캐가 동네가 영 쪼 갈라졌다. 품앗이 할라 해도 이제는 서먹해서 못 하고.”라는 말처럼 농촌공동체의 공동노동인 품앗이도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누가 이 파괴의 결과를 보상할 수 있을까? 반대하는 주민들은 찬성하는 주민들한테는 욕 한마디 해본 적도 없어. 한전에서 수고비 줄라 카고 회유하는데 얼마나 힘들었겠노. 내한테도 그런 식으로 접근 많이 했으니. 공기업이 잘못된 거지.”라고 생각하지만 찬성하는 주민들도 그럴까? “동네가 얼마나 좋았는데. 저것 때문에로 천지 동네가 이래 갈라져가 인사도 안 하고 그러는데 뭐. 동네서 인사도 서로 안 해. 동장이라 카는 것도 인사 안 한다 카이, 할매들한테.” 한번 파괴된 공동체를 복원하는 건 벼락을 맞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데, 공기업은 이런 만행을 전국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세 번째는 공권력이라 자칭하는 경찰의 폭력이다. 이미 많이 드러났지만 청도 경찰서장이나 밀양경찰서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경찰은 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조직이고, 특히 한국의 경찰은 아주 부패한 상태이다.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진 부패의 고리는 아직도 끊어지지 않고 있다. “경찰이 또 회관에 와서 하는 말이, 이렇게 반대를 하면은 할머니들이 벌금 맞고, 그 돈 안 갚으면 할머니가 감옥에 가는 게 아니고 아들, 손자 때까지 그 벌금 갚아줘야 된다고 한 거예요라는 말만 들어도 그 수준을 알 수 있다. “경찰도 국가가 잘못됐으면 제대로 밝혀야지, 할매들만 협박해서는 안 되지.”라는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니 경찰조직의 변화를 포함해 근원적으로 그 조직의 존재의미를 물어야 하는 순간을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

 

이런 세 가지 근원적인 악에 맞서 할매들은 싸우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할매들을 지켜만 보고 있다. 어찌해야 할까?

 

지금의 권력은 우리를 국민으로, 시민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체제에 복종하지만 열심히 복종한다고 체제가 우리를 지켜주진 않는다. 할매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우리도 어느 순간엔 체제에서 밀려날 것이다. 그때 우리 곁에 누가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삼평리의 할매들, 밀양의 할매들은 우리 손을 잡아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매들의 손을 잡아야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송전탑 싸움을 안 했으면 정말 내가 평생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거 자체를 몰랐을 거예요.”라는 말처럼 서로 손을 잡을 때 새로운 만남의 힘이 생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송전철탑은 완성되었다. 하지만 할매들은 계속 싸우고 있다. 한번 만들어진 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금 이기면 나중에 또 이길 수 있다는 점을 알기에. 송전탑이 태양보다 오래갈 수 없다는 진실을 아는 태양의 후예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