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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연재마당/땡땡 서평단

일베의 사상(오월의봄, 2013)



“‘일베는 없다혹은 응답하라, 2002’?”

일베의 사상(박가분 지음, 오월의, 2013)

-김효진

 

 

0. 일베, 잔치는 끝났다?

어째 잠잠하다 했더니, 그들이 돌아왔단다. 우리 베츙이들 말이다. “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의 열기가 파급되는 것과 함께 저 메뚜기떼가 다시 창궐하는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뭔가 좀 시들하달까 요란한 맛이 한참 부족하달까 그렇다. 어제오늘(1217~18)간에는 샤이니월드에 선전포고를 날리며 뭇 언론과 여론의 이목을 끌어놓고는 정작으로는 변죽만 울리다 끝난 느낌이다. 직접 일베에 들어가 봤다. 올라오는 게시물들의 질이나 양이나 그리 감명 깊은 수준은 아니었다. 샤이니월드를 '산업화'하고 왔다는 인증샷도 간간이 눈에 들어왔지만, 막상 클릭해 보면 뭘 했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스크린샷 하나(알아먹기 힘든 요상하게 변형된 욕설이나 써갈기는 게 이들이 말하는 산업화인가?)가 덩그라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나름 열심히 '안녕' 대자보 현황을 중개하고 산업화 선동을 해보기도 하지만 영 열없는 분위기이다. 사실 '안녕' 측으로서는 어느 정도의 ''도 있어줘야 의욕이 더 오르는 법이니, 여기서 우리는 일베가 역기능을 일으키는 것을 본 셈일지도 모른다(일베의 다수는 이 점을 간파했기에 '안녕' 대자보 산업화에 시큰둥한 걸까? 그렇다면, "KIA~ 사스가 일베!"를 주겠다. ^^).

 

일베의 사상의 저자 박가분 역시 출간 후 한 언론 인터뷰(경향신문, 119일자)에서 일베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을 내린 바 있는데, 모처럼 큰 판이 깔려도 이렇다 할 쇼를 펼치지 못하는 것을 보니 과연 그 진단이 맞는 모양이다. (여기까지 쓰고 잠시 페이스북에 들어가 봤더니 일베가 다른 건수로 소소한 화제가 된 모양이다. MBC 방송이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화가 밥 로스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참고자료로 사용한 이미지가 일베에 의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와 합성된 이미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베의 힘과는 별 관련이 없는, 단순한 해프닝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인 것 같다.)

 

일베에 버프걸어주던 국정원은 요즘 제 앞가림에 바쁘다(이미 그들에게 일베는 사용가치가 다한 것 같다). 우파 논객 변희재가 수컷닷컴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든다는 소식에 일베 유저들이 반응하기도 하던데, 그간의 그의 허장성세를 상기해 보면 별로 무게를 두고 생각할 일은 아닌 것 같다(그러고 보면 이건 죽은 성재기에 대한 일베의 향수를 자극해서 호응을 얻어 보려는, 그야말로 '감성팔이' 아닌가). 대선이라는 카니발이 지나간 다음 일베의 지리멸렬한 현실은 거의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 그럼 이제 선택을 해야겠다. 이 서평을 계속 쓸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이 그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보았듯 일베도 이제 한물 간 마당에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말자.

...... 농담이다. 써야 한다. 서평 쓴다고 책도 공짜로 받아온 데다가, 나는 이 소식지의 편집자가 살짝 무섭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부터가 책이 출간된 다음 인터뷰나 강연회 등에서 '일베엔 이제 관심 없다'고 말하고 다니며 매출에 초를 치는 모양인데, 미력하나마 나라도 땡땡책의 친구출판사에 '버프'를 걸어줘야 할 것 아닌가!

...... 이것도 농담이다. 편집자님과 독자 제위께서는 눈 그만 흘기고 다음 단락부터 읽어주시라. ^^;

 


1. 일베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일베의 사상은 서평 쓰기가 까다로운 책이다. 서평을 쓰기 수월하려면 대상이 되는 책에 대한 어떤 상을 설정하기가 용이해야 하는데, 이 책은 그 상을 뚜렷하게 잡기가 어렵다. 자꾸만 핀이 나간달까? 그것은 이 책의 이론적 전거들이 복잡다기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저술 동기가 뚜렷이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몇 차례인가 '일베의 극복'이라는 목표가 제시되지만, 막바지에 가면 이미 일베 자체는 뒷전이 되어 있다. 서문에서 일베는 생각하지 마!”를 반어로서 제시하며 시작하는 이 책은, 뒤에 가서는 정말로 일베'' 생각하지 않고 얘기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내 감상을 말하자면, 이 책은 '일베'라는 집단을 계몽하거나 그들의 윤리적 책임을 묻거나 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물론 무슨 일베 공략법을 제시하는 책도 아니다(자기들끼리 '팩트 정리'를 올리고 암기해서 '씹선비'들을 깨부수고 다닌다는 것이 일베인들의 대표적인 환상이다). 이 책에서 일베는 결국 터널인 것이다. 2008년 촛불을 거쳐 2002년의 광장으로 거슬러 오르기 위한 터널 말이다. 내가 읽기로 이 책은 (내 멋대로 이름 붙이자면) ’2002 키즈에의 헌정이며, 안부 인사이며,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응답하라, 2002!”이다. 이렇듯 진의를 한 번 꼬아서 써놓은 책이니 상을 잡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응답하라, 2002!' 따위를 말하는 이유는, 이 책이 그리는 일베의, ‘일베의 사상의 출발점이 바로 2002년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출발한 일베가 벌여온 온갖 패악질의 후경으로 그예 잊어버리고 싶었던 우리들, 2002 키즈의 얼굴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소주병 옆에 차고 교정을 걸으며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서 읽은 푸시킨을 되뇌어 보고, 월간 인물과 사상이나 격월간 아웃사이더를 구독하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끊임없는 정치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논객'의 등장과 대결과 평정에 환호하던, 최초의 인터넷 기반 정당 개혁당을 첫 정당으로 삼아 감격에 겨운 가입인사=입당소견서를 쓰던, 대로로 쏟아져 퍼킹 유에스에이를 외치며 행진하던, 그런 게 무슨 대단한 정치적 참여인 양 생각했던 우리들, 그리고 갓 발견한 자기 안의 뜨거운 정치적 정념을 고스란히 기탁했던 정치인들의 영락을 보며 환멸을 배운 우리들의 얼굴이 떠올라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거야말로 억압된 것의 회귀구나 싶었다. 이때 이거는 일베이기도 하고 기어이 일베가 당신들의 반면이라고 코앞에 들이대려 하는 이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을 지난 십 년간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의 세대적 일단)을 정신분석하는 책이라고 하면 어떨까. 마치 프로이트가 19세기 말 빈 시민사회의 치부에 돋보기를 들이대어 그들의 무의식을 관찰하려 했듯, 저자는 일베라는 추문을 통해 우리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아닐까.

 

 

2. 동물과 속물, 무의미한 양자택일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헤겔 연구자였던 알렉상드르 코제브(20세기 초중반에 활동)가 제시하고 현대 일본의 사회비평가인 아즈마 히로키가 변형해 계승한 동물화테제이다(상세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개진됨). 그 테제의 전제는 현실 사회주의가 패망한 후,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견제받지 않는 일의적 시스템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역사 전개의 변증법적 메커니즘이 중단된 결과로 역사의 종말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제브에 따르면, 헤겔적인 의미의 역사가 종료된 후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생존양식만이 남는데, 그것은 동물화이거나 스노비즘이라고 한다. 이때 동물은 헤겔적 의미의 인간 개념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한다. 코제브의 헤겔 역사철학 해설에 따르면, 인간은 주어진 환경('자연')과 투쟁할 때에 비로소 인간이다. 모든 가치가 상품세계의 평등주의에 귀속된, 굶주림도 투쟁도 철학도 없는 소비사회라는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생존양식은 스노비즘인데, 이는 환경을 부정할 실질적 이유가 없을 때조차 형식화된 가치에 입각해그것을 부정하는 행동양식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표면적 의식 아래로는 자기 자신 믿지 않는 가치를 입으로 주워섬기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점에 스스로 눈을 감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메소드 연기'하는 양태가 그것이다(슬라보예 지젝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냉소주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제법 거창한 이름까지 들먹였지만, 사실 무척 단순한 얘기이기도 하다. '일베충'은 그 이름처럼 동물화된 자들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나 인권 등의 대의를 들먹이는 이들을 '좌좀'이라고 부르며 조소한다. 이들의 눈에는 이른바 '개념 있는' 행위들, 투표 인증이나 광장에서 촛불을 들거나 혹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쓰는 따위의 정치적 이상을 표출하는 행동은 위선과 가식에 찬 짓으로 비춰질 뿐이다(물론 이들도 보수 우파로서의 정치적 이상을 종종 표출하긴 한다. 그러나 그 실체에 있어서는 허구적인 아이러니일 뿐이라는 게 이 책의 분석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들의 '편협한' 눈에만 그렇게 비춰지는 것인지 아니면 이른바 팩트에 입각해 던지는 날카로운 눈빛 앞에서 속물들의 위선과 가식이 정말로 간파되고 있는 것인지 객관적으로 판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 일베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올라탄 천칭의 무게 중심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사건들이 펑펑 터진다. 이름난 남성 인권 운동가가 한참 연하의 여학생에게 은밀히 추잡한 메시지를 날리며 치근덕거린다거나(그걸 또 이름난 논객이 싸고 돈다거나), 386 사장님이 ''의 지위를 휘둘러 88만원 세대 비정규직을 착취한다거나, 민주노조나 진보정당이 내부 성폭력 사건을 은폐, 왜곡하려 한다거나 하는 등의 사건들 말이다. 이걸 정색하고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게 아니라, '저장'해서 '데이터베이스화'한 다음 그 모순성을 두고두고 비웃고 놀려먹는 데서 진정한 격하('능욕')가 이루어진다는 걸 일베는 알고 있다.

 

"사람은 못 되어도 괴물만은 되지 말자"는 유명한 영화 대사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오늘날 우리 앞에 남겨진 두 갈래 길은 어느 쪽이든 괴물이 되는 길이라는 게 저 동물화 테제가 말하는 바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속물이나 겉과 속의 구분 자체가 없는 동물이나 '인간다움'과는 거리가 멀긴 매한가지란 것이다. 나아가 한사코 자기 기만적인 속물화보다는 '포기하면 편하다'적 논리에 입각해 평등한 '병신'들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일베적 동물화가 더 전염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세계를 동물화하라"라는 일베의 강령만은 아무리 일베라는 커뮤니티가 몰락하더라도 그것과는 무관하게 살아남을 것임을 전망해 볼 수 있다(마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했다 해도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유효한 것처럼?).

 

일베가 이대로 몰락하지 않고 화려하게 되살아날 수도 있다. 더 강력해진 '화력'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일반론을 하나 말해 보자. 대증 요법과 원인 요법은 별도로, 병행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은 '일베적인 것'을 지양할 '원인 요법'을 찾아 일베와 촛불이 함께 잉태된 시점, 동물화와 속물화가 결정적으로 가속화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트라우마적 환멸의 기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의회정치 내에서 진보정치를 실현한다는 이상이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또 환멸만 남긴 채 사그라들어간 시간이 지난 십 년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결국 2013년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2002년의 "꿈은 이루어진다"의 희극적 반복임이 드러난다.

 

 

3. to be continued...

모든 정치적 이상은 필연적으로 좌절과 영락의 위험성을 안고서 등장한다. 따라서 이미 한 번 현실화한 '일베적인 것'이 앞으로 자연 소멸하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일베적인 것', 즉 만인에 의한 만인의 격하 운동이 일반화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의 후반부가 사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서평은 여기서 전반부를 닫고, 후반부는 소식지 다음 호에 실을 예정이다. 그러나 확언할 수는 없다. 이건 내 탓이 아니다. 땡땡책 소식지는 창간호부터가 종간호가 될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이 위기를 타넘을 방법은 딱 하나인데, 그 열쇠는 이 글을 읽는 독자 제위에게 있다. 땡땡책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늘어나면 재정이 확충되고 소식지 2호도 때깔 곱게 뽑혀 나갈 수 있다는 것인 것이다!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메카닉 에반게리온 2호기의 동물화 2단계, The Beast 모드의 모습이다. 상세는 엔하위키의 "The Beast" 항목을 참조. 인간을 버린 에바의 힘에 관심 있으신 분... 이 아니라 환멸을 견디고 일베적인 것이 창궐하는 세상에서 인간적으로 사는 데에 관심 있으신 분은 모쪼록 땡땡책 협동조합에 가입을 해주시압.)